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잡는 와인? 돈버는 와인?…어떤 코르크를 먼저 따야 할까 [김기정의 와인클럽]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3. 7. 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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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의 와인클럽 - 7] 세컨드 와인, 르 프티 무통 드 무통 로칠드
파리의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 진열된 ‘르 프티 무통 드 무통 로칠드.’ 샤토 무통 로칠드의 세컨드 와인이다.
“10년을 더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코르크 마개를 열 것인가.”

와인 저장고를 쳐다보는 와인 애호가의 고민은 깊어 집니다. 숙성잠재력이 있는 와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맛도 좋아지고 가격도 함께 오릅니다. 하지만 저처럼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기다리는 데 익숙하질 못합니다. ‘맛’이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죠. 물론 돈이 아주 많다면 충분히 숙성된 1등급 그랑크뤼 와인을 사서 마시는 게 제일 좋겠지만 올드 빈티지 그랑크뤼는 한국선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너무 비쌉니다.

이럴 때 타협점을 찾는 것이 ‘세컨드 와인’입니다. 세컨드 와인이란 와인 생산자가 스스로의 기준에 조금 못 미친다고 생각될 때 그랑 뱅(Grand Vin) 또는 퍼스트 와인과 브랜드 명칭을 달리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와인입니다.

사토 라투르의 세컨드 와인 레 포르 드 라투르.
샤토 무통 로칠드는 폼이고 돈은 ‘무통 카데’
프랑스 보르도 크랑크뤼 와인들은 대부분 세컨드 와인을 생산합니다. 세컨드 와인의 유래는 18세기까지 올라가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샤토 무통 로칠드의 ‘무통 카데’입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의 소유주 필리프 드 로칠드 남작은 1927년 포도 작황이 나쁘자 샤토 무통 로칠드의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카루아드 무통’이란 이름으로 와인을 판매합니다. 이어 다시 작황이 좋지 않았던 1930년과 1932년 빈티지엔 ‘무통 카데’라는 와인을 만듭니다. 이렇게 엄격한 품질관리는 ‘퍼스트 와인’인 샤토 무통 로칠드가 1973년 1등급으로 승급되는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무통 카데는 엄밀한 의미의 ‘세컨드 와인’이라기 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보르도 와인으로 브랜드 포지셔닝이 바뀝니다. 무통 카데는 높은 품질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큰 성공을 거둡니다. 골프에서 “드라이버는 폼이고 돈은 ‘퍼팅’으로 번다”는 말이 있듯이 와인업계에서는 “샤토 무통 로칠드는 폼이고 돈은 ‘무통 카데’가 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무통 카데
‘작은 양’이라 불리는 세컨드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는 보르도 1등급 와인 중에는 가장 늦은 1993년 부터 공식적인 ‘세컨드 와인’을 생산합니다. 처음엔 ‘Le Second Vin de Mouton Rothschild’란 이름이었지만 1994년 ‘르 프티 무통 드 무통 로칠드’(Le Petit Mouton de mouton Rothschild)가 출시되고 지금까지도 샤토 무통 로칠드의 세컨드 와인 브랜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르 프티 무통은 ‘작은 양’이란 뜻입니다. 주로 어린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다고 합니다. 보르도 1등급 와인들은 품질 관리를 위해 일정 수령 이상의 나무는 뽑아내고 새 나무를 심는데 3년에서 10년 정도 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는 세컨드 와인을 만듭니다.

‘르 프티 무통 드 무통 로칠드 2009년’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이 와인이 무척 인상적인 이유는 같은 날 샤토 무통 로칠드 2005년, 샤토 무통 로칠드 2010년을 함께 비교하면서 마실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 2005년은 1976년, 1982년, 1995년과 함께 ‘신이 내린 최고의 빈티지’란 평가를 받습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 2010년은 제임스 서클링으로 부터 99점을 받기도 했지만 보르도 2010년은 ‘점수’를 들먹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좋았던 해 입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 2005년 빈티지
20년 숙성해도 ‘어린’ 샤토 무통 로칠드
그러나 아쉽게도 저는 아직 최고 상태의 샤토 무통 로칠드를 못 마셔 본 것 같습니다. 2005년과 2010년 빈티지는 너무나도 훌륭한 맛이었지만 숙성 잠재력을 고려해 보면 아직 ‘청년’ 같았습니다. 지난해 코르크를 연 2010년 빈티지는 ‘지금 마시기에는 살짝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시기 3시간 전에 디케팅을 했지만 역시 디켄팅만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만화 ‘신의 물방울’에선 잠깐의 디켄팅으로 잠들었던 와인을 확 깨우는 드라마틱한 얘기가 나오지만 신의 물방울은 만화적 창의력이 다소 포함된 것으로 생각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2010년 샤토 무통 로칠드는 40년을 숙성시켜도 좋다는 평가를 받는 와인입니다. 함께 마셨던 2005년 샤토 무통 로칠드도 이미 20년 가까이 병 숙성된 와인이지만 10년 뒤에 더 좋은 맛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절정’의 맛을 보려면 2030년 이후에 코르크 마게를 따야 하는 것이죠. 예전에 마셨던 샤토 무통 로칠드 1964년 빈티지는 보관 상태가 안좋았던지, 아니면 디켄팅 또는 브리딩을 너무 오래해서 인지 힘이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반면 르 프티 무통 2009년은 풍성한 과일 향도 좋았고 무엇보다 지금 마시기 ‘딱’ 좋았습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의 숙성 잠재력이 더 길기 때문에 세컨드 브랜드인 르 프티 무통의 절정이 좀 더 일찍 찾아왔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통상 세컨드 와인은 그랑 뱅(퍼스트 와인)의 캐릭터를 최대한 살리지만 구조감과 밸러스 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밸런스와 부드러움, 구조감, 숙성도 측면에서 모두 르 프티 무통이 함께 마신 샤토 무통 로칠드 보다 더 좋았습니다. 어쩌면 르 프티 무통이 그날 가장 적당한 시간으로 디켄팅 됐을 수도 있습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세컨드 와인 카뤼아드 드 라피트 .
형만 한 아우 없다...망한 ‘세컨드 와인’
르 프티 무통의 경험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세컨드 와인’을 하나 고르기 위해 지난 5월 프랑스 파리의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을 찾아갔습니다. 라파예트 백화점은 보르도 와인 애호가들의 성지입니다. 보르도 5대 샤토를 비롯해 디저트 와인의 최고봉 샤토 디켐을 멋지게 진열해 놓았습니다. ‘세컨드 와인’ 섹션도 따로 있어 보르도 5대 샤토의 ‘세컨드 와인’들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09년 르 프티 무통이 없었습니다. 2007년, 2012년이 있었는데 모두 390유로(약 55만원)입니다. 2014 빈티지도 350유로(약 50만원)입니다.

세컨드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이자 인기 요인이 ‘가격’인데요. 르 프티 무통은 샤토 무통 로칠드에 비해 싸다는 것이지 일반 와인치고도 꽤 고가에 속합니다. 잠깐을 망설이다 다른 5대 샤토의 세컨드 와인을 골랐습니다. 저의 최애 와인인 ‘샤토 몽로즈 2010년’처럼 보르도 2010년 빈티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기다리질 못하고 서울에 돌아와 와인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함께 바로 코르크를 열었는데 이번엔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다음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에선 ‘망한’ 세컨드 와인 얘기를 좀 더 자세하게 해보겠습니다.

김기정 매일경제신문 컨슈머전문기자
매일경제신문 컨슈머전문기자가 와인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풀어드립니다. 김 기자는 매일경제신문 유통팀장, 식품팀장을 역임했고 아시아와인트로피 2022년 심사위원, 한국와인대상 2022년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프랑스 부르고뉴와 보르도의 그랑크뤼 와인 뿐 아니라 미국, 이탈리아, 호주, 뉴질랜드, 스페인, 칠레, 아르헨티나의 다양한 와인세계로 안내하겠습니다. 질문은 kim.kijung@mk.co.kr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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