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처리도 시급한데 신규 원전?···여야 ‘평행선’
정부가 사회적 합의 없이 선언한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후폭풍이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로 번지고 있다. 여당은 원전 확대에 대비해 국회가 하루빨리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은 특별법이 정부의 원전 확대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지렛대로 악용될 것을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당장 가동 중인 원전 폐기물도 처리 못 하면서 원전을 새로 짓는 일은 언감생심이라고 지적했다.
1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처리를 논의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특별법은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처분하기 위한 부지 선정 절차와 운영 일정, 처분장 유치지역 지원 체계, 독립적인 행정위원회 설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인선·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률안과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률안 등 총 3개 법안이 지난해 11월 법안소위에 상정된 후 8차례 논의가 진행됐지만 아직 심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 원전 부지 안에 임시로 약 1만8000t에 달하는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돼 있다. 저장 공간 포화 시점이 임박했기 때문에 특별법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원전 내 저장시설 용량 두고 이견
최대 쟁점은 원전 내 저장시설 용량이다. 김성환 의원안은 향후 원전별로 40~60년 동안 쌓인 폐기물만 저장할 수 있도록 용량을 제한했다.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의 수명 연장을 금지하는 탈원전 정책을 반영해서다. 이와 달리 이인선 의원안과 김영식 의원안은 노후 원전의 계속 운전을 바라는 정부 생각을 반영해 설계수명이 지나도 폐기물을 저장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최근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 여야의 골은 더 깊어졌다. 야당은 이번 특별법 처리가 자칫 원전 확대에 찬성하는 방향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실제 김성환 의원안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기반해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수명이 연장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발의됐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지금처럼 임시적인 형태의 습식저장시설에 보관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별도의 처분장을 마련하는 것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신규 원전 건설과 관련해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처분장 마련에 속도를 낸다는 의혹이 함께 제기된 탓에 여야가 접점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법에 폐기물을 처리할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확보 시점을 명시하는 것을 놓고도 여야 간에 의견이 엇갈린다. 현재 원전 대부분은 부지 안에 있는 습식저장시설에 사용후핵연료를 두고 열을 식혀 보관 중이다. 이렇게 냉각 과정을 거친 사용후핵연료를 중간저장시설로 옮긴 후 영구처분시설에 보관하도록 하는 게 특별법 제정의 목표다.
여당은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확보 시점을 각각 2050년과 2060년으로 못 박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야당은 시한을 정하기보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산자위 소속 민주당 관계자는 “시한을 정해두면 정부가 충분히 시간을 갖고 의견을 수렴하기보다 무리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원자력업계는 영구처분시설 확보시점을 2050년으로 앞당기는 방안을 제시했다. 신규 원전에 대한 투자가 녹색 경제활동으로 인정되려면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시설을 운영하기 위한 세부 단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유럽연합(EU)의 ‘그린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를 의식한 행보다.
2030년 한빛원전 시작으로 폐기물 저장공간 포화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과 별도로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마련이 시급한 현안이라고 강조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현재 운영 중인 원전만으로도 향후 7년이 지나면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원전 가동을 늘리면서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이 앞당겨진 측면도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면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한울·고리원전 순으로 원전 내 습식저장시설이 꽉 차게 된다.
결국 한국수력원자력은 3곳의 원전 부지에 임시방편으로 건식저장시설을 세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은 해당 시설이 영구적인 보관소가 될 우려가 있다며 시설 건립에 반대하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정책을 전담하는 독립적 행정위원회의 성격을 두고도 여야의 생각이 다르다. 야당은 장관급 기관장이 이끄는 독립적인 위원회를 선호하는 반면 여당은 국무총리 산하의 일반행정위원회로 둬야 한다고 본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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