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만 많이 보내면 뭐하나”···경북 산사태 피해 컸던 이유

백경열·김현수 기자 2023. 7. 16. 14: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명 사망자 중 ‘산사태’ 매몰 12명
기존 ‘취약지역’ 밖 사망자가 10명
주민에 대피 요구 ‘권고’ 수준 그쳐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대부분이 매몰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일대에서 16일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조태형 기자

경북에서는 산사태로 인한 인명피해가 컸다. 지자체별로 산사태 우려가 큰 곳을 지정해 관리하고 있으나 이번처럼 지역별로 짧은 시간 강하게 내리는 비에는 ‘안전지대’가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주민 대피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16일 경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예천·영주·봉화·문경지역에서 19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됐다. 사망자 중 지자체가 사망 원인을 ‘산사태(매몰)’로 파악한 경우는 12명(66.7%)이다.

이 가운데 ‘산사태 취약지역’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2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경북도와 각 시·군이 취약지역으로 지정한 4958곳 중 1곳(영주시 풍기읍 삼가리)에서 발견됐다. 나머지 10명은 기존에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지 않은 곳에 머물다 변을 당한 것이다.

산림보호법은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를 계기로 산사태 취약지역 지정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자체마다 산림당국의 기초조사와 자체 현장조사 등을 기준으로 산사태 위험이 큰 곳을 집중 관리하고 있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대응도 아쉽다. 집중호우가 예상되는 시점부터 산사태 우려지역 주민에게 대피를 강하게 요구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의 집계를 보면, 지난 13일 인명 피해가 집중된 예천·영주·봉화·문경 등 4개 지역에서는 평균 약 25㎜의 비가 각각 내렸다. 이후 14일에는 전날의 5배가 넘는 128.9㎜의 비가 지역 별로 내렸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확인된 15일에도 평균 130㎜의 ‘물폭탄’이 떨어졌다.

경북도는 13일부터 산사태 취약지역과 인명피해 우려지역 등에 대한 점검 및 위험 징후 시 사전 대피 조치를 취할 것을 각 지자체에 알렸다. 도는 15일 오전까지 도지사 명의의 특별지시사항을 4차례 내려 보내 지자체장 중심의 상황 관리를 요구했다. 주민 3000여명에 대한 사전대피와 도로 등에 대한 통제가 이뤄졌다.

예천군 산사태 피해 현장

예천군 관계자는 “호우가 예보된 직후부터 마을 별로 집을 떠나 마을회관 등으로 몸을 피할 것을 안내했다”면서 “마을방송이나 문자메시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알렸다”고 말했다. 실제 예천군은 15일 오전 1시47분쯤 ‘전 지역 산사태 경보, 유사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 등의 재난문자를 보내는 등 수차례 위급상황임을 전파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권고’ 수준에 그치다 보니 대규모 인명피해를 막지는 못했다. 경북도는 사망과 실종 등이 속속 확인된 15일 오후 9시에서야 산사태 위험 및 상습침수지역 주민 등을 대상으로 ‘대피명령’을 발령했다.

주민들도 더욱 강한 조치가 필요했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원순남씨(56·영주시 풍기읍)는 “군청이나 행정안전부 등 온갖 기관에서 온 문자가 70통이 넘는다”면서 “문자들이 경고의 의미는 있었지만 이제껏 비가 많이 와도 산사태가 난 적은 없어서 사고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씨(70대·예천군 효자면 백석리)도 “지금도 (재난)문자가 계속 들어오지만 형식적이어서 잘 안 본다”면서 “직접 와서 보고 어르신들을 부축해서 (대피장소로) 데리고 가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현장에서는 집이나 논밭이 걱정된다며 일부 주민이 사전 대피를 꺼리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다고 토로한다. 산사태 우려 시 주민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공공 시스템 마련이나 취약 계층을 위한 지자체 차원의 선제적 조치의 필요성 등이 제기되는 이유다.

경북도 관계자는 “평소 산사태 우려가 없었던 곳에서 사상자가 대거 발생했다”며 “취약지역 지정 유무와 관계없이 비가 집중된 곳은 위험했던 만큼 관련 대책을 손질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대부분이 매몰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일대에서 16일 소방대원들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조태형 기자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