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디지털 한류의 첨병]<1회>진정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가는 여정
'원래 세상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된다'는 문구를 어디선가 읽어본 적 있다. 출처는 모르지만 이따금 생각나는 글이다. 세상에 없던 길을 만들어 간다는 제법 숭고한 의미와 함께, 무엇보다 결코 혼자서는 이 여정을 완주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되새기곤 한다.
그야말로 어쩌다 걷게 된 웹툰, K콘텐츠 그리고 글로벌 엔터테인먼트라는 여정에 몸 담은 지도 20년이 다 돼간다. 어느덧 네이버웹툰이 그 길에 선두에 속하게 됐다고 말씀해주는 분들이 많다. 여전히 더 빨리 더 앞서 나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때도 있지만, 이제는 이 길에 관심을 가져주는 모든 사람들이 다 고맙기만 하다.
오래전 그야말로 앞이 보이지 않았던 고독한 레이스 기억 때문일까, 필자는 한국에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를 영위하고자 하는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 적잖은 유대감을 느끼곤 한다. 그 분들이 종종 유사한 질문을 주기도 하는데, 마침 귀한 지면의 기회가 닿은 만큼 네이버웹툰이 밟아온, 그리고 나아가고 있는 글로벌 여정의 몇몇 이정표, 발전의 단계를 공유해볼까 한다.
◇글로벌 1단계, '나를 인지시키기'
네이버웹툰은 2014년 영어 서비스를 출시하며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했다. 국내에서는 이미 '웹툰'이라는 새로운 콘텐츠가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지만, 당시 미국 창작자와 업계 관계자들은 웹툰은 커녕 네이버라는 회사에 대해서도 알리가 없었다. 현지 창작자들에게 100통의 메일을 보내면 99통은 오픈도 안 될 정도였다. 당시 필자는 '포브스가 선정한 차세대 혁신가 12명'에 이름을 올렸는데, 한동안 메일 서명에 '굳이' 해당 이력을 붙여 두었다. 그런가하면 미국의 파트너들과 어렵게 잡은 미팅에서 내 모습을 통해서라도 웹툰에 대한 인상을 남기고자, 동양인들이 많이 하지 않는 밝은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기도 했다.
전에 없던 상품(웹툰)을 들고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운 고객을 만나려면 일단 나라도 알려야 한다. 거기 무슨 왕도는 없었다. 100명 중에 한 명만 메일을 열어보더라도 계속 보내기, 크고 작은 행사에 무조건 참석해보기, 하다못해 머리라도 노랗게 염색해보기 등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는 수밖에 없다.
◇글로벌 2단계, '플랫폼 생태계로 서비스 신뢰 쌓기'
그렇게 맨 땅에 헤딩하듯 한 명 한 명 만나 설득해 네이버웹툰 플랫폼에 합류한 소수의 현지 작가 작품들과 한국의 다양한 웹툰들로 구성된 초기 시드 콘텐츠들이 조금씩 성과를 만들면서, '코어 팬'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현지 작품 중 스타 작품이 탄생하고 팬덤이 확대되며 작가들의 수익도 커졌다. 초기에 현지 작가들이 좀처럼 믿지 못하던 예컨대 '만화만 그려서 먹고 살게 해줄게' 혹은 '히트 작가가 되면 네 집도 살 수 있어' 같은 내 이야기들이 하나씩 실현되면서 창작자들과의 신뢰가 형성됐다. 덕분에 양질의 작품이 꾸준히 탄생하고 다시 사용자 저변이 확대되는 선순환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글로벌 3단계, '엔터테인먼트 시장 플레이어들에게 기업 알리기'
웹툰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지적재산권(IP)이 쏟아져 나오고 팬덤 규모도 급증하자, 유명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관계자들이 비로소 네이버웹툰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기업 자체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업계가 주목할 만한 비즈니스 파트너십도 본격화됐다. 이 시기 DC처럼 강력한 IP 회사 작품들이 웹툰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로 연재됐다. 또한 네이버웹툰의 작품이 미국 주요 만화 시상식에서 디지털만화 분야의 상을 휩쓸며 대중성은 물론 작품성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글로벌 4단계, '다양한 분야의 메이저 플레이어들에게 웹툰 산업의 가치 인정받기'
서비스뿐 아니라 웹툰엔터테인먼트(네이버웹툰의 미국 본사)의 기업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유수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물론 거대 투자사 주요 임원들과 미팅 기회도 늘어가고 있다. 이제는 소수의 웹툰 팬이나 창작자,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관계자를 넘어, 다양한 산업의 기업가들도 웹툰이라는 새로운 콘텐츠와 산업의 가치를 인지하고, 이 회사의 성장성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보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누군가 '그래서 지금 웹툰엔터테인먼트의 위치는 어디쯤 되냐'고 물으면 필자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이 제법 가까이 왔다고 답하고 싶다. 내년이면 웹툰 플랫폼의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한 지 10년이 된다. 현재 네이버웹툰이 보유한 글로벌 플랫폼의 작품 수는 160만편에 달하며, 월간 사용자 수는 8560만명을 넘는다. 광고, IP 비즈니스를 패키징해 창작자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PPS(Partners Profit Share) 프로그램' 규모는 지난해 약 2조255억원을 기록했다. 모두 창작자, 팬과 동료들 덕분이다.
특히 2014년에 시작한 글로벌 1단계 앞의 10년, 그러니까 국내에서 고군분투하며 성과를 일궈낸 '글로벌 0단계'의 시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의 성공 사례와 시행착오의 누적된 10년의 역사가 이후 글로벌 히스토리의 마중물이 된 셈이니까. 결국 이 여정에 지름길은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 비즈니스에서 시간은 중요한 변수이면서 상수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창작자의 마음을 얻고, 독자의 마음을 얻고, 그 마음들이 모여 시너지를 내고 규모의 경제로 자리잡기까지는 분명히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회사는 물론, 이 여정에 들어선 업계 동료 관계자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응원한다.
<필자> 김준구 대표는 서울대학교 응용화학부를 졸업했다. 전공에도 흥미를 가졌지만 인생 전체의 키워드인 '만화'에 대한 애정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네이버에 개발자로 입사한 후에도 만화 서비스에 대뜸 지원했다. 요일별 웹툰을 만들고, 도전만화를 통해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수익 모델의 다각화를 이뤄내는 등 쉼없이 혁신을 이끌었다. 이 같은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북미, 일본, 동남아, 유럽 등 글로벌 독자와 창작자들에게도 웹툰이라는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열정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종종 작가들이 웹툰 작품에 등장시킬 때도 있다. 2014년 포브스 가장 혁신적인 차세대 리더 12인에 선정됐고, 2021년 대한민국콘텐츠대상 해외진출유공부문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김준구 웹툰엔터테인먼트·네이버웹툰 대표 dl_jk.kim@webtoons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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