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여름휴가 간다더니”…오송 지하차도 실종자 ‘애타는 가족들’

이삭 기자 2023. 7. 16. 12: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망자 5명 나온 급행버스, 폭우로 노선 변경했다가 참변
집중호우에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16일 119 구조대원들이 수색 중 수습한 실종자 시신 1구를 옮기고 있다. 성동훈 기자

“친구들과 여름 휴가로 KTX를 타고 여수 여행을 간다고 했는데…”

16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 앞에서 만난 이모씨(49)는 착잡한 얼굴로 물에 잠겨있는 지하차도를 바라봤다.

앞서 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쯤 폭우로 이 지하차도가 침수돼 차량 10여 대가 고립됐다. 이 사고로 9명이 숨지고 9명이 구조됐다.

이 씨는 사고 현장에서 연락이 끊긴 외조카 A씨(24)의 소식을 밤새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사고 당일인 지난 15일 오전 여름휴가를 위해 친구와 시내버스를 타고 KTX 오송역으로 가던 중 지하차도에서 실종됐다고 한다. A씨의 친구 2명은 오송역에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고, A씨는 친구 한 명과 버스를 타고 역에 가던 중 변을 당했다.

집중호우에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16일 119 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이씨는 “A씨가 역에 도착하지 않자 기다리던 친구가 전화를 걸었는데 A씨가 ‘버스 기사가 물이 들어차고 있으니 유리창을 깨고 탈출하라고 했다’고 말한 것이 마지막 통화”라며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사고 현장을 찾았는데 밤샘 작업에도 물이 빠지지 않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날 사고 현장에서는 대용량 방사 시스템 3대가 쉴 새 없이 황토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 장비는 분당 3만ℓ의 물을 빼낼 수 있다. 물빼기 작업으로 4.5m 높이 터널에 들어찼던 물은 서서히 빠지고 있으나 속도는 더딘 상황이다. 미호강에서 범람한 물이 계속해서 지하차도로 밀려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재난당국의 배수작업으로 이날 오전 8시 현재 터널 입구에 들어찼던 물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물이 빠지면서 지하차도에 고립됐던 버스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날 새벽 5시 55분부터는 잠수부 등이 지하차도에 투입됐다. 수색 과정에서 오전 7시 26분쯤부터 시신8구가 차례로 발견돼 인양됐다. 버스 앞부분에서 7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고, 버스 뒷편에서 여성 1명과 남성 3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후 같은 날 오전 8시 50분쯤 남성 1명의 시신이 지하차도에서 추가로 확인됐다. 재난당국은 또 이날 낮12시3분쯤 지하차도 가드레일 부분에서 여성 시신 1구를 추가로 인양했다. 이어 오후 1시44분쯤 지하차도 내부에서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가 추가로 발견됐다. 앞서 지난 15일 31세 남성으로 추정되는 사망자를 포함하면 이곳에서 총 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날 사망자 5명이 발견된 버스는 747급행버스다. 청주국제공항∼고속버스터미널∼충청대∼오송역 구간을 왕복 운행한다. 이 버스는 원래 오송지하차도를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고 당일 해당 버스는 노선을 변경해 운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중호우에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16일 오전 119 구조대원들이 수색 작업 중 실종자 시신 1구를 수습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전날 청주 시내에서 강내면 쪽으로 운행하던 버스 운전자는 오전 8시 20분쯤 3순환로 강상촌교차로에서 방향을 틀어 청주역분기점 쪽으로 버스를 몬 것으로 청주시는 파악하고 있다. 폭우에 저지대인 강내면 일대가 침수돼 당일 오전 5시 30분부터 탑연삼거리에서 도로가 통제되자 우회 운행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버스는 당국이 교통통제를 하지 않는 사이 지하차도에 진입했고, 쓰나미처럼 몰려온 강물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버스에 탑승한 인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카드 이용자는 1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청주시는 해당 버스가 노선을 변경한 계기 등을 파악 중이다.

사망자들의 시신은 현재 충북대병원, 성모병원, 하나노인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재난당국은 현재 지하차도에 15~18대가 고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 15일 경찰은 사고 현장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15대 정도의 차량이 지하차도에 진입한 것을 확인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지하차도를 제때 통제하지 않은 행정당국의 미흡한 대응을 문제 삼고 있다. 오창읍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47세 아들이 실종돼 현장을 찾았다는 B씨(75)도 밤새 현장을 지켰다. B씨는 “청주 곳곳에서 홍수 경보가 연이어 발령됐는데 도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도 “버스가 왜 지하차도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많은 비가 오는데 지하차도를 통제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재난당국은 지하차도의 물이 줄어들자 소방과 경찰, 군인 등 399명의 인원을 동원해 본격적인 수색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하차도 내부에 진흙과 수중 부유물이 많아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서 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쯤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 인근 미호강에서 유입된 물로 시내버스 등 차량 15대가 물에 잠겼다. 이 사고로 9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11명의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9명은 사고 직후 구조됐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