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선수->의장대->미스터 올스타…“상상도 못 했던 일”, 한화 채은성이 쓴 한 편의 역전 드라마
지난 1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KBO 올스타전 클리닝 타임.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기념해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의장대가 절도 있는 총검술 시범을 선보였다. 의장대의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동안 더그아웃에 있던 나눔 올스타 채은성(33·한화)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그는 의장대가 총을 돌리는 것처럼 야구 방망이를 따라 돌리며 팬들에게 재밌는 볼거리를 선물했다.
채은성은 군 복무를 육군 의장대에서 했다. 그가 방망이를 자유자재로 돌릴 수 있던 것도 지난 2010년 군 복무 시절 경험 덕분이다. 그는 방망이뿐 아니라 총과 비슷한 길쭉한 모양의 물건은 지금까지도 어렵지 않게 돌릴 수 있다.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 한다.
그는 프로야구 ‘별들의 잔치’에서 의장대의 공연을 바라보며 자신의 과거 군 생활을 떠올렸다. 2009년 육성선수로 LG에 입단했다가 이듬해 군에 입대한 채은성은 2010년대 중반까지 오랜 시간 프로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특히, 방망이를 잠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군 복무 시절은 채은성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다.
고난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2014시즌 LG에서 1군에 데뷔한 채은성은 지난해까지 총 1006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7, OPS 0.801, 96홈런, 595타점 등의 뛰어난 성적을 거둬 리그에서 손꼽는 장타자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가치를 알아본 한화는 지난해 말 채은성에게 총액 90억원(6년)에 달하는 거액의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안겼다. 한화로 이적한 채은성은 올 시즌 전반기까지 74경기 타율 0.291 OPS 0.820 등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FA 첫해부터 팀의 중심 타자로 발돋움한 그에게 한화 팬들도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다. 채은성이 팬·선수단 투표로 ‘베스트12’에 뽑혀 올스타전에 출전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팬들의 응원 덕분인지 지난 14~15일 이틀간 사직구장에서 펼쳐진 KBO 올스타전에서 채은성은 가장 빛나는 ‘별’이 됐다.
14일 홈런레이스에서 5개의 아치를 그려 박병호(4개·KT), 박동원(3개·LG) 등의 거포를 제치고 ‘홈런왕’에 등극하더니, 전날 올스타전 본 경기에서는 4회말 2사 만루에서 무려 41년 만에 올스타전 역대 2번째 그랜드슬램을 터트려 ‘미스터 올스타’로 선정됐다.
채은성은 올스타전 홈런왕과 최우수선수(MVP)를 독식한 첫 번째 선수가 됐다. 2020년 양의지(당시 NC)가 ‘언택트 올스타 레이스’에서 두 상을 모두 차지하긴 했지만, 실제 경기가 아닌 정규시즌 성적을 토대로 한 결과이기에 예외적인 경우다.
채은성은 경기 뒤에 취재진과 만나 의장대 공연을 떠올리며 “만감이 교차한다. 의장대분들을 보며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며 “당시에는 오늘같이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되는 일을 상상조차 못 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소감을 밝혔다.
사직 |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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