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韓 산업화 일궈낸 최초 원전 '고리1호기'…이제 역사 속으로

이정현 기자 2023. 7. 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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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첫 상업운전 후 40년 간 전력 생산…영구정지 후 퇴역 준비
계속운전 앞둔 '고리2호기'…"원전, 빚과 빛 두 마리 토끼 잡는 것"
고리원자력본부. 사진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1, 2, 3, 4호기. (한수원 제공) ⓒ News1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대한민국 최초의 원전 '고리1호기'가 명예로운 퇴장을 앞두고 있다. 1978년 4월29일 상업운전에 들어간 고리1호기는 자본도 없고, 기술도 부족했던 그 시절 우리나라 최초로 원자력 기술을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며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끈 역사의 주역이다.

지난 12일 오후 2시. 동해 바다에 맞닿아 있는 부산 기장군의 한 어촌마을에 도착하자 둥근 지붕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관리 중인 대한민국 1호 원전인 '고리1호기'다.

설비용량 587MW의 가압경수로인 고리1호기는 건설 당시 건설비만 1561억원이 투입된 최대의 국책사업이었다. 이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의 약 4배에 달하는 규모였다고 한다.

40년의 역사를 지닌 고리1호기는 2017년 6월 영구정지됐다. 2021년 5월 해체승인 신청을 한 뒤 현재는 본격적인 해체 작업을 위한 승인 여부를 기다리는 중이다.

원전은 건설하는 일뿐만 아니라 운영, 해체에 이르기까지 전 주기(Full Cycle)에서 수준 높은 기술력을 요한다. 이 때문에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1호기의 안전하고, 경제적인 원전해체 작업 수행을 위해 기술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2021년 당시 총 58개의 해체 상용화기술 중 확보하지 못한 17개 기술도 자립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원전 건설부터 운영, 해체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기술개발 및 고도화를 통해 최고의 원전 기술 경쟁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사전출입신청과 신분 확인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후에야 5개 원전본부 중 하나인 고리원자력본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리1발전소 정문을 통과하자 두께 80.6cm, 길이(가로) 11.21m, 높이(세로) 4.48m의 대형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차수문이다.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혹여 발생할 지 모를 지진해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안전모에 안전화까지 갖춰 입은 뒤 '고리1호'와 조우할 수 있었다. 첫 발을 들인 고리1호기 터빈룸 내부는 영구정지에 들어간 터라 이전의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발전기와 터빈 등은 바로 전날까지 정상 가동 중이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터빈룸은 전기가 생산되는 가장 최종 단계인 발전기와 터빈 등의 설비들이 자리한 곳이다.

고리1호기 터빈룸에서 현장관계자로부터 멈춰 선 고리1호기의 연혁과, 향후 해체 작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한수원 제공) ⓒ News1

고리1호기가 가동 중일 당시에는 이곳의 터빈이 분당 무려 1800바퀴를 회전하며 전기를 생산했다고 한다. 고리1호기는 1978년 4월29일 상업운전에 들어간 이후 2007년 6월18일 30년의 설계수명 도래로 약 6개월간 가동을 멈췄다. 이후 안전성 검토를 거쳐 계속운전 허가를 받고 2008년 1월 1차 계속운전을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계속운전’이었다. 현재는 고리2호기의 계속운전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제 이 설비들은 모두 앞으로 제염 과정을 거쳐 해체될 예정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발전소가 한창 가동 중일 때 터빈룸은 한겨울에도 40도를 웃돌고, 각종 기계음 때문에 꼭 귀마개를 해야 했는데, 차갑게 식은 기계와 조용한 공간에서 보니 고리1호기가 정말 퇴역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고 소회를 전했다.

고리1호기는 즉시해체 방식의 해체를 준비 중이다. 해체 승인 후 15년 내외로 소요기간이 짧으면서도 해체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해당 부지를 빠르게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원전 해체 선도국으로 꼽히는 미국과 독일, 프랑스에서도 이 같은 즉시해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게 한수원의 설명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해체를 승인하면 폐기물처리시설 구축과 비방사성계통 구조물 철거가 먼저 이뤄지게 된다. 이후 방사성계통에 구조물을 제염처리하고, 철거해 폐기물을 처분장으로 이송, 부지에 남은 방사선을 조사‧평가한 뒤 최종 해체가 완료된다.

한수원 관계자는 "발전소 정지 후에는 핵분열생성물 등 방사성물질의 추가 생성이 없고, 기존 방사선 준위도 낮아져 정상운전 상태에 비해 방사선량이 매우 낮아진다"며 "해체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안전하게 해체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고리1호기를 뒤로 하고, 마주한 것은 계속운전을 추진 중인 '고리2호기'다. 1호기 터빈룸을 벗어나 2호기 주제어실로 들어가니 수많은 버튼 사이 '원자력 출력 0%', '발전기 출력 0MW' 계기판이 눈에 들어왔다.

고리2호기 역시 고리1호기와 마찬가지로 설계수명 도래를 이유로, 지난 4월8일 40년의 운전허가기간을 마치고 정지했다. 지금은 향후 10년간의 계속운전을 위한 '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고리2호기 주제어실. '원자력 출력 0%', '발전기 출력 0MW' 계기판이 눈에 들어온다. 고리2호기는 계속운전을 앞두고, 현재 안전성 점검 및 노후설비 교체 등을 위해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한수원 제공) ⓒ News1

국내 원전은 노형에 따라 30년, 40년, 60년씩 운전허가기간을 부여받는데, 이 기간이 지나면 계속운전 신청을 통한 안전성 평가를 거쳐 10년 더 운전연장기간이 주어진다.

미국의 경우 철저한 안전성 평가를 통해 80년까지 운전을 허가받은 원전이 있다고 하니 원전의 생명력 연장은 곧 철저한 안전관리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 이해가 됐다.

한수원은 지난해 4월 고리2호기 안전성평가 보고서를 규제기관에 제출한 상태다. 이후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한 주민의견 수렴, 주민공람, 공청회 등의 과정을 거쳐 지난 3월 계속운전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했다. 현재는 규제기관 심사가 진행 중인데, 한수원은 2025년 6월쯤 재가동을 목표로 꼼꼼히 제반작업을 진행 중이다.

고리2호기 외에도 향후 7년 내 고리3·4호기, 한빛1·2호기, 등 모두 10기 원전의 운전허가기간이 만료된다. 궁금해졌다. 그럼에도 노후 원전의 수명을 계속 연장해 활용하는 것만이 과연 답일까.

옛 체르노빌 원전사고부터 가깝게는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까지 원전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기후위기 등을 이유로 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원전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물음에 한수원 관계자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에너지안보 확보와 탄소중립 달성, 국가비용 절감 등을 위해서는 원전의 계속운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답했다.

이어 "이들 10기 원전의 계속운전이 결정되면 약 107조6000억원 이상의 국가 에너지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도 부연했다.

고리2호기 사용후핵연료저장소. (한수원 제공) ⓒ News1

주제어실을 뒤로 하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고로2호기 보건물리실로 향했다. 사용후핵연료저장소로 들어가기 전 방사능 피폭 예방을 위해 방호가운과 장갑, 양말, TLD와 ADR이라고 하는 방사선측정기까지 착용한 후에야 진입할 수 있었다. 이 시설에 관계자 외 취재진 등 외부인이 직접 출입한 사례는 처음이라는 말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저장소에 들어서자 가로 16.7m, 세로 7.9m, 높이 12.75m, 흡사 실내낚시터를 떠올리게 하는 수조의 물 안에는 고리2호기에서 지난 40년간 사용한 핵연료 869다발이 보관돼 있었다. 부산시민 전체가 9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1955억kWh 가량의 전력을 생산해 온 고리2호기의 연료를 보관해 온 곳이라기에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아 놀라웠다. 이 저장소는 오는 2032년이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한수원은 현재 부지 내에 임시 저장시설인 건식저장시설을 계획 중이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바다와 맞닿은 발전소보다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위치한 '통합보관고'다.

이곳은 극한자연재해에서 발전소 정상가동을 위해 필수인 전력과 물을 공급하기 위해 사용되는 사고대응 설비들이 보관된 곳이다. 역시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 이후 재난상황에 따른 안전성 제고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통합보관고를 굳이 고지대에 구축한 이유를 묻자 "고지대에 배치해 해일 등에 의한 가능최고홍수위에도 영향을 받지 않게 일부러 배치한 것"이라며 "뿐만 아니라 0.5g 이상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내진설계도 돼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설비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3.2MW 이동형 발전차였다. 이 설비 하나면 규모가 작은 국내 소도시 한 곳에 전력을 충분히 공급하고도 남을 용량이라고 한다.

이 설비는 발전소가 외부로부터 공급받는 전기가 끊기고, 2·3차 비상 전기설비들 마저 투입이 불가능할 때 출동, 발전소 전원이 복구될 때까지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견학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발전소 정문을 나가는 길. 문득 한수원 한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원전은 빚과 빛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애사심의 발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전의 전 주기 과정을 둘러보고, 직접 설명을 듣고나니 그의 말에 일정부분 수긍이 갔다. 안전성만 담보된다면 말이다.

그 순간 처음 발전소 입구에 도착했을 때 눈에 들어왔던 '우리는 원전 역사의 주인공입니다'라는 문구가 다시 눈길을 사로잡았다. 직원들의 긍지로 관리·운영될 우리 원전에 적어도 '방심'은 없어 보였다.

고리원전 통합보관고에서 운용 중인 3.2MW 이동형 발전차. (한수원 제공) ⓒ News1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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