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기세 뺏길라···“‘덜 위험한’ 일본, 배터리·반도체 투자회복”
일본이 기술력과 지정학적 안정성을 앞세워 반도체·배터리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어 한국이 다각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일본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 지원을 넘어 완성품 생산에 직접 나설 경우 한국의 위협적인 경쟁상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은 16일 공개한 보고서 ‘해외경제 포커스 - 일본의 투자현황 회복과 시사점’에서 “최근 일본경제가 회복 움직임을 보인다”면서 “특히 그간 시장점유율이 줄었던 반도체와 배터리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 이후 소비 및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 설비투자 회복 등으로 전 분기 대비 0.7% 증가했다. 실물경제가 회복되는 흐름과 함께 주가도 상승해 니케이225 지수가 1990년 7월 이후 처음으로 33000포인트를 돌파했다.
일본의 반도체 투자는 크게 ‘범용 반도체의 자국 내 양산’과 ‘차세대 반도체의 제조 역량 강화’라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대만 TSMC, 미국 웨스턴디지털의 시설 투자를 유치해 범용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또 회로 선폭이 2나노 이하인 반도체를 2027년까지 양산한다는 목표 아래 정부 주도로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를 설립하고, 미국과의 기술 교류를 강화하고 있다.
배터리 부분의 투자도 확대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배터리 산업 전략’에 따라 2030년까지 배터리 생산용량의 글로벌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배터리의 자국 내 생산 능력을 키우기 위해 올해 민관 공동으로 4500억엔을 투자하는 계획도 있다. 그간 하이브리드 차량에 집중했던 도요타는 2026년 전기차 연간 150만대 판매 등을 목표로 일본 내에 4000억엔을 투자하는 등 정부 노력에 부응하고 있다.
한은은 이처럼 일본 내 투자가 회복되는 것에 대해 “일본은 첨단반도체와 배터리 기초연구 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고, 장비·소재 기업들도 높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며 “또 미·중 갈등으로 중국·대만에 대한 투자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일본이 과거의 ‘덜 매력적인 투자처’에서 ‘덜 위험한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이 반도체·배터리 투자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으리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한은은 “일본의 투자가 궤도에 오르면 우리 주력 분야에서의 글로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우리는 연구개발 투자 확대 등을 통해 기술경쟁력을 더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또 “일본은 소재·장비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 요구되는 부문에서는 일본과 협력 강화를 통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반도체 분야를 수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반도체 인력은 우리가 일본보다는 앞서있을 것”이라며 “세계의 반도체 기업이 들어올 수 있도록 실리콘 밸리 같은 물리적인 공간을 국내에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형주 LG경영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정부가 하듯이 우리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지원한다면) 경쟁력이 좀 떨어지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등을 핀셋 지원해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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