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 없는 종신형 없으니 사형?…대법 "타당치 않다" 첫 판단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의 효과를 보기 위해 사형을 선택하는 것은 한국에서 사형이 사실상 폐지됐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달 13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20대 무기수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면서 이같이 판단했다.
이씨는 강도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다른 수용자를 괴롭힌 끝에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2심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사형을 선고하는 이유 중 하나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가석방 대상이 되는 무기징역과 달리 사형은 사면이나 감형이 없는 한 계속해서 교정시설에 수용돼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절대적 종신형으로 기능하는 측면도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절대적 종신형은 형법, 형사소송법, 형집행법상 형의 종류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며 "원심이 사형 선고의 근거로 든 내용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에 없는 절대적 종신형의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처벌인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사형제가 실질적으로 폐지된 현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나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대법원이 절대적 종신형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법조계 안팎에서는 절대적 종신형에 대한 법 규정이 없어 사형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으로서 일종의 대체재처럼 취급되어 왔다. 현행법상 무기징역은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지만 사형은 불가능하다.
인천지법도 작년 6월 "현행법상 가석방·사면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절대적 종신형이 도입돼 있지 않으므로 무기징역형이 개인의 생명과 사회 안전 방어라는 점에서 사형을 온전히 대체하기 어렵다"며 연쇄살인범 권재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검찰 역시 2019년 1월 춘천 연인살해 사건, 2020년 11월 모친·아들 장롱유기 사건 등 여러 중범죄 살인 사건에서 '가석방 가능성'을 이유로 무기징역이 아닌 사형을 구형해왔다.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도 절대적 종신형으로 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 하급심 판결도 다수 있다.
서울고법은 세 모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김태현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다"면서도 "사형 제도가 형벌로서 실효성을 상실한 현재의 시스템 등을 고려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절대적 종신형은 사형과 다를 바 없어 헌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일부 학계 비판을 무릅쓰고서라도 피고인에 대한 형벌은 가석방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으로 집행돼야 마땅하다는 의견을 밝힌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한강 몸통시신 사건' 범인 장대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의정부지법도 "형의 집행이 피고인의 숨이 멎는 날까지 철저하게 집행되는 것만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 우리나라에서 사형 선고에 버금가는 징벌로서 극악무도한 모방 범죄의 재발을 방지할 유일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절대적 종신형이 현행법상 타당하지 않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 공백을 메우는 것은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몫이 됐다.
사형제 헌법소원을 심리 중인 헌재가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 자연스레 사형을 대체할 절대적 종신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그러나 작년 7월14일 공개변론 이후 1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재판관 구성이 바뀌면서 결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유남석 소장이 퇴임하는 올해 11월 전에 헌재가 결론을 내릴 것으로 전망한다.
국회에는 사형제를 폐지하고 절대적 종신형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내용의 '사형제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이 계류 중이다. 그러나 2021년 10월 발의된 후 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절대적 종신형에 대한 찬반이 치열하다.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영구 격리하면서 극단적 형벌인 사형을 대체할 수 있다는 긍정론도 있지만 사형보다 더 반인권적이며 교정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세금을 들여 흉악범을 영구히 수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wa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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