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주민증’ 정보유출·오류에 신뢰 하락… 기시다號 ‘휘청’ [세계는 지금]
이름·생년월일·주소 등 개인정보 담겨
디지털 사회 기반 구축 위해 보급 박차
인력·절차 미비해 정보 등록 오류 속출
기시다 지지율 15%P 떨어져 41% 기록
총점검본부 설치 통해 사태 진화 나서
첫 회의서 “하루 빨리 신뢰 회복” 지시
일본 정부는 2016년 마이넘버 도입을 시작했다. 외국인을 포함해 일본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12개의 번호를 부여하고 정부나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사회보장제도, 각종 세금, 재해대책 등 각종 행정을 이 번호와 연결시켜 집행하려는 목적이었다.
마이넘버카드에는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사진 등 기본적인 개인정보가 담긴다. 전자증명서 구실을 하는 칩이 내장되어 있어 온라인에서의 본인 확인, 편의점에서의 주민표 발행 등도 가능하다. 또 건강보험증, 운전면허증, 외국인의 신분증 격인 재류카드의 기능을 마이넘버로 일체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마이넘버는 도장, 팩스로 대표되는 ‘아날로그 행정’을 일신해 효율화를 꾀하겠다는 일본 정부 구상의 토대다. 2021년 9월 보급, 활용 촉진을 책임질 디지털청이 설립됐다.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한 일본인들은 마이넘버카드에 그다지 호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금성 포인트 제공 등의 유인책이 먹히면서 신청자는 지난달 기준 전체 인구의 77%에 해당하는 9730만명에 도달했다.
지난 3월 이후 마이넘버카드에 다른 사람의 정보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 잇따라 확인됐다. 마이넘버카드로 편의점에서 발행한 주민표, 호적증명서에 본인이 아닌 타인의 정보가 등록된 사례가 지자체 여러 곳에서 확인되면서 파문이 확산했다.
NHK에 따르면 본인 명의 계좌를 지정해야 하는 공금수취구좌(정부 지원금 등을 받기 위해 지정하는 은행계좌)가 가족 혹은 모르는 사람의 것으로 등록된 게 약 13만건(지난 4일 기준)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마이넘버 문제 중 가장 많다. 마이넘버카드와 의료보험증을 일체화한 ‘마이나보험증’에 타인 정보 등록 7372건, 타인에게 마이나포인트 부여 172건, 타인 장애자수첩 정보 등록 최소 62건,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마이나포털에서 타인 연금정보 열람이 1건으로 파악됐다. 정보의 오류와 유출이 확인되면서 마이넘버카드에 대한 일본인들의 신뢰는 결정적으로 훼손됐다.
지난 12일에는 미야자키현에서 지적장애인에게 교부하는 수첩의 정보를 마이넘버에 연결하는 과정에서 2336명분의 오류가 확인됐다. 장애인 본인과 타인의 정보가 중복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아예 다른 사람의 정보만 입력된 것도 있었다.
의도한 대로 신청자는 크게 늘었지만 관련 업무에 큰 하중이 걸렸다. 아사히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효고현에서는 건강보험증과 마이넘버 일체화를 위해 직원 5명이 5900여명의 이름, 성별, 생년월일, 주소 등을 입력했다. 단순계산하면 직원 1인당 1180명의 개인정보를 처리한 셈이다. 업무 부담이 급격히 늘자 원래 2번 하도록 한 본인확인 절차를 1번만 하도록 간소화시키기도 했다.
쇼지 마사히코(庄司昌彦) 무사시(武藏)대 교수는 NHK에 “지자체의 현장 상황을 감안하면 제도 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디지털화가 중요하지만 서두른 것에 상응하는 준비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마이넘버 문제로 기시다 정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히로시마 개최 등으로 한껏 끌어올린 지지율을 까먹는 형국이라 타격이 더욱 도드라진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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