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 58kg에서 90kg까지 쪘던 황영조 “살 빼고 다시 마라톤 풀코스 도전합니다”[이헌재의 인생홈런]

이헌재기자 2023. 7. 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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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한국 육상 역사는 물론 한국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동아일보 DB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53)의 첫 풀코스 마라톤 완주는 1991년 3월에 열린 제62회 동아마라톤이었다. 소속팀 선배 이창우의 페이스메이커로 출전한 그 대회에서 그는 2시간12분35초로 깜짝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가 그의 인생은 물론 한국 마라톤, 더 나아가 한국 육상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첫 풀코스 도전에서 3위를 차지한 그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신감을 얻었다. 단숨에 한국 마라톤의 ‘간판’으로 떠오른 그는 그해 7월 영국 셰필드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에서 2시간12분40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황영조의 가는 길엔 거칠 것이 없었다. 이듬해인 1992년 2월 일본에서 열린 벳푸오이타 마라톤에서 그는 2시간8분47초에 골인하며 당시 한국 마라톤의 꿈이던 ‘2시간 10분의 벽’을 깼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그해 8월 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몬주익 언덕을 넘어 올림픽 금메달(2시간13분23초)을 따냈다. 8월 9일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생이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을 제패했던 날이기도 했다. 마침 경기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마라톤 영웅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는 이후부터 ‘몬주익의 영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생(오른쪽)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황영조를 격려하고 있다. 두 마라톤 영웅은 8월 9일 같은 날에 우승했다. 동아일보 DB

하지만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1994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아경기에서 다시 금메달을 딴 기쁨도 잠시. 혹독한 훈련과 지옥 같은 레이스가 이어지며 그의 몸은 이미 성한 곳이 별로 없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 선발전으로 열린 제67회 동아마라톤이 그의 은퇴 무대가 됐다. 26km 지점에서 발바닥이 찢어졌고, 거의 걷다시피 29위로 겨우 골인했다. 3명만 출전할 수 있는 올림픽에 갈 수 없게 되자 그는 미련 없이 은퇴를 선택했다. 그의 나이 겨우 26살 때였다. 하지만 짧고도 굵었던 6년간의 활약만으로도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육상 역사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에서 가뿐한 동작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황영조. 동아일보 DB

너무나 이른 은퇴가 아쉽지는 않았을까. 그는 “그동안 뛰는 게 너무 싫었다. 너무 힘들어서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는 게 목표였다. 그 힘든 것이 너무 가혹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날 보고 ‘타고난 천재’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한 노력을 알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매일 훈련을 할 때마다 불구덩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사선을 넘나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보통 선수들이 느끼는 고통지수가 1이라고 하면 나는 그걸 10까지 올렸다. 7, 8까지만 가도 죽을 판인데 그걸 10까지 올리려 했다. 지옥의 불구덩이가 매일 눈앞에 왔다갔다했다”고 말했다.

악조건 속에서 치러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당시 대회가 열린 바르셀로나는 마라톤을 뛰기엔 적당하지 않은 섭씨 30도 안팎의 기온 속에서 치러졌다. 더구나 결승선을 앞둔 몬주익 언덕은 서울 남산과 비슷한 급오르막이었다. ‘죽음의 언덕’으로 불린 몬주익 언덕에서 그는 오히려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며 뒤따라오던 모리시타 고이치(일본)를 따돌렸다. 그는 “평소 극한의 고통을 이겨왔다. 더운 날씨와 오르막 난코스를 넘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환경에서 자신을 단련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2000년부터 24년째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팀을 이끌고 있는 황영조 감독. 한 때 배가 엄청 나왔던 황 감독은 최근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서 예전에 비해 한결 날씬해졌다. 이헌재 기자

은퇴 후 지도자가 된 후 그의 일상은 선수 때와는 180도 달라졌다. 선수 시절 그는 뛰면서 얻을 수 있는 병이나 질환은 거의 다 겪었다. 발톱이 10개 다 빠지기도 했고 족저근막염부터 아킬레스건 부상, 대퇴부와 고관절 염증 등으로 고생했다. 몇 차례 수술대에도 올랐다.

운동에 질려버린 탓인지 그는 운동과 거의 담을 쌓고 지냈다. 100m 안팎의 짧은 거리도 잘 걷지 않으려 했다. 행사 등을 통해 가끔 5km나 10km 마라톤에 출전했지만 기본 실력으로 가볍게 뛰었다. 선수 시절 50kg대 후반이던 몸무게가 무지막지하게 늘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엄청난 훈련량 때문에 살찔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는 먹는 대로 살로 갔다. 몇 해 전까지 몸무게가 90kg에 육박하기까지 했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부터 다시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그의 인생 버킷리스트는 다시 한 번 42.195km를 완주하는 것이다.

그는 “죽기 전에 마라톤 완주를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마라톤이 위대한 종목인 이유는 제 아무리 과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 하더라도 준비가 없으면 절대 허락하지 않는 종목이기 때문”이라며 “30km를 넘어 35km, 40km를 넘어가면서 가쁜 숨을 몰아쉴 때의 고통과 그 속에서의 즐거움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수 시절에는 1등을 위해서 뛰었다면 지금은 완주 자체를 위해서 뛰어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해외 봉사 활동 중 현지 주민들과 사진을 찍은 황영조 감독 . 황영조 감독 제공

최우선 과제는 체중 감량이다. 선수 은퇴 후 반주를 즐기던 그는 2021년 가을부터 술을 완전히 끊었다. 급하게 몸무게를 줄이기보다는 천천히 몸을 만들고 있다. 올해부터는 집이 있는 18층을 걸어서 오르고 있다.

황 감독은 10일부터 소속팀을 이끌고 강원도 평창 대관령에서 전지훈련을 시작했는데 이 역시 몸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하려면 먼저 자기 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금 몸으로 풀코스를 뛰면 무릎 등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며 “천천히 체중을 줄이면서 거기에 맞게 페이스를 맞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몸무게가 70kg대 초반은 되어야 풀코스를 뛸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재 몸무게는 80kg대 초반이다. 그는 “이제 서서히 거리를 늘려가며 뛰고 있다. 이런 식으로 운동을 병행하면 몸무게는 쭉쭉 빠질 것”이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정한 마라톤 풀코스 복귀 무대는 내년 2월 일본에서 열리는 벳부오이타 마라톤이다. 이 대회는 그가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2시간 10분대 벽을 깼던 기분 좋은 대회다. 그는 “날씨나 평탄한 코스 등을 고려해서 벳부오이타에서 뛰어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동아마라톤 코스도 세계 최고의 코스 중 하나다. 당장 내년은 아닐 수 있지만 동아마라톤 무대에도 복귀하고 싶다. 내 데뷔전과 은퇴전을 치렀던 동아마라톤에서 언젠가 페이스메이커로 뛰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황영조 감독의 선수 시절 레이스 모습. 지옥 훈련 속에 다져진 탄탄한 몸으로 한 시대를 지배했다. 동아일보 DB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하다. 마라톤 완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팁을 달라는 요청에 그는 “자신의 몸을 보석처럼 다뤄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보석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에게 몸은 보석이나 마찬가지”라며 “자신의 몸상태에 맞게 몸을 귀하게 여기면서 페이스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급한 마음에 몸을 빨리 굴리려 한다. 그러다가 한 번에 망가지기 일쑤”라고 했다. 그는 또 “마라톤이라는 운동은 한 번에 멀리 가는 점프 운동이 아니다. 한발 한발 앞을 향해 단계적으로 가는 운동이다. 차근차근 준비하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쉬어야 한다. 꾸준함이야말로 마라토너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라고 말했다.

황영조 감독(윗줄 왼쫀에서 두 번째)와 제자들의 모습. 국민체육진흥 공단 마라톤 팀은 매해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황영조 감독 제공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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