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상냥한 그 사람, 험상궂은 손톱의 비밀
불안 커지면 손톱 마구 물어뜯어
자기 전 실수 떠올리며 같은 행동
껌 씹기, 손 뒤로 깍지 껴 당겨보기
대체행동으로 ‘습관 바꾸기 훈련’
민정(가명)씨는 30대 여성으로 대기업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직장 동료들에게 표정이 밝고 상냥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실제 민정씨의 성격은 보이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타인에게 자주 상처받고, 거부당하지 않을지 지나치게 걱정하는 편입니다. 그에게는 아주 어릴 때부터 불안하면 자신의 손톱과 손톱 주위의 살을 물어뜯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불안이 심한 경우에는 열 손가락 모두 물어뜯어서 피가 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민정씨 부모님에게 확인해보니 유치원에 처음 들어갈 때부터 그런 버릇이 있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민정씨를 혼내보기도 하고 장갑을 끼우고 재우기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 민정씨는 1년간 사귀었던 사람과 헤어지게 됐습니다. 결혼까지도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지게 되니 공허함과 우울함이 몰려왔고 손톱과 손톱 주위의 살을 물어뜯는 행동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하도 심하게 물어뜯어 손으로 볼펜을 잡을 때 통증이 심해졌고 손톱 모양도 짧게 변형됐습니다. 치아나 손을 사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최근에는 손톱깎이를 이용해 뜯는 버릇까지 생겨 상처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손톱 밑 요도감염균·황색포도상구균…
민정씨는 어느 날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를 임원들 앞에서 발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발표를 주의 깊게 듣던 임원 중 한 사람이 “그런데 손이 왜 그래요? 많이 다친 것 같은데”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민정씨의 손으로 향했고, 그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게 저… 왜냐면….” 그는 놀라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공개적으로 지적을 당하고 난 뒤 민정씨는 회사에서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자기 흉을 보는 게 아닌지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손톱을 물어뜯는 건 위생상으로도 매우 안 좋은 버릇입니다. 손톱 밑에는 폐렴균, 요도감염균, 효모균, 황색포도상구균 등 다양한 세균이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균은 감기나 눈병, 폐렴, 식중독, 급성 호흡기질환, 조류인플루엔자 등 크고 작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들은 호흡기 질환이나 식중독, 에이(A)형 간염, 눈병, 수족구병 등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손톱과 손톱 주위의 살을 뜯어서 상처를 입은 곳에서 감염이 일어나고 이는 우리 몸속으로 침투해 전신에 세균이 퍼질 수도 있습니다.
민정씨는 위험천만한 자신의 습관을 고치고 싶어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했습니다. 심리검사 결과, 민정씨는 우울증이 있었으며 불안이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소 다른 사람의 시선에 민감했습니다. 또 자신과 상관없는 타인의 표정이나 말투가 모두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이 우울·불안의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강박’도 민정씨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불안을 감소시키려고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게 강박입니다. 민정씨의 경우 어릴 때부터 손톱과 손톱 주위의 살을 뜯는 버릇이 강박 증상으로 판단됐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진단 기준을 보면, 민정씨의 행동은 ‘신체에 집중된 반복적 행동장애’에 포함되는 ‘손발톱 뜯기 강박’에 해당합니다. 이런 강박은 손톱과 손톱 주위 피부를 입으로 뜯어서 삼키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울증과 불안증이 동반된 경우가 많고 우울과 불안이 심해지면 강박도 강해지기 때문에 함께 치료를 해야 합니다. 민정씨는 자신의 증상을 고쳐 보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희망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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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심할 때 약물치료 병행
담당 의사는 민정씨에게 ‘습관 바꾸기 훈련’과 우울과 불안을 감소시키는 치료를 동시에 하기로 했습니다. 습관 바꾸기 훈련은 행동치료의 일종으로, 원하지 않는 반복적인 행동이나 습관을 교정하는 치료 방법입니다.
민정씨에게는 첫번째로 인식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위해선 민정씨가 손톱과 손톱 주위의 살을 뜯는 행동이 어떤 경우에 일어나는지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민정씨는 불안이 시작될 때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이 입으로 가면서 물어뜯는 행동을 했습니다. 자기 전에 그날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실수한 일이 떠오를 때도 그런 버릇이 튀어나왔습니다.
두번째는 경쟁 대응 훈련으로, 바꾸고자 하는 행동을 대체할 다른 행동을 설정하고 불안이 시작될 때 그 행동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도움이 되는 것은 손톱을 물어뜯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 △껌 씹기 △손을 뒤로 해서 깍지를 끼고 당겨보기 △공 모양의 물체를 손에 쥐고 힘주기 등으로 대체해 자신에게 맞는 행동을 선택하면 도움이 됩니다.
세번째는 동기부여입니다. 일주일 동안 바꾸고자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받을 수 있는 상을 미리 정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자신에게 보상하는 것입니다. 친구나 가족이 함께 참여해서 민정씨가 강박적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칭찬을 하게 하면 훨씬 도움이 됩니다.
네번째는 긴장 이완 훈련입니다. 긴장을 완화시키는 방법 중에서 복식호흡, 달리기, 수영 등의 운동도 도움이 됩니다. 다만 민정씨처럼 불안이 심한 경우에는 약물치료를 통해 우울과 불안을 낮추며 습관 바꾸기 훈련을 하면 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민정씨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이 입으로 갈 때마다 ‘손을 뒤로 해서 깍지를 끼고 당겨보는’ 행동으로 대신했습니다. 동시에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으며 자신의 우울과 불안, 대인관계의 예민성을 조절해보기로 했습니다. 또 휴대전화 다이어리에 지난 일주일 동안 손톱과 손톱 주위 살을 몇번 뜯었는지 기록하게 했습니다. 횟수가 매주 줄어 그 행동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표정과 말투에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제 민정씨는 손가락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민정씨는 이제 건강해진 손을 보여주며, 자신감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됐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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