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그들이 대중가요와 클래식을 넘나드는 이유는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2023. 7. 1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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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의 계보 - 일 디보와 로티니, 팬텀싱어까지

'팬텀싱어 4' 방송이 끝나고 또다시 새로운 스타들이 배출됐습니다. 우승팀인 '리베란테'와 준우승팀 '포르테나' 그리고 '크레즐'까지, 다채로운 음악적 배경을 가진 팀들이 방송 내내 개성 있는 퍼포먼스로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고, 시즌이 완결된 후부터 크로스오버 그룹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팬텀싱어는 2017년에 시작된 국내 최초의 크로스오버 보컬 오디션이죠. '크로스오버(Crossover)'는 다른 장르가 교차한다는 뜻인데, 클래식과 다른 장르가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팬텀싱어 한 시즌이 끝나면 새로운 남성 4중창 그룹들이 탄생하죠.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은 여러 형태일 수 있는데, 왜 굳이 '남성 4중창 그룹'을 결성하는 포맷으로 한정했을까요?

그룹 '일 디보' / 출처 : 일 디보 공식 페이스북


'일 디보(Il Divo)'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팬텀싱어 시즌1 떄는 '한국의 일 디보를 찾는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고요. 일 디보는 2003년 영국에서 남성 4명으로 결성된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 이름입니다. 일 디보(Il Divo)는 이탈리아어인데요, 여성형인 '디바(Diva)'가 더 친숙하죠. 원래 '신'을 뜻하는 단어에서, 신이 내렸다 할 정도로 뛰어난 스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일 디보의 프로듀서는 영국의 TV/음악 프로듀서 사이먼 코웰입니다.

사이먼 코웰은 수많은 뮤지션을 발굴하고, '엑스팩터', '갓 탤런트' 등 인기 시리즈를 처음 만든 사람이죠. 아메리칸 아이돌, 아메리카 갓 탤런트, 브리튼 갓 탤런트, 엑스팩터 영국, 엑스팩터 미국 등 수많은 프로그램에 '독설가' 심사위원으로 나와서 대중에게도 친숙합니다. 사이먼 코웰이 '쓰리 테너'의 젊은 버전을 만들겠다고 한 게 일 디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오디션을 거쳐, 테너 우르스 뷜러(스위스)와 데이비드 밀러(미국), 팝가수 세바스티앙 이장바르(프랑스), 바리톤 카를로스 마린(독일 → 스페인)으로 이뤄진 다국적 그룹 일 디보를 세상에 내놨습니다.

'쓰리 테너'


'쓰리 테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를 일컫습니다. 이들이 'The Three Tenors'라는 타이틀로 함께 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축하 공연 실황 음반은 무려 1,200만 장이 팔려나가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쓰리 테너'는 이후 월드컵 전야제 때마다 공연하며 흥행을 보장하는 슈퍼 브랜드가 됐습니다.

이들은 오페라 아리아 외에도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1994년 LA콘서트에서 부른 'A Tribute to Hollywood' 메들리) 한국에서도 2001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기념 쓰리 테너 공연이 열렸고, 마지막 쓰리 테너 콘서트는 2005년 멕시코에서 열렸습니다. 2007년 파바로티는 세상을 떠났고, 카레라스는 사실상 은퇴했고, 도밍고는 2019년 그가 성적으로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음악계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명성에 금이 갔지만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tezDcWcqOog ]

일 디보 멤버 대부분은 클래식 음악가 출신이지만, 클래식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활동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프로듀서인 사이먼 코웰의 영향력 덕분에 엑스팩터나 갓탤런트 등 많은 TV프로그램에도 출연했죠. 멤버들은 매력적인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 화려한 퍼포먼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일 디보는 Regresa a Mi (Unbreak of My Heart) , 토니 브랙스턴과 함께 부른 2006 독일월드컵 공식주제가
[ https://www.youtube.com/watch?v=DJNzmNB48no ]'The Time of Our Lives' 그리고 셀린 디옹과 함께 한
[ https://www.youtube.com/watch?v=4aOxDHqWyK0 ]'I believe in You' 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khtt0H652Sk ]

일 디보는 전 세계에서 3천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 160여 개의 골드/플래티넘 디스크 기록을 세웠습니다.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했는데요, 2007년 일 디보의 첫 내한공연은, 현대카드가 '슈퍼콘서트' 브랜드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열었던 공연이기도 합니다.

이제 20년이 된 일 디보의 근황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직 건재하네요. 이들은 2017년 사이먼 코웰과 결별한 후에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멤버 중 한 명인 카를로스 마린은 안타깝게도 2021년 영국 크리스마스 투어 도중 갑자기 발병해 맨체스터의 한 병원에서 53살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 합병증이었다고 합니다. 카를로스 마린이 세상을 떠난 후인 지난해, 일 디보는 미국의 바리톤 스티븐 라브리를 스페셜 게스트로 합류시켜 공연 투어를 재개했습니다. 지금도 남성 4중창 포맷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거죠. 스티븐 라브리는 올해도 스페셜 게스트로 일 디보와 함께 전 세계 공연 투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음역대와 음색, 개성이 각각 다른 네 명의 남성 보컬리스트가 함께 만드는 하모니의 힘. '일 디보'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일 디보를 닮은 남성 4중창 그룹이 나오게 됩니다. 2012년, '팬텀싱어'가 시작되기 한참 전에 탄생한 이 그룹의 이름은 '로티니(Rottini)'입니다. '로티니'는 클래식 음악가 중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끝 음절인 '로티'와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를 합쳐서 만든 이름입니다.

그룹 '로티니(Rottini)'


로티니는 테너 박지민, 바리톤 임경택(조셉 임), 임창한, 허종훈(알도 허), 당시 30대 초반의 남성 성악가들로 결성되었습니다. 박지민은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무대 주역, 임경택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 1위, 임창한은 프랑스 베지에 콩쿠르 1위, 허종훈은 스페인 빌바오 콩쿠르 1위 출신으로 각각 영국과 미국, 프랑스와 스페인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런던에서 처음 만나 뭉쳤는데요, 이것도 일 디보와 닮은 점이네요.

로티니는 클래식 외의 다양한 레퍼토리로 좀 더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레퍼토리는 프랑스 샹송, 스페인 민요, 뮤지컬 넘버와 한국 대중가요까지 커버했습니다.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깜짝 콘서트를 여는 등, 색다른 시도도 꺼리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Vita Mia'라는 곡으로 데뷔하고 소니 클래시컬에서 음반도 냈습니다. 'Vita Mia'는 90년대 팝스타 클리프 리처드와 테너 빈센초 라 스콜라가 함께 불러 인기를 끌었던 곡을 4중창으로 다시 부른 겁니다. (▶
[ https://www.youtube.com/watch?v=FzofgXB68X4 ]로티니 데뷔 당시 SBS뉴스 기사 보기)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1981785 ]

로티니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중심이 된 실내악 앙상블 '디토'를 성공시킨 클래식 기획사에서 '디토' 다음에 착수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기획사에서는 '기악 앙상블 다음엔 성악 앙상블'이라고 여겼고, 일 디보의 성공 사례에 고무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그룹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있었습니다. 디토 때도 그랬지만, 뮤직비디오나 화보 제작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로티니의 활동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014년 콘서트를 끝으로 로티니는 활동이 중단됐고, 멤버들은 각자 원래 하던 개인활동으로 돌아갔습니다. '로티니'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로티니를 '한국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의 원조'라고 부르곤 합니다. 팬텀싱어가 배출한 그룹들의 성공을 보면서 기획사 관계자들은 '로티니' 때를 떠올리며 아쉬워한다고 합니다.

로티니 멤버들이 각각 전 세계 오페라 극장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다가, 팀 일정이 있을 때만 한시적으로 모여서 활동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또 대중성을 지향한다고는 했지만, 크로스오버 성악 레퍼토리를 충분히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요즘 팬텀싱어는 팝송이나 해외 민요, 록음악과 국악까지, 장르 불문 다양한 곡들을 편곡해 계속 새로운 레퍼토리를 내놓고 있는데, 로티니는 그러지 못했다는 겁니다. 결국은 원래 하던 오페라 아리아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하죠.

무엇보다도 당시엔 요즘처럼 동영상 플랫폼을 통한 음악 콘텐츠 소비가 많지 않았습니다. 가끔 하는 공연만으로는 대중의 관심을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로티니 팀 활동이 중단되자 멤버들은 다시 원래의 영역에서 각자 활동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공연장에서 마침 '로티니'를 만들었던 기획사 대표를 만나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로티니'는 실패했을까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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