“시럽급여? 샤넬? 어떻게 그런…” 실업급여 당사자들에게 물어보니
“실직기간 생계 버팀목” “목숨 같은 돈”
‘시럽급여’ ‘해외여행’ 비하한 정부·여당
“고용보험 권리인데 용돈 주듯이” 비판도
“폭력적인 언행이죠. 저는 실업급여로 전혀 (해외여행 등) 그래본 적도 없고, 실업급여는 생활비 하기도 빠듯하거든요. 실업급여로 사치를 부린다거나 하는 말은 정말 실직자를 사지로 내모는 말입니다.”
지난해 직장을 그만두고 약 5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으며 생활한 A씨(33)는 최근 정부의 ‘시럽급여’ 관련 발언들에 모욕감을 느꼈다. 그는 “실업급여가 큰 돈은 아니었지만, 없었다면 실직 기간 동안 생활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말하는 ‘MZ 세대 노동자’인 A씨는 특히 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말로는 늘 ‘청년 노동자’를 위한다는 정부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되는 실업급여를 ‘칼질’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A씨는 “청년들은 기반자금도 상대적으로 부족한데, 이런 고용불안정 시대에 실업급여 같은 믿을만한 완충장치조차 없다면 그건 진짜 죽으라는 말”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겐 목숨값, ‘한 줄기 희망’
정부·여당의 ‘실업급여 개편’을 둘러싸고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실업급여가 구직자들의 구직 의욕을 꺾고 있다며 ‘하한액 폐지’ ‘실직 전 근무일 기준 강화’ 등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다. 현재 실업급여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또는 전 직장 평균임금의 60%)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실직 전 18개월 중 180일 이상 근무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1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비하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2일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 공청회에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산하 고용센터 실업급여 담당자는 “여자분들, 젊은 청년들이 계약기간 만료가 된 김에 쉬겠다고 하면서 온다”며 “실업급여 받는 기간에 해외여행을 가고 샤넬 선글라스를 사거나 옷을 사거나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인식과 달리, 실업급여 수급 경험자들은 실업급여가 최소한의 생활이나마 가능케 해 준 ‘버팀목’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아시아나항공 재하청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에서 해고된 뒤 복직까지 799일간 해고자로 지낸 김계월씨(60)는 “수입이 끊기고 빚도 있는 상황에서 실업급여가 없었다면 막막했을 것”이라며 “실업급여는 해고자 입장에서 목숨 같은 돈이고, 실업급여마저 없으면 완전히 벼랑 끝”이라고 했다.
지난해 일하던 학원을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은 서한솔씨(26)는 실업급여가 “한 줄기 희망”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약 150만원의 실업급여로 월세와 대출 상환을 하고 나면 빠듯한 돈으로 생활을 해야 했다. 서씨는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실업급여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도 하기 어렵다”며 “학원 강사로 일하는 동안 거의 쉬지 못한 나를 돌볼 수도 있었고, 다음 직장을 구하기 위한 면접 준비 등에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청년 위한다더니…“현실 전혀 모른다”
청년 노동자들은 정부가 청년 노동시장에 대한 고려 없이 실업급여를 축소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괜찮은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면서 원치 않는 실직도 잦아지는데, 여기서 실업급여를 줄이면 구직자들의 생계유지와 구직활동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실업급여 수급 경험자 A씨도 첫 직장을 그만둔 뒤 상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워크넷을 한 달 동안 들여다봐도 그런 일자리는 없었다. 거의 다 몇 개월짜리 단기 계약직이고, 1년 만근 시 발생하는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한 ‘11개월’ 일자리도 많았다. 결국 4개월짜리 임시직을 거쳐 다시 구직 중인 A씨는 “저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지만 단기 계약직 노동자들은 바로 다음 일자리가 구해지는 것도 아니니 정말 막막할 것”이라며 “그런 분들에게 실업급여 축소는 죽으라는 말밖에 더 되나”라고 했다.
청년층은 특히 불안정 고용에 취약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2년 낸 ‘실직 전 고용 안정성에 따른 실업급여 수급 및 재취업 행태’ 연구를 보면, 실업급여를 받은 뒤 재취업한 임시·일용직 노동자의 61.3%는 새 일자리도 임시·일용직이었다. 30세 미만인 임시·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이 비율은 82.6%에 달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21년 ‘청년 사회 첫 출발 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를 보면, 청년의 33.4%는 졸업 후 첫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시작한다. 사장이 고용보험을 들어주지 않거나 특수고용·프리랜서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다.
전 직장 계약 종료 후 실업급여 수급을 준비 중인 이모씨(28)는 “제가 아는 분 중엔 2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사람도 있고, 대부분은 다음에 계약이 연장될지조차 알 수 없다”며 “청년들의 상황이 어떤지 (정부가) 전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서씨는 “윤석열 대통령은 청년 노동자의 처지를 고민해보겠다며 복지를 두텁게 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복지를 줄이는 이 상황에 대해 정부에 반문하고 싶다”고 했다.
“특혜 아닌 정당한 권리…무슨 용돈 줬습니까?”
정부·여당의 ‘시럽급여’ ‘샤넬 선글라스’등 비하적 발언들에 대해서도 지적이 이어졌다. 청년노동단체 청년유니온은 지난 14일 성명을 내 “(공청회에서의 발언은)국민들을 실업급여 타다가 ‘해외여행’가고, ‘샤넬 선글라스’ 사는 ‘도둑놈’으로 보고있는 것”이라며 “실업급여 제도에 대한 몰지각함을 드러낸 공청회에서 나온 발언들에 대해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에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여성인 이씨는 “(여성들이 웃으며 실업급여를 타러 온다는 발언은) 상당히 불쾌하다”며 “왜 여성만 그렇게 콕 집어서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씨는 이어 “실업급여를 줘도 노는 데 쓴다는 생각인데, 국민을 쉴틈없이 일만 해야 하는 존재로 보는 것 같다”며 “그렇게 치면 연차 모아 휴가 가는 것도 얄밉게 보이겠다”고 했다.
실업급여는 정부의 ‘선심’이 아니라 고용보험 보험료를 납부한 노동자의 정당한 귄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 해고당한 뒤 부당해고 여부를 다투고 있는 변주현씨(29)는 “정부가 무슨 용돈을 주듯 생각한다”며 “그럼 실업급여 수급자들은 매번 불안해하며 (신청을) 해야 하나”라고 했다. 김씨는 “생명보험처럼 고용보험도 내 안전을 위해 드는 것이고, 실업급여는 수년간 지불한 돈에 대한 권리”라며 “내가 받고 싶어서 받는 것도 아니라 회사가 해고해서 받는 것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서씨는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서 퇴사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며 “실직과 퇴직에는 이유가 있는데, 노동시장이나 노동조건을 개선할 생각이 먼저”라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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