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km 거리 화성에서 본 ‘지구와 달’
60억km 거리에서 찍은 ‘창백한 푸른 점’ 패러디
광활한 우주 속에서 지구는 모래알보다도 작은 존재다.
1990년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의 태양계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60억km 떨어진 먼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줬다. 이 사진에서 지구는 보이저 1호의 관측장비에 햇빛이 산란돼 형성된 밝은색 띠 안의 아주 작은 점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나사를 설득해 보이저 1호의 방향을 지구로 돌려 찍은 이 사진에서 지구는 화소 한 개의 크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는 이 사진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지구가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럽우주국(ESA)이 화성 궤도선 ‘마스 익스프레스’ 20주년을 기념해 ‘창백한 푸른 점’을 패러디해 촬영한 지구와 달 사진을 공개했다. 지난 6월 사진을 찍을 당시 지구와 화성의 거리는 3억km였다. 보이저 1호가 사진 찍은 위치보다는 훨씬 가까운 거리이지만, 우주 속의 지구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느껴보기엔 충분하다. 또 일론 머스크 등이 추진하고 있는 미래의 화성 여행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미리 본다는 의미도 있다.
100m 거리에서 본 개미와 같아
마스 익스프레스팀에 참여하고 있는 호르헤 에르난데스 베르날 바스크대 교수는 성명에서 “이 사진에서 지구는 100m 거리에서 본 개미와 같은 크기이며 우리는 모두 그 안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도 이런 이미지를 본 적은 있지만, 잠시 멈춰 생각해보면 여전히 겸손해진다”며 “‘행성 B’는 없으며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을 보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진을 찍은 이유에 대해 “마스 익스프레스 20주년을 기념해 기후 악화와 생태 위기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해진 칼 세이건의 성찰을 되돌아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유럽우주국은 마스 익스프레스에 탑재된 고해상도 스테레오 카메라(HRSC)를 이용해 이 사진을 찍었다. 이 카메라는 주로 화성의 두 위성(포보스, 데이모스)와 별을 관측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 촬영 시점은 5월 15, 21, 27일과 6월2일 네차례였다. 마지막 촬영일은 마스 익스프레스가 지구에서 발사된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마스 익스프레스는 유럽 최초의 화성 탐사선으로 2003년 6월2일 러시아의 소유즈 로켓에 실려 지구를 출발한 뒤, 6개월간 4억9100만km를 날아 그해 12월25일 화성 궤도에 진입했다.
앞서 20년 전 마스 익스프레스는 지구를 출발한 지 한 달 후인 7월3일 밤, 지구에서 800만km 떨어진 지점에서 방향을 뒤로 돌려 지구와 달을 찍은 적이 있다.
화성 익스프레스 프로젝트 과학자 콜린 윌슨은 “2020년대 후반 로잘린드 프랭클린 탐사선과 화성 표본 귀환선에 이은 다음번 야심찬 도전은 유인 화성 탐사이지만 인간이 화성 표면에서 밤하늘의 지구를 볼 수 있으려면 아마도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되짚어 보는 ‘창백한 푸른 점’의 성찰
칼 세이건은 1994년에 쓴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저 먼 우주에서 본 지구 사진이 주는 감동과 그 의미를 이렇게 적었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창백한 푸른 점>, 사이언스북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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