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를 연속으로 리뷰하고 있습니다. 앞서 ‘장고:분노의 추적자’(83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84회)을 순차적으로 살펴봤습니다. 타란티노 작품 리뷰 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영화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입니다.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인간은 늘 가정한다. 그건 시간 앞에 무력한 인간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이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상상으로 우리가 상처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역사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는 역사적 가정을 통해 스토리를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앞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을 통해 히틀러와 괴벨스를 한 자리에서 응징하는 통쾌한 상상을 한 바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생채기를 남긴 1969년의 ‘그 사건’을 뒤집어본다.
임신부인 배우를 죽였던 맨슨 패밀리
영화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전에 작품 모티프가 된 원사건을 살펴보자. 1969년 미국의 촉망 받던 26살의 배우 샤론 테이트가 살해당했다. 테이트는 당시 임신 8개월 째였다.
잔혹한 범죄를 자행한 건 맨슨 패밀리로 불리던 범죄자 집단이다. 그들은 찰스 맨슨을 신적 존재로 떠받들며, 그가 지시하는 살인을 수행했다. 일명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 역시 맨슨의 사주로 발생했으며, 테이트를 비롯한 지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끔찍한 범죄는 오해에서 비롯됐다. 찰스 맨슨은 음악가이기도 했는데, 그의 노래를 음악 프로듀서 테리 맬처가 비판했던 것이다. 기분이 상한 맨슨이 추종자들에게 맬처 집을 습격하라고 지시했는데, 사실 맬처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간 후였다. 그곳에 신혼집을 꾸린 폴란스키의 부인 샤론 테이트가 애꿎은 희생양이 된 것이다.
사건은 당대 사람들에게 여러 모로 아픔을 남겼다. 나를 비판한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보는 자기 중심적 사고, 자신이 추종하는 인물이 지시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살해해도 된다는 신념,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그녀를 외려 조롱했던 잔인함까지. 범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회의하게 할 만한 요소로 가득했다.
타란티노, 역사를 뒤집다
감독은 이 역사를 뒤집어 보기 위해 두 남자를 등장시킨다. 서부물 악역 배우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그의 스턴트 배우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다. 중년의 달튼이 영화계에서 입지가 점점 좁아지면서 부스의 역할도 축소돼 간다. 달튼은 날이 갈수록 알콜에 많이 의존하고, 부스는 그의 집안일을 돕다가 술 상대나 해주는 것이다.
왜 하필 맨슨 패밀리 실화를 재구성하기 위해 한물간 웨스턴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그건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 말고도 선택지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다시 말해, 맨슨 패밀리 범죄에는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사람들이 타인을 다치게 함으로써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 측면이 있다. 맨슨은 자기 음악을 무시했던 프로듀서를 죽임으로써 스스로를 부각시키려 했고, 그를 추종한 패밀리는 절대자였던 맨슨의 눈에 들기 위해 살인에 동참했다. 자신이 누구를 죽였는지도 몰랐던 그들은 피해자가 유명인임을 알고 외려 좋아했다고 한다. 세상의 이목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달튼은 자신이 영화계 스포트라이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알지만, 남에게 상처 주는 방식으로 인정 욕구를 채우려 하지 않는다. 외려 그는 자신이 저평가 받는 원인 중 일부가 스스로에게 있음을 깨닫고, 술 대신 연기에 집중하기로 한다. 부스 또한 일거리가 없을 때, 일탈하는 대신 자기 중심을 지키며 살아갔다. 그들은 평균 수준의 윤리 의식을 갖추고 살아간다. 그 정도 윤리 의식만 갖고 있어도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맨슨 패밀리를 불로 지저버렸다
타란티노는 맨슨 패밀리에게 끔찍한 죽음을 안겨줌으로써 실화를 비튼다. 패밀리는 실수로 폴란스키 저택이 아닌 달튼 집에 침입했고, 마침 거기에 있던 부스와 대면한다. 그는 극중에서 이소룡을 집어던질 정도로 강력한 완력의 소유자다. 부스는 어딘가 하나씩 어설픈 살인자 집단을 때려잡고, 달튼은 과거 작품을 촬영할 때 썼던 화염방사기로 살인마 중 하나를 태워버린다.
타란티노 작품 중에 폭력성이 가장 덜한 영화이지만, 맨슨 패밀리를 처단하는 이 장면에서만큼은 화력을 폭발시킨다. 나치를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응징했던 ‘바스터즈’처럼 두 남자는 광신도 무리에게 어떤 자비도 보여주지 않는다. 침입자를 화염방사기로 지지는 부분에서는 마치 가정에 들어온 벌레를 태우는 듯한 태도가 보인다.
작품 속에서라도 가해자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함으로써 피해자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다. 실제 역사 속 살해 현장에선 테이트가 “아기를 낳고 싶다”고 빌었지만, 살인범은 “네 사정은 신경 안 쓴다”고 말하며 칼로 16회나 찔렀다고 한다. 인면수심 범죄자들에게 합당한 처분은 그들 역시 잔인하게 죽게 하는 것뿐인지 모른다. 적어도 영화 속 대체 역사에서라도 말이다.
영화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어떤 감독은 사건을 있는 그대로 담아 참상을 고발함으로써 기여한다. 타란티노는 작품 속에 실제와 다른 역사를 씀으로써 피해자를 추모하고, 바람직한 세계의 모습을 남긴다. 스스로가 가장 잘하는 폭력의 예술로 세상을 위로한다.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길 원했던 샤론 테이트는 타란티노가 자신을 위해 그려준 세계에서 계속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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