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닉 5 N, 폼 미쳤다"…美서 조롱받던 현대차 '대반전'
현대차 최초의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
과거 촌스럽고 값싼 브랜드로 인식됐던 현대차·기아의 이미지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실행력과 고성능 차량 연구개발에 대한 집착으로 완전히 뒤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N 브랜드 첫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
현대차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영국 웨스트서식스주에서 개막한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아이오닉 5 N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아이오닉 5 N은 현대차의 첫 번째 고성능 순수 전기차다. 주행 성능이 웬만한 스포츠카를 넘어선다.
최고 출력 650마력(478kW), 최고 속도는 시속 260km에 달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3.4초밖에 걸리지 않을 만큼 가속력이 폭발적이다. 고성능 전기차의 대명사가 된 포르쉐 타이칸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성능과 함께 호평을 받고 있는 건 내구성이다. 전기모터와 배터리로 구동되는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보다 열 관리가 훨씬 까다롭다. 최고 속력을 지속해 유지하면서도 배터리 과열을 방지하는 게 기술력이다.
아이오닉 5 N은 독보적 배터리 열 관리 기술로 이를 가능하게 했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현대차는 운전자가 고른 주행 목적에 따라 차가 스스로 배터리 온도를 최적으로 관리해주는 'N 배터리 프리컨디셔닝' 기능을 처음 적용했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 카앤드드라이버는 "배터리 열 관리 부문에서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도 최적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전기차 전문지 '일렉트렉'은 "한국 자동차 업체가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을 닦고 있다"고 호평했다.
아이오닉 5 N을 접한 자동차 전문 유튜버들도 "현대차 이번에 '폼 제대로 미쳤다'(좋은 제품을 개발했다는 뜻)", "무겁고 재미 없을 거라는 전기차의 편견을 깼다"는 반응을 내놨다.
정의선, '고성능 차량' 연구개발 의지…아이오닉 5 N으로 꽃 피워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인 'N'은 2015년 출범해 2017년 N 브랜드 첫 모델인 'i30 N'을 출시하며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넓혀줬다.
이후에도 2018년 벨로스터 N, i30 패스트백 N, 2021년 아반떼 N, 코나 N 등 다양한 N 라인업으로 소비자들에게 운전의 즐거움을 주는 밑거름이 됐다.
2018년에는 고성능차 사업과 모터스포츠 사업의 시너지를 높여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자 고성능사업부를 신설했으며, 고성능차 전문가를 적극 영입해 고성능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양산차의 기술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N 브랜드'의 탄생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차량으로 평가받던 현대차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는 정 회장의 고민에서 비롯됐다.
실제 정 회장은 2018년 미 소비자가전전시회(CES)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마차를 끄는 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싸우거나 잘 달리는 경주마도 필요하다"며 "고성능차에서 획득한 기술을 일반차에 접목할 때 시너지 효과가 크기 때문에 현대차에 꼭 필요한 영역"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현대차는 월드랠리챔피언십(WRC)를 비롯해 TCR 월드 투어(전 WTCR),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등 수많은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차량의 성능을 갈고 닦았으며 △2017년 N의 첫 번째 판매용 경주차 i30 N TCR △2019년 벨로스터 N TCR △2020년 아반떼 N TCR 등 뛰어난 상품성을 갖춘 서킷 경주차를 지속 선보였다.
2019년에는 WRC 참가 6년 만에 한국팀 사상 최초로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모터스포츠 무대 정상에 우뚝 섰다. 다음해 WRC에서도 다시 한번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거머쥐며 고성능 기술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음을 입증했다.
전동화로 새로운 기회
전동화 시대는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현대차는 전기 경주차 벨로스터 N ETCR을 개발해 2021년과 2022년 순수 전기차 기반의 투어링카 레이스 'PURE ETCR(Electric Touring Car Racing)'에 출전함은 물론, 수소연료전지 발전기를 사용해 ETCR 출전 차량에 전기 충전을 제공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모터스포츠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보여줬다.
2022년 WRC부터는 내연기관 기반이 아닌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기반의 신규 기술 규정이 적용됨에 따라 i20 N의 1.6L 4기통 엔진에 100kW급 전동모터를 탑재한 i20 N Rally1 하이브리드 경주차로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현대차는 고성능 콘셉트카 2대도 공개하며 글로벌 모터스포츠 팬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무거워지고 열 관리가 필수인 전기차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전기차의 소프트웨어 측면의 잠재력을 활용해 사운드, 진동 등 고성능의 감성적 영역에서도 다양한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전기차 시대에도 N의 3대 핵심 요소를 계승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N 브랜드의 진보한 전동화 기술이 담긴 롤링랩이 대표적이다. 롤링랩은 움직이는 연구소라는 뜻으로 모터스포츠에서 영감 받은 고성능 기술들을 양산모델에 반영하기에 앞서 연구개발 및 검증하는 차량이다.
롤링랩 RN22e는 N 브랜드의 첫 번째 E-GMP 기반 고성능 차량으로 아이오닉 5 N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수소 하이브리드 롤링랩 N Vision 74는 향후 전기차 시대를 넘어 더 먼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고성능차 개발에 대한 노하우를 얻기 위해 만든차다.
전기차 시대의 새 기준을 세우고자 한 현대차의 노력은 마침내 N 브랜드 최초의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의 탄생으로 구체화됐다.
아이오닉 5 N은 과거 유산 계승을 통해 유연한 전동화를 적극 추진하는 현대차의 핵심 전동화 전략인 '현대 모터 웨이(Hyundai Motor Way)'의 실행을 알리는 상징적인 모델이다.
현대차는 내연기관 N 모델을 통해 고성능 차량용 서스펜션, 브레이킹 시스템 등 여러 하드웨어적 기술 개발을 이뤄왔으며,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 등을 통해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열 관리, 고성능 주행을 위한 소프트웨어 제어 기술 등을 향상시켰다.
또 회생제동을 활용해 날카로운 코너링에 도움을 주는 'N 페달(N Pedal)' 모드, 전·후륜에 최적의 구동력을 배분함으로써 원활한 드리프트 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N 드리프트 옵티마이저(N Drift Optimizer)' 등 코너링 특화 사양을 비롯해, 주행 목적에 따라 배터리 온도를 최적으로 관리해주는 열 관리 시스템 'N 배터리 프리컨디셔닝' 등 다양한 고성능 전기차 N 전용 기술들을 적용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에는 과거부터 축적해 온 최고 수준의 기술과 혁신을 위한 도전의 시간이 녹아 있다"며 "전동화 시대에도 고객들에게 변치 않는 운전의 즐거움을 제공하고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리더십을 확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WSJ "현대차가 '쿨(Cool)' 해졌다"
현대차의 최근 변화에 외신도 주목하고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5월 '현대차는 어떻게 쿨(Cool) 해졌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1967년 창업부터 미국 시장 진출, 그리고 세계 3위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집중 분석했다. 특히 중국을 제외한 세계 전기차 판매 1위 기업인 테슬라를 목표로 삼을 정도로 전기차 선도 기업 반열에 오른 사실을 집중 조명했다.
현대차의 위상이 높아진 배경에는 2020년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자리를 물려받은 정의선 2대 회장이 있다고 WSJ은 진단했다. 정 회장이 전기차뿐 아니라 비행자동차나 로봇 같은 혁신 기술들에 대한 투자를 독려해왔다는 것이다.
WSJ는 정 회장이 전기차 분야를 주요한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고 봤다. 최근 현대차가 공개한 전기차 아이오닉 6는 지난달 뉴욕 오토쇼에서 '올해의 차'로 선정되는 등 평론가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다.
1967년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 현대차가 1980년대 엑셀을 내세워 미국에 상륙했을 때만 해도 일본 차인 혼다의 '짝퉁'이라고 미국 방송사들이 웃음거리로 삼았던 것과 확 달라진 변화다. WSJ는 현대차가 이제 멋진 디자인과 우수한 성능을 갖춘 전기차를 만들어 테슬라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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