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룟값 올랐다면서 매출원가는 하락… 라면의 탐욕 [視리즈]
원재룟값 앞세운 식품가격 인상
라면 · 소주 얼마나 올랐나
물가상승률 웃도는 가격인상률
정작 매출원가율은 제자리걸음
정부 압박에 가격인하했지만
식품업계 탐욕 살펴볼 때
# 정부의 압박에 식품업체들이 일부 제품 가격을 인하했다. 고물가 시대에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면서 "밀 가격은 떨어지는데 치솟은 라면값은 왜 안 내리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 하지만 정부가 시시때때로 '가격을 내리라 마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가격 결정은 식품업체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럼 지난 10년간 대표 서민식품인 라면과 소주 가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식품업체들에 가격 인상은 '히든카드'다. 제품 가격을 올리면 정체 중인 매출이 증가하고,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데다, 경우에 따라선 주가까지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2011년 한 증권사가 발간한 '하이트진로' 리포트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소주 가격이 1% 오르면 매출액이 60억~70억원, 영업이익이 40억~50억원 증가할 전망이다."
실제로 이듬해 하이트진로는 소주 '참이슬(360mL)'의 출고가를 888원에서 961원으로 8.2% 인상했다. 증권가의 전망대로 실적은 증가했다. 하이트진로의 2012년 매출액은 2조346억원으로 전년(1조3736억원) 대비 48.1% 늘었다. 영업이익도 33.7%(1249억원→1671억원) 증가했다.
식품업체에 가격 인상이 '치트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요한 건 가격을 끌어올린 이유를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느냐다. 식품업체들은 가격을 인상할 때마다 "원재료 가격과 각종 제반 비용의 상승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최근 수년간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2022년 2월 발발) 전쟁의 여파로 밀·옥수수·설탕 등 원재료 가격이 급등한 것은 사실이다. 식품업체들은 이를 즉각 가격에 반영했다. 문제는 이후 원재료 가격이 차츰 안정화했지만 한번 오른 가격은 떨어질 줄 모른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가 물가 관리를 위해 식품업체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지난 6월 18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한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지난해 라면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그때보다 국제 밀 가격이 50%가량이 하락했다"면서 "밀 가격 인하분만큼 라면 가격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6월 28일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제분업체들과 간담회를 열고 밀가루 출하 가격 인하를 촉구했다. 실제로 국제 밀 선물가격은 지난해 5월 17일 톤(t)당 469.9원까지 치솟았지만 현재 235.8원(7월 10일)으로 떨어졌다. 이는 러시아-우크라 전쟁 이전 수준 가격대다.
정부의 압박에 식품업체들은 백기를 들고 가격을 일부 인하했다. 농심은 7월부터 라면·과자 가격을 최대 6.9% 내렸다. 삼양식품과 오뚜기도 7월 1일 기점으로 각각 라면 가격을 평균 4.7%(12종), 5.0%(15종) 내렸다.
하지만 식품업체들이 물가 상승을 앞세워 최근 1~2년 연속해 가격을 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그동안의 가격 인상률에 비하면 이번 가격 인하율은 아쉬운 게 사실"이라면서 "다만 이번 조치로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관계자 역시 "기업들은 실제 원재료 가격 상승률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번 가격 인하는 일부 제품에 한정된 생색내기 용으로, 기업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원재료 가격 변동률을 소비자가격에도 빠르게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식품업체의 가격 인상은 실적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대표적인 가공식품인 '라면'과 '소주' 판매량 1위 제품을 통해 답을 찾아보자.
■ 서민식품➊ 라면 = 농심 '신라면'은 라면 시장 부동의 1위 제품이다. 농심은 신라면 가격을 꾸준히 인상해 왔다. 물론 이번처럼 가격을 끌어내린 사례는 13년 전에도 한번 있었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국제 밀 가격 하락을 이유로 식품업체들을 압박했고, 농심은 신라면 가격(이하 출고가 기준)을 2.7% 인하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소비자 사이에선 "올릴 땐 훌쩍, 내릴 땐 찔끔"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2008년 농심이 신라면 가격을 15.2%나 인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농심은 밀 가격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큰 폭으로 인상했지만 밀 가격은 금세 안정을 찾았다. 그 사이 소비자의 부담만 커진 셈이었다.
여기에 더해 농심은 가격을 내린 지 1년 만인 2011년 신라면 가격을 다시 8.4% 올렸다. 이어 5년 후인 2016년에도 가격을 5.7% 인상했다. 앞서 언급했듯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농심은 원재료 가격 상승 등을 앞세워 가격을 인상했다. 2021년에는 7.5%, 2022년에는 11.0% 올렸다.
2010년 530원이던 신라면 가격은 13년 만에 726원으로 36.9% 올랐다. 출고가에 유통마진 등이 더해져 실제 소비자 구매가격은 신라면 1봉지당 1000원(7월 1일부터 950원로 인하)이 됐다.
이렇게 소비자 부담이 커졌지만 농심의 매출원가율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해 매출원가율은 71.2%로 전년(69.2%) 대비 소폭 상승했지만, 2010년 72.6%, 2011년 73.3%, 2012년 72.5% 등과 비교하면 되레 낮은 수준이다. 올해 1분기 매출원가율은 69.3%로 더 떨어졌다. 원재룟값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인상했지만, 정작 매출원가는 줄어든 셈이다.
당연히 가격 인상은 농심의 실적만 개선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농심의 매출액은 3조1291억원으로 전년(2조6630억원) 대비 17.5%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5.7% (1061억원→1122억원) 늘었다.
7월 1일부터 신라면 가격을 4.5% 인하했지만, 지난 2년간 가격을 18.5%(2021년 7.5%+2022년 11.0%) 인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적에 큰 타격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하이투자증권은 올 2분기 농심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13.1%, 853.4%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서민식품➋ 소주 = 대표적인 서민 술 '소주' 가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주 시장점유율 1위인 '참이슬(하이트진로)'의 가격 추이를 보자. 2010년부터 현재까지 하이트진로는 참이슬(360mL 출고가 기준) 가격을 4차례(2012년 8.2%→2015년 5.6%→2019년 6.5%→2022년 7.8%) 인상했다. 3년에 한번꼴로 가격을 올린 셈이다. 10년간 가격 인상률은 31.3%로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상승률 28.6%를 웃돌았다.
그렇다면 소주의 가격을 좌우하는 원재료 주정 가격(1L당 기준)은 어떨까. 2010년 대비 2023년(1분기) 주정 가격은 15.5%(1496. 35원→1729.30원) 오르는 데 그쳤다. 2013 ~2019년엔 1590원대로 유지됐고, 2020년엔 1580원대로 되레 낮아지기도 했다.
물론 지난해엔 주정 가격이 1700원대로 올랐지만 하이트진로는 이같은 부담을 가격 인상을 통해 상쇄했다. 그 결과 2022년 매출액은 2조4976억원으로 전년(2조2029억원) 대비 13.3%, 영업이익은 1906억원으로 같은 기간 9.4%(2021년 1741억원) 늘었다.
매출원가율 역시 올해 1분기 기준 55.5%로 전년 동기(58.3%) 대비 2.8%포인트 하락했다.[※참고: 물론 주정뿐만 아니라 포장재 등 다른 원재료 가격도 소주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기사에선 하이트진로 전체 원재료 매입액의 41.0%(2023년 1분기 기준)를 차지하는 주정을 다뤘다.]
더 큰 문제는 '식품업체만 웃는' 이런 가격 인상 패턴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번에야 정부의 압박에 백기를 들었지만, 정부가 시시때때로 기업의 가격결정권을 건드릴 순 없다.
더구나 농심이나 하이트진로처럼 1위 업체가 가격을 끌어올리면 2~3위 업체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농심이 가격을 올리면 삼양식품, 오뚜기가 뒤따른다. 하이트진로가 소줏값을 올리면 롯데칠성음료가 처음처럼의 가격을 올린다. 탐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거다.
이은희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가공식품 가격은 민생과 직결된다. 기업들이 ESG 경영을 추구한다면 물가 상승 분위기에 편승해 가격을 올리기보단 서민들의 상황을 고려해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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