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주한미군 장갑차 사망사고···대법 “국가도 10% 배상책임”
술에 취해 차를 운전하다 주한미군 장갑차를 뒤에서 들이받아 운전자 등 4명이 숨진 사고에서 한국 정부가 일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삼성화재해상보험이 국가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2020년 경기 포천시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 차량이 앞서가던 주한미군 장갑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음주운전을 한 운전자를 포함해 차에 타고 있던 4명이 모두 사망했다. 장갑차에 타고 있던 미군 1명은 경상을 입었다.
당시 운전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193%의 만취 상태에서 시속 125㎞로 주행하다 사고를 냈다. 늦은 밤 비가 내린 데다 앞서가던 주한미군 장갑차도 불빛이 약한 한쪽 후미등만 켜고 있던 탓에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추돌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차량 보험사였던 삼성화재는 숨진 동승자 2명에 대해 총 2억48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뒤 국가를 상대로 보험금의 30%를 구상금으로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삼성화재는 주한미군 측에도 사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주한미군 구성원이 직무 수행 중 한국 정부 외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한국 정부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
1심은 삼성화재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갑차의 주의의무 위반은 인정되지만 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운전자가 만취 상태였고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이 없는 점 등에 비춰보면 미군 장갑차가 미등을 설치하거나 호송 차량을 동반했더라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사고 당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전방 시가야 좋지 않았는데 장갑차 후미등은 왼쪽에만 설치된 데다 불빛이 약했다”며 “장갑차가 공공도로를 이동할 때 호송 차량을 동반해야 한다는 주한미군 규정도 어겼다”고 했다. 장갑차가 당시 도로에 있었음을 인식하기 어려웠던 만큼 국가가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 차량 운전자 과실이 더 큰 점을 고려해 책임 비율은 10%로 제한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이 사건 차량은 미군의 공용차량으로 2심이 자동차손해배상법을 적용한 것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SOFA 규정에 따라 주한미군 공용차량이 연루된 사고에서는 국가배상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주한미군 구성원에게 공무집행상 과실이 있고, 이 과실로 피해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며 “국가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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