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지금은 멈춰 서 있지만 내일을 준비'…고리1·2호기의 다른 미래
원자력발전의 핵심 통제시설인 주제어실(MCR)에 각종 빨간 경고등이 뜨면 일반 상황에선 국가적 위험을 넘어 전지구적 위기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부터 후쿠시마까지 인류가 겪은 모든 원전 사고에서 MCR 근무자는 빨간 경고등을 녹색으로, 정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고는 막을 수 없었다.
반면 지난 12일 방문한 부산 기장군 소재 고리 원전에 있는 고리2호기 MCR은 평온했다. 발전량 '0'㎿h(메가와트시)에서 볼 수 있듯 심장이 멈춰있는 탓에 발생한 자연스런 경고등이기 때문이다. 고리2호기는 운전허가 만료로 지난 4월부터 가동 중지상태다. 원전이 멈춰 서 있으니 발전소도 한가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평상시 대비 비슷한 인원이 '내일'을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2021년 7월부터 2022년 3월까지 고리2호기의 계속운전 안전성평가를 실시하고 한달 후 4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다. 원안위는 현재까지 심사절차를 진행 중이다.
고리2호기는 운영 연장을 위한 준비를 밟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 조치는 발전소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해수면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원전이지만 지진 해일(쓰나미)에 대비하기 위해 4m 가량 높이의 차수벽이 원전을 둘러 쌓고 있다. 비상시에도 전력과 냉각수 공급을 위해 이동식 발전차량과 냉각수 공급차량도 항시 대기중이다.
발전소 내부에서는 원전 가동 중지에 따라 각종 밸브, 노후 전기설비, 안전 설비 강화 조치가 이뤄지고 있었다. MCR은 발전 단위별 제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안전 설비 강화, 장비 교체도 MCR의 승인이 필요하다. 평시와 비슷한 인원을 운영하는 이유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의 확충도 계획돼 있다. 920다발을 저장할 수 있는 고리2호기 저장조는 현재 사용후핵연료, 제어봉 등 879다발이 저장돼 있다. 한수원은 저장조의 추가 공간 확보 없이 전세계에 보편적으로 쓰이는 기술을 적용해 770다발을 더 저장할 계획을 수립했다. 해당 용량 증가는 향후 발생할 사용후핵연료 10년치를 저장할 수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높은 원전 안전 기준을 '뒤늦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며 "원전 안전과 관련해서는 전세계 최고 수준임을 자부한다"고 말했다. 아파트 설계 수명도 100년인 상황에서 주기적이고 정기적으로 원전을 멈추면서까지 높은 안전 기준을 적용하는 우리 원전의 계속 운전이 어렵지 않은 이유다.
고리2호기와 함께 멈춰있는 고리1호기도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6년여간 원자로가 멈춰 있음에도 발전소 내부에서 들리는 소리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운영에 필요한 냉각장치와 관련 설비가 가동하는 소리였다. 발전소 내부 곳곳의 장비에 '고리1호기 영구정지 관련 미사용 설비'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았으면 언제든 가동 가능한 원전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상업운전년도 기준 고리1호기와 2호기의 차이는 불과 5년. 그러나 고리1호기는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 2021년 원안위에 해체승인을 신청했다.
원전 1기 해체 비용은 대략 1조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말 기준 전세계 원전은 422기로 신규 원전까지 고려하면 500조 시장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원전 건설 경험을 바탕으로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할 수 있었다. 1호기가 선택한 미래가 전세계 원전 해체 시장 선점인 만큼 자체 해체 경험을 통해 관련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출한다는 복안이다.
한수원과 관련 기관은 2021년 기준, 방사능 물질 제염부터 삼중수소 처리, 오염 지하수 복원 등 75개 관련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 해체 기술을 자체적으로 달성했고 현재는 관련 기술의 실증 단계를 거치고 있다. 정부의 해체 승인만 나면 우리 기술로 원전을 해체할 수 있고 이를 발판으로 해외 해체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전의 건설-운영-해체를 통한 원전 전주기의 기술력을 확보한 나라는 전세계에서도 매우 드물다"며 "고리1호기의 성공적인 해체를 통해 국내 기업의 원전해체 실적 확보의 기회로 삼고 장기적으로 글로벌 해체시장의 진출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기장(부산)=조규희 기자 playingj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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