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고리2호기 안전 이상無”… 계속운전으로 108조원 절감 노린다

부산=전준범 기자 2023. 7. 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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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가동한 뒤 해체 앞둔 1호기는
“원전 해체 시장 선점 위한 마중물”
‘안전 확인’ 2호기는 계속운전 신청
세계 가동원전 53% 계속운전 승인
고리원자력본부 전경.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1~4호기다. 이 중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29일부터 2017년 6월 18일까지 40년 동안 전국 곳곳에 전기를 공급했다. 고리 2호기는 1983년 7월 25일부터 올해 4월 8일까지 가동했다. 1호기는 해체될 예정이고, 2호기는 계속운전을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 심사를 받고 있다. / 한국수력원자력

장맛비가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쏟아지던 지난 12일 세종정부청사에서 버스로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부산 기장군의 작은 마을 고리(古里). 푸른 동해와 맞닿은 고즈넉한 동네 풍경이 이름 그대로 오래된 마을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 차분한 풍경 속에 녹아든 고리 원자력발전소는 지역 공동체와 발전소 간 오랜 호흡의 역사를 소리 없이 과시하고 있었다.

고리 1·2호기가 나란히 붙어있는 고리 원전은 한국 원자력 발전 역사에서 상징적인 장소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29일 상업운전을 시작한 우리나라 첫 번째 원전이다. 발전기를 완전히 멈춘 2017년 6월 18일까지 40년 동안 쉬지 않고 전국 곳곳에 전기를 공급했다. 고리 2호기는 1호기보다 5년 늦은 1983년 7월 25일 상업운전에 돌입해 올해 4월 8일 운영허가기간이 끝났다. 두 원전 모두 현재 가동 상태는 아니지만, 1호기는 해체를 앞뒀고 2호기는 계속운전을 준비 중이라는 점에서 향후 스케줄은 다르다.

올해 4월 8일로 운영허가기간이 끝난 고리 2호기의 모습. 고리 2호기는 지난 10년간 고장정지 2건에 3주기 연속 무고장 운전을 달성했다. /한국수력원자력

국가보안시설인 원전답게 출입 절차는 까다로웠다. 신분 확인과 함께 모든 전자기기를 반납한 뒤 안전모·안전화 등을 착용했다. 입장 준비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고리본부와 협력사 직원 여럿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박웅 한국수력원자력 실장은 “원전이 멈췄어도 냉각수를 끌어와 사용후핵연료를 계속 식혀야 하고, 가동 원전과 똑같이 정기적으로 성능 시험도 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 원전 해체 시장 韓 선도의 마중물 될 고리 1호기

머리 위로 수많은 배관과 전선, 기계장치가 복잡하게 얽힌 길을 따라 먼저 들어간 곳은 고리 1호기 터빈룸. 시야가 닿는 모든 지점의 설비들이 40년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였다. 설비 곳곳에 ‘영구정지 관련 미사용 설비’라는 푯말이 붙어있지 않았다면 은퇴 원전이란 사실을 실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앞으로 이들 설비는 제염 과정을 거쳐 해체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해체 사업비는 8726억원이다.

박웅 한국수력원자력 실장(오른쪽)이 7월 12일 부산 고리 원전 1호기 터빈룸에서 고리 1호기의 역사와 향후 해체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진입로마다 비치된 커다란 투명 플라스틱 통 속 귀마개도 이곳이 영구정지된 원전이란 사실을 말해줬다. 내부에 들어섰을 때 귀마개를 껴야 할 정도로 소음이 심하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발전소가 가동될 때는 터빈이 분당 1800바퀴씩 회전하면서 전기를 만들었다”며 “당시에는 소음이 엄청나게 심해 귀마개를 반드시 착용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3월 기준 전 세계에서 영구정지한 원전은 고리 1호기를 포함해 총 209기이다. 이 가운데 해체를 끝낸 원전은 21기에 불과하다. 우리 정부가 향후 원전 해체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고 해체에 필요한 상용화 기술 58개 개발을 서둘러 완료한 이유다. 미국 경제자문회사 베이츠화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 규모는 약 549조원으로 추산된다. 한수원 관계자는 “글로벌 해체 시장을 한국이 선점할 것”이라고 했다.

고리 원전 직원들이 고리 2호기 주제어실에서 발전소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2호기는 지난 4월 8일부터 가동 정지 상태지만, 주제어실 직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3교대 근무 중이다. 계속운전 허가와 관련해 설비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서다. /한국수력원자력

◇ 10년간 고장 2건…안정성 증명한 고리 2호기

1호기 터빈룸에서 나와 내부로 연결된 고리 2호기 주제어실을 향했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정면의 커다란 오각형 구조 벽면에 부착된 수많은 버튼과 계기판. 주제어실이 발전소를 운전하는 ‘비행기의 조종석’ 같은 곳이라더니 실제 모습도 초대형 항공기의 조종석 같았다. 원자로 제어반, 원자로 냉각재 제어반, 경보 알림 제어반, 터빈 발전기 제어반 등 벽면마다 버튼들 용도가 적혀 있었다.

2호기 역시 지난 4월 8일부터 가동 정지 상태지만, 주제어실 소속 직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3교대 근무 중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모상영 고리1발전소장은 “2호기의 경우 한수원이 지난 3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계속운전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했다”며 “현재 심사 중으로, 현장에서는 규제기관의 요구사항에 맞춰 계속운전에 필요한 설비를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상영 고리1발전소장(왼쪽)이 7월 12일 고리 2호기 주제어실에서 주요 버튼의 용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우리나라 원전은 노형에 따라 30·40·60년 단위로 운전허가기간을 부여받고, 이 기간이 지나면 계속운전을 신청해 10년 단위로 추가 운영할 수 있다. 한수원은 고리 2호기 재가동 시점을 2025년 6월로 잡고 있다. 다만 목표대로 10년 연장에 성공하더라도 고리 2호기는 2035년이 아닌 2033년 4월에 다시 운전을 멈춰야 한다. 원전 가동을 멈추고 안전성 검토를 받는 기간까지 계속운전 기간에 포함하도록 한 현행법 탓이다.

정부 관계자는 “고리 2호기는 지난 10년간 고장정지 2건에 3주기 연속 무고장 운전을 달성하는 등 뛰어난 운영 실적을 보였다”며 “1차 계속운전이 끝나기 전에 2차 계속운전을 시작하면 수명을 10년 더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많은 국가가 원전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계속운전을 하려고 한다. 신규 원전 건설보다 과거에 잘 지어서 안전하게 운영해온 발전소 수명을 연장하는 게 국가 에너지 비용 절감 측면에서 이득이기 때문이다. 계속운전에 필요한 기술과 관리 능력도 꾸준히 발달해왔다. 사진은 고리 원전 터빈. /한국수력원자력

◇ “계속운전 시 국가 에너지 비용 108조원 절약”

사실 계속운전은 세계적인 추세다. 발전소를 새로 짓는 것보다 과거에 잘 지어서 안전하게 운영해온 발전소 수명을 늘려주는 게 국가 에너지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원전 가동국 대부분이 계속운전에 요구되는 기술과 관리 능력을 꾸준히 쌓아왔다는 점도 계속운전 선호 현상을 키운 배경이다. 작년 말 기준 전 세계 가동 원전 439기 중 53%인 233기가 계속운전 승인을 받았다.

특히 고리 2호기와 노형이 같은 외국 원전 13기 가운데선 10기가 계속운전 중이다. 국내에서는 고리 2호기뿐 아니라 고리 3·4호기, 한빛 1·2호기 등 총 10기의 운전허가기간이 향후 7년 내 만료된다. 한수원은 이들 원전의 발전량을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가 대신하면 107조6000억원의 비용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계속운전을 택할 경우 108조원가량의 국가 에너지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뜻이다.

운전허가기간이라는 개념 자체도 원래는 발전소 수명을 뜻하는 게 아니다. 원전이 안전성과 성능 기준을 만족하면서 운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을 의미한다. 과거 미국에서 특정 원전 사업자의 경제적 독점을 막고자 설정한 기한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자체 설비 개선 등을 통해 더욱 안전하고 저렴하고 깨끗한 원전을 만들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보탬이 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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