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99일 떠난 엘리엇, 부모는 장례식에서 99개 풍선을 띄웠다
인간은 22쌍의 상염색체와 한 쌍의 성염색체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흔한 염색체 질환인 다운증후군은 21번 염색체가 한 쌍 외에 하나가 더 많아 생긴다. 만약 13번이나 18번 염색체가 한 쌍보다 하나 더 많다면? 세 번째 염색체는 ‘죽음’을 달고 나오는 것을 의미하며 대부분 엄마 배 속에서 아기는 죽는다. 드문 일이지만 태어난 아기 중 열 명 중 한 명은 6개월까지 살기도 하고, 스무 명 중 한 명은 1년 넘게 살기도 한다.
이른 죽음이 예정된 삼염색체증후군 아기들
2016년 발표한 한 연구결과(*맨 아래 참조)에 따르면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1991년부터 2013년까지 태어난, 죽음과 동일시되는 삼염색체증후군을 가진 아기 400여 명 중 대다수가 죽었다. 그러나 10%는 10년 이상 살았다. 그중 수술받은 아기가 첫돌을 맞을 확률은 70%나 됐다. 미국 소아병원에서도 삼염색체증후군 중 60%는 집중치료를 받고 30%가 수술받았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됐을 때 나와 내 동료들은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가 치료한 13번, 18번 삼염색체증후군을 가진 아기의 부모 중 대다수는 불필요한 수술이나 연명치료에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의료진과 충분히 상담한 결과다. 지역마다, 또 의사마다 의료행위가 다를 수 있다. 어느 병원이나 ‘문화’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 병원 문화는 극심한 고통으로 죽을 확률이 높은 아기의 삶을 억지로 연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결과를 마주하고도 ‘그래, 사람마다 다르니까 이해할 수는 있어’ 하고 무심히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특별한 환자군을 다르게 보는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논문도 동료 교수도 아닌, 앨리스라는 졸업을 앞둔 3년차 레지던트의 발표였다. 앨리스는 먼저 유튜브를 비롯해 여러 비디오를 보여줬다.
비디오는 ‘친애하는 엘리엇에게’라는 담담한 아빠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이어 18번 삼염색체증후군이 있는 엘리엇의 모습이 담긴 영상과 사진이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태어나기 전부터 기적을 바라며 기도했기에 죽지 않고 세상에 나온 엘리엇을, 아빠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아빠는 매일매일 엘리엇이 태어난 시간에 맞춰 생일 파티를 열고 사진을 찍었다. 3개월이 지나 엘리엇이 입원했던 신생아중환자실을 방문해 의료진과 인사를 나눌 때는 마치 아들이 대통령이 된 듯 자랑스러워했다.
고통 완화 못지않게 중요한, 함께 보내는 시간들
엘리엇은 태어난 지 99번째 되는 날 하늘로 떠났다. 부모는 장례식에서 함께 보낸 나날을 기념하기 위해 99개의 풍선을 날려 보냈다. 그리고 ‘곧 만나, 아들아. 지구에서의 우리 시간이 끝났으니 하늘에서 만나자. 엄마 아빠가’ 하며 담담한 목소리로 끝맺는다. 무겁고 진한 침묵과 뜨거운 눈시울이 강당을 가득 채웠다. 나도 어느새 감동과 슬픔에 젖었다. 청중이 좀 진정되자 앨리스의 본격적인 발표가 시작됐다. 앨리스는 13번, 18번 삼염색체증후군이 있는 환자의 치료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우리 병원 문화에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기본부터 천천히 설명하면서 깊이 있게 이 무거운 주제를 파고들었다. 모든 청중의 가슴에 강한 바람이 일어나 마음이 풍선처럼 둥실둥실 날아올랐다.
예전에는 13번, 18번 삼염색체증후군이라면 고통 완화 치료를 권유했다. 고통을 감소시켜준다는 명목하에 진통제와 안정제를 투여해 자연스러운 죽음을 편안하게, 그러나 조금은 빠르게 유도했다. 그 행위가 진정으로 환자를 위하고 가족을 위하는 일이라 믿었다. 지금은 다르다. 각자 고유의 상황이, 또 가족이 원하는 바가 다르다고 믿는다. 상태가 나쁘지 않고 고통을 수반하는 수술이 필요하지 않다면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 자가호흡이 가능하고 간단한 콧줄로 영양을 공급한다면 생을 조금 연장해 아기와 추억을 쌓을 수도 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이지만 가족이 간직할 추억과 행복은 영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앨리스를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매일 마주치는 삶과 죽음, 탄생과 입원,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맞이하는 퇴원. 이 모든 것에 조금씩 익숙해졌나보다. 아니면 가르침이 주어진 대로 우리 병원 문화에 배어 다른 선택지는 아예 들여다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대부분의 부모는 억만금을 주고라도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한다. 그 소중한 시간을 지켜줄 수도 있었다. 병원에서의 짧은 시간이 아닌, 엘리엇처럼 몇 달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가족의 시간을 우리가 앗았던 건 아닐까. 학문적 무지, 무심한 비인식, 좁은 식견으로 가족과 아기를 이어주는 다리를 우리가 무너뜨린 건 아닐까.
병원 의료 방침 바꾼 레지던트의 발표
몇 달 뒤 캐나다에서 열린 학회에서 앨리스와 조우했다. 미국 뉴욕에서 펠로로 아직 수련 중이라고 전했다. 앨리스다운 선택이었다. 밝게 웃는 그를 꼭 안아줬다. 큰 가르침을 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가득 담아. 앨리스는 나 말고도 의료 방침을 바꾼 교수가 많다고 했다. 앨리스의 아름다운 진심이 나 말고도 통한 모양이었다. 학회가 끝나고 우리는 서로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며 내가 만난 13번, 18번 삼염색체증후군 아기들의 얼굴을 한 번씩 떠올려봤다. 왠지 비행기 창밖으로 그 아이들의 수만큼 풍선이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스텔라 황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
*참고문헌
Nelson, Katherine E., et al. ‘Survival and surgical interventions for children with trisomy 13 and 18.’ Jama 316.4 (2016): 420-428.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손바닥만 한 초미숙아부터 만삭아까지 돌보는 스텔라 황 교수가 어린 생명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스텔라 황 교수는 의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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