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폭염 속 숨진 아들 휴대전화엔 하루 22km 이동 기록…사과 없는 코스트코
제희원 기자 2023. 7. 16. 09:12
스물아홉 살 동호 씨는 꾀를 부릴 줄 모르는 아들이었습니다. 4년 전 코스트코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동호 씨는 지난달까지 계산대 업무를 보는 캐셔로 일했습니다. 지난달 초 갑자기 주차와 쇼핑카트 관리로 보직이 바뀌었지만 큰 불만 없이 묵묵히 일했습니다. 카트 관리 업무를 맡은 지 2주 만에 동호 씨는 일하던 주차장에서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뒀습니다. 이른 폭염이 찾아왔던 지난달 코스트코 하남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땡볕에 매 시간 카트 200개 옮겨…숨지기 전날엔 22km 걸어 다녀
사고 당일 낮 최고 기온은 33도. 폭염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뜨거운 날씨였습니다. 동호 씨는 낮 12시부터 밤 9시까지 매 시간 카트 200개를 주차장에서 매장 입구로 밀고 다녔습니다. 냉풍기 하나 없는 야외주차장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게 고인의 아버지 얘기입니다. 아들의 휴대전화에는 고된 노동을 짐작하게 하는 걸음이 숫자로 고스란히 기록됐습니다. "아들이 사고 이틀 전에는 10시간 동안 26km, 4만 3천보를 걸었어요. 숨지기 전날에는 22km, 사고 당일에는 17km 걸은 게 확인됐어요." 동호 씨는 사고 전날 가족 단체 채팅방에 "화요일에 병원에 가야겠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삼 형제 중 둘째였던 동호 씨는 딸처럼 살가운 아들이었습니다. "토요일날 아들이 퇴근하자마자 눕더니 엄마한테 '오늘 4만 3천보 걸었어.' 하더래요. 아들이 병원에 가야겠다는 카톡 보낸 날에 제가 입원을 하고 있어서 제대로 답장을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걸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깝고 미안해서…"
지병 없던 둘째 아들…회사는 3주째 묵묵부답
같은 코스트코 안에서도 하남점의 인력상황은 더 열악했습니다. 비슷한 매출 규모의 코스트코 상봉점의 경우 주차 카트 관리 요원 17명이 일했지만, 하남점은 11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마저도 타 지점에서 인원을 충원받는 '콤보' 근무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휴무 돌아가기도 빠듯한 인력에 근무하는 인원 자체가 적으니 그 많은 업무량을 하려면 뛰어다니면서 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노동조합의 설명입니다. 이런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폭염은 그야말로 살인무기가 됩니다. 마트 주차장은 폭염에 그대로 노출되는 동시에 빠져나가지 못한 자동차 열기, 게다가 에어컨 공조시설에서 나오는 열기도 그대로 흡수되는 구조입니다. 체감온도는 훨씬 높았을 겁니다.
막을 수 있었던 죽음…함께 일하는 직원들 상실감도 커
"한국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던 코스트코…재발 방지 대책 약속해야
폭염 속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는데 더 이상 기업의 선의에만 기댈 순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휴게 시간을 부여하라는 등의 노동부 권고안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쓰러지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처벌 조항 신설 등 실효성 있는 조치가 그래서 필요합니다. 고용노동부는 코스트코에 대한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둘째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이 말을 꼭 기사에 실어달라고 했습니다. "코스트코가 유족한테는 유감 표명도 없이 처음부터 김앤장을 사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게 산재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직장 내에서 무엇보다 잔꾀 부리지 않고 자기 맡은 업무를 하다가 사고가 났던 것인데 본사에서는 유족한테 위로는 못 할망정 대형로펌 변호사를 사서 움직이는 게 과연 합당한지 모르겠습니다." 취재하는 내내 커다란 창고 같은 코스트코 외경과 그 안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노동자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4년 간 일하던 20대 직원이 숨졌지만 사과 한 마디 없는 코스트코 경영진의 모습을 보며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가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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