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사망후 9개월…상속문제 정리안되면 특별법도 무용지물
관리인 업무범위서 제외된 미가입자·상속인 찾아 삼만리
"사망한 임대인 상속 문제, 공공차원에서 개입해달라"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빌라·오피스텔 1천200여채를 보유하다 숨진 이른바 '빌라왕' 김모(42) 씨가 사망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이 끝나지 않고 있다.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에 들고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던 피해자 300여명은 최근 김씨의 상속재산관리인이 선임되면서 오랜 기다림 끝에 구제받게 됐다.
그러나 상속재산관리인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보험에 가입한 피해자와 관련한 업무만 수행하게 돼 있어 보증보험 미가입자들은 기약 없이 김씨 상속 문제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경매 진행이 어렵기에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의 여러 조치도 무용지물에 가까워진다.
사망 7개월여만에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16일 HUG에 따르면 지난달 5월 26일 의정부지방법원은 김씨의 상속재산 관리인을 선임했다. 이는 6월 1일부로 효력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보증보험에 가입한 김씨 피해자에 대한 대위변제(보증 기관에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먼저 돌려준 뒤 임대인에게 회수하는 것)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HUG에서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 받으려면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임차권 등기를 마쳐야 한다.
그러나 사망한 김씨 피해자의 경우 첫 단계인 '계약 해지'를 통보할 당사자가 사라져 모든 절차가 중단된 상태였다. 계약 해지를 통보하지 못하면 묵시적으로 계약이 연장된다.
임대인이 사망한 경우 상속인이 정해지면 그를 대상으로 임대차 계약 해지 통보를 할 수 있는데, 종부세만 60억원 넘게 체납한 김씨 재산을 상속받으려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1순위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하면, 4촌 이내 혈족인 4순위까지 의사 확인을 거친다. 모두 상속을 포기하면 법원에서 상속재산관리인을 선임하게 된다.
김씨의 경우 3순위 상속권자까지 포기 절차를 마쳤지만 마지막 4순위 상속권자가 외국에 이민 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절차 진행이 더디다.
4순위까지 상속 포기 절차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만, HUG는 '법원은 이해관계인의 청구에 의해 상속재산 보존에 필요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는 민법 제1023조 조항을 활용해 상속재산관리인 선임을 요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피해자들이 상속재산관리인을 대상으로 계약 해지와 임차권 등기를 통보하고 HUG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속재산관리인 선임으로 보증금 반환 절차를 밟고 있는 피해자는 이달 초 기준 316명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이 HUG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달 2일 기준으로 HUG 보증보험에 가입한 김씨 피해자는 총 695명이다. HUG는 이 중 292명(42%)에 게 보증금을 대신 돌려줬고, 316명(45%)은 대위변제를 받을 예정이다. 나머지 87명은 김씨 사망 전 전세 계약을 해지했다.
상속문제 해결 안 되면 특별법도 '무용지물'
문제는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김씨 피해자들이다.
상속재산관리인의 업무 범위가 보증보험 가입자에 한정됐기 때문이다.
피해자 백이슬 씨는 "상속재산관리인이라고 하니, 김씨의 모든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미가입자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며 "그런데 HUG에선 상속재산관리인이 보증보험 가입자의 업무 처리만 도울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고 말했다.
HUG는 주택도시기금법 등 법률에 근거가 있는 업무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보증보험 가입 물건(주택)을 대상으로만 상속재산관리인을 선임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HUG 관계자는 "(미가입자 주택에 대한 조치는) 주택기금법상 HUG의 업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권한이 없고, 민법상 이해관계자가 아니어서 법원에 상속재산관리인 선임을 청구할 권한 또한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HUG가 이미 전세피해지원센터 운영, 피해주택 경매 대행 등 전세사기 피해자 전반에 대한 업무를 하는 만큼, 사망한 임대인의 상속 문제도 공공성 차원에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토교통부 등 정부 차원의 구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가입자에게 최선의 방안은 살고 있는 집을 경매에 넘겨 선순위 배당을 받고 보증금을 일부라도 회수하거나 경매로 집을 떠안는 방법인데, 이를 위해선 상속 문제가 정리돼야 한다. 특별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다 해도 상속 절차가 끝나야 경매에 들어갈 수 있다.
미가입자들이 따로 상속재산관리인을 선임하려면 4순위 상속 포기 절차가 마무리돼야 해 또다시 기다림을 이어가야 한다. 관리인 비용 부담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백씨는 "HUG에서 선임한 김씨 상속재산관리인을 미가입자들도 이용할 수 있다면 상속인을 찾으려 애를 태울 필요가 없다"며 "보증금 돌려받는 것을 포기한지는 이미 오래고, 경매를 통해 빨리 집이라도 넘겨받고 싶다"고 했다.
보증보험에 미가입한 김씨 피해자들의 주택에는 구상권 청구를 위한 HUG의 압류가 걸려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이철빈 공동위원장은 "결국에는 보증보험 가입자, 미가입자가 모두 연결돼 있는데 왜 굳이 두 피해자 주체를 분리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김씨 피해자이기도 한 이 위원장은 "상속 문제가 해결 안 되면 특별법이 유명무실해진다"며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상속재산관리인을 세울 수 있기는 하지만 비용 문제가 있고, 전문적인 영역을 개별 피해자 차원에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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