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처럼 해주세요”...외국인들로 북적이는 강남 병원, 무슨 일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 어설픈 영어 소리가 들린다. 접수대 앞에 여행용 캐리어를 든 일본인의 피부 관리 요구사항이다. 바로 인천공항에서 병원을 찾은 듯한 10여명의 일본인들도 등록을 위해 늘어서 있다. 주말마다 피부 미용을 위해 정기적으로 이 병원을 찾는 일본인들이다. 심지어 일본 연예인들까지 눈에 띈다. 진료실 옆에는 구미주 권역의 노랑머리 환자들도 곳곳에 앉아 대기중이다.
병원 관계자는 “과거 에이전트를 통해 한국 병원을 찾았다면 요즘은 구글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검색을 통해 스스로 찾아온다”며 “특히 일본인들은 코로나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200~300% 이상 늘어났다. 주로 원하는 게 ‘한국인과 같은 피부’다”고 귀띔했다.
K팝도, K콘텐츠도 아니다. 이번에는 K의료관광이다. ‘뷰티 여행족’들이 한국으로 몰려들면서 고부가가치 의료관광 시장이 불붙고 있다. 엔데믹 보복 소비 붐을 타고 일본인 뿐 아니라, 몽골 등 중앙아시아, 구미권역의 여행족들까지 전방위로 가세하면서 MICE를 넘어서는 핵심 관광 산업 분야로 떠오를 태세다.
호수영 한국관광공사 의료웰니스 팀장은 “과거 중국 일변도의 성형 시장이, 전방위 피부미용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피부과 뿐 아니라 한방병원까지 접수하면서 K미용의 파워가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신촌의 한 피부과에도 5월 한달 동안만 300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몰렸다. 중국인들은 주로 위챗 샤오홍슈 등을 통한다. 일본인들은 라인이나 트위터를 통해 홍보 상담을 받고 예약을 진행했다. 주로 토요일 오전, 마치 한국인들처럼 보톡스나 필러를 맞고 돌아간다.
신촌점 관계자는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도 적게는 2배, 많게는 3~4배에 달하는 규모”라며 “업무시간엔 상담전화가 하도 많아서 사적인 통화를 할 틈도 없을 정도다”고 혀를 내둘렀다.
한방병원도 단골 포인트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있는 자생한방병원엔 몽골 뿐 아니라 중동 지역의 환자들까지 몰려들고 있다. 전용병동 쯤은 약과다. 기도 문화를 밀어주기 위해 기도실까지 따로 마련하고 있다. 척추질환 치료 뿐 아니라 만성질환 관리, 건강검진, 재활치료까지 전방위 치료를 받고 간다.
미용과 탈모를 전문으로 하는 한방병원들도 인기다. 팬데믹 이전엔 중국과 동남아 등 아시아권 수요가 전부였지만, 최근엔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영미권까지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한방병원은 장기 여행이 대부분인 영미권 예약이 몰리면서, 9월말까지 풀부킹이다.
서울 시내 한방병원 한 관계자는 “치료체험 후 한의약에 대한 호평까지 SNS에 공유하고 있다”며 “대부분 ‘신비롭다. 안전하다. 부작용이 없다’는 긍정적인 평가들이다”고 말했다.
의료 관광은 한 곳의 진료·치료만으로 끝나지 않는게 강점이다. 병원 일이 끝나고 나면 ‘의료 쇼핑’으로 이어진다. 일종의 의료 낙수효과다. 실제로 탈모 치료를 받은 뒤 피부 성형외과를 추천해 달라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며, 특히 타 진료과목 치료후에 한방병원을 추가로 문의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병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 권역은 상호 치료 프로그램을 추천하는 식으로, 의료관광 파이를 키우고 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49만7464명으로 집계됐다. 당시 이들이 한국 의료관광을 위해 지출한 금액은 3조331억원, 이로 인한 생산유발액은 5조5000억원으로 각각 분석됐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보건복지부· 법무부가 합동 발표한 ‘외국인 환자 유치 활성화 전략’에 따르면 정부는 2027년 외국인 환자 70만명을 목표로 잡고 있다. 단순 계산해도, 4조268조원의 관광수입과 7조7392조의 생산유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전망이다.
이런 경제 효과 때문에 관광 전문가들은 오히려 MICE 보다 의료관광을 우위에 둔다.
서울 시내 또 다른 한방병원 관계자는 “1회 치료비용이 50만원 선이지만, 외국인 환자들은 대부분 1년치 한약재를 추가 구입해 간다. 그래서 객단가가 국내 환자들 보다 두세배 이상 높은 편이다”고 말했다.
◇ 일본인 의료관광 5.6배 폭증
엔데믹이 본격화 한 올해는 ‘의료관광’ 한류라 불러도 될 정도다.
의료관광 파워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한국 외국인환자 유치 등록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집계한 ‘2022 외국인환자 유치실적 통계분석보고서’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환자 수는 총 24만8110명으로 전년대비 70.1% 상승했다. 코로나가 한창인 시기여서 하늘길이 사실상 막혔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국적별로는 미국(17.8%)이 가장 많았고, 중국(17.7%) 일본(8.8%) 태국(8.2%) 베트남(5.9%) 순이다. 특히 싱가포르와 일본은 전년대비 각각 6.2배와 5.6배 폭증했고, 나머지 국가들(태국 144.1%, 필리핀 136.9%, 싱가포르 127.0%)도 고르게 한국을 찾았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진료과목이다. 팬데믹 직전 성형 정도에 머물던 진료가 내과(22.3%), 성형외과(15.8%), 피부과(12.3%, 건강검진센터(6.6%), 정형외과(3.9%)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외국인환자가 가장 많이 몰린 지역은 역시나 서울로 16.6만 명(59.0%)에 달했다. 경기도에 4만 명(16.0%) 정도가 몰렸고, 대구에도 1.4만 명(5.6%)이 찾았다.
의료기관 종별로는 의원(36.3%) 종합(28.8%) 상급종합(18.9%) 병원(10.7%) 치과의원(2.3%) 등 순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이행신 국제의료전략단장은 “2022년은 여전히 감염의 위험성은 존재했지만, 외국인 환자가 70.1% 증가하는 등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의 절반까지 회복한 해였다”라면서 “K의료관광의 탄력이 올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평가했다.
관광전문가들은 이들의 입국 행태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대행업체를 끼고 수수료를 줘 가며 한국을 찾았던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SNS, 유튜브 등 자발적 루트를 통해 정보를 얻은 뒤, 스스로 한국을 찾고 있다. 코로나 이전과 확 달라진, K의료관광 뉴노멀인 셈이다.
향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시장은 중동 권역이다. 아직 입국 통계상에 제대로 잡히진 않지만, 중동 파워는 상상초월이다. 이미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아랍에미레이트와 두바이 등을 돌며 K트래블, K관광로드쇼를 연이어 열고 K웰니스와 K의료관광을 소개하고 돌아왔다.
중동은 전체 외래관광객의 1% 이내에 그치지만, 일반 외래관광객의 평균 지출액에 비해, 미국 달러 기준으로 27%나 씀씀이가 크다. 외래 관광객의 평균 체류 일수인 10.5일 보다 3.8일 이상 더 머무는 것도 인상적이다. 특히 중동 의료관광객은 평균 지출액이 약 1500만원으로 전체 평균의 6배를 지출하는 ‘고부가 장기체류형’이다.
박종선 한국관광공사 홍보실장은 “K뷰티와 한류에 관심이 많은 MZ세대, 여성층까지 적극 유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K의료관광 연계 효과도 증폭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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