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사업 유예, 어떤 정부도 맘대로 쪽방촌 공공개발 못 엎는단 뜻이기도”
선진국으로서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의 비주택은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과감하게 쳐내면서 집단적 보장 시스템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정책결정권자들이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주간경향] 2021년 2월 5일, 정부는 쪽방촌이 밀집한 동자동 일대의 토지를 수용해 직접 개발하고, 공공임대 단지를 조성해 쪽방 세입자의 재정착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총 건설호수 2410호 중 1250호를 공공임대로 짓겠다는 내용이었다. 2020년 기준 1083명으로 추정되는 쪽방촌 주민 전원이 입주할 수 있는 규모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이 같은 쪽방촌 정비사업은 국가가 주거를 모든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 인정하며 개발이 곧 내쫓김이던 한국 도시빈민의 역사를 새로 쓴 하나의 사건이었다”고 평했다.
2년 5개월이 지난 지금, 동자동 사업은 공공개발을 반대하고 민간개발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소유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표류 중이다. 아직 사업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의 지정(지구지정)’도 진행되지 못했다. 지난 3월, 조문영 교수는 연세대 학생들과 함께 한 학기 동안 벌인 동자동 현장연구를 토대로 표류하고 있는 동자동 사업을 다각도로 조명한 책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글항아리)를 발간했다. 동자동 사업의 탄생 배경과 사회적 의미, 2년 넘게 표류하는 원인, 공공개발을 적대시하는 부동산 문화, 쪽방 세입자들의 공동체 및 공공의 의미 등을 짚었다. 지난 7월 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조문영 교수를 만났다.
-2022년 1학기 ‘빈곤의 인류학’ 수업 주제로 ‘동자동 사업’을 다뤘다.
“‘동자동’을 21세기 한국사회의 빈곤, 주거, 개발을 두텁게 이해할 수 있는 ‘핵심현장’으로 주목해왔다.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첫째, 2021년 2월 국토부의 동자동 쪽방촌 일대 공공주택사업 결정은 어떻게 가능했나. 공공주택을 지어 세입자인 쪽방 주민이 정착해 살도록 지원하는 정책은 주거권을 헌신짝 취급해온 지난 재개발 역사를 돌아볼 때 커다란 진전이었다. 둘째, 현재 이 사업이 마주한 난관은 무엇이며 어떠한 논의와 개입이 필요한가. 두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학생들을 네 팀으로 나눠 각각 한국의 주거·개발 정책, 반빈곤·주거권 운동, 부동산 문화, 동자동 쪽방촌 커뮤니티를 살펴보기로 했다.”
-동자동 사업이 이전 재개발 정책과 다른 차별점은 무엇인가.
“1980년대 이후, 토지·가옥을 소유한 개인들이 조합을 설립해 재개발을 추진하는 합동재개발 방식이 도시의 재개발을 주도해왔다. 민간의 역할이 컸고 공공의 역할은 미미해 가난한 주민들이 내쫓기는 상황이 반복됐다. 동자동은 남산 고도제한과 암반지대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사업성이 낮아 그동안 민간 재개발조합의 진입이 어려웠다. 수십 년 동안 재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계층의 주거안정 및 공공임대주택 확대 공급이라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동자동 사업이 결정됐다. 가장 큰 차별점은 쪽방 주민들을 구역 내 게스트하우스나 모듈러주택으로 이주시킨 뒤 공공임대주택 단지를 조성해 재정착시키는 ‘선(先)이주 선(善)순환’ 기조를 바탕에 뒀다는 것이다. 재개발 추진 과정에서 주거권이 재산권에 비해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돼왔던 그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분명 다른 행보다.”
-이전에도 공공임대아파트나 LH 매입임대주택 등 임대정책은 있었다.
“기존의 공공임대정책은 지역공동체를 해체했다. 뉴타운 사업이 한창이던 2007년 서울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재개발 사업에서 선주민 재정착률은 토지·주택 소유주의 경우 40% 내외로 집계되지만, 세입자까지 포함하면 10% 내외로 뚝 떨어진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은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물리적인 환경이다. 둘째,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이 두 번째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고립돼 외롭게 죽는다. 특히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 대부분은 일찌감치 혈연 가족에서 떨어져 나왔다. 주민들은 주민조직인 ‘동자동 사랑방’,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를 통해 새로운 관계망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관계를 지속하고 발전시키는 게 이들에게는 너무도 소중하다. 주민 중에는 사망 후에 시신을 인수할 법적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도 많은데, 그런 경우에는 쪽방 주민들이 참여해 함께 장례를 치른다. 연고가 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죽었을 때 누군가 나의 주검을 거둬주고 애도해준다는 것 자체는 너무도 중요하다. 물론 쪽방촌 내에서도 여전히 고립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도 많고, 주민조직을 ‘그들만의 리그’로 보기도 한다. 힘들고 아픈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싸움이나 불화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렇지만 살면서 계속해서 내쫓기는 경험을 했던 이들이 동자동 쪽방촌이라는, 어떻게 보면 최후의 장소에 모여 다시 연결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사회적인 관계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동자동 사업은 물리적인 주거환경을 개선함과 동시에 사회적인 환경 또한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기존 임대정책과는 다르다.”
-부동산의 의미가 ‘주거’보다 ‘자산’에 방점이 찍힌 한국사회에서 ‘동자동 사업’ 계획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부 주거정책에 오랫동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동자동 사업에 대해 ‘적극 행정이라고 하기에는 무모해 보일 정도의, 누군가의 고뇌에 찬 결단으로 이루어진 것이 틀림없는, 나의 상상력 밖에 있는 창의적 해법’이라고 평가했다. 그 평가에 동의하면서도 이 정책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의도적으로 또 우연적으로 연결된 반빈곤·주거권 운동과 한국도시연구소 등 연구·운동 네트워크의 역할이 있었다고 본다. 2018년 11월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 ‘비주택’ 주거지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잇따랐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오랫동안 반빈곤·주거권 운동과 연구를 해온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한국도시연구소 등의 단체들은 주거환경의 실질적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현미·변창흠 전 국토부 장관을 비롯해 정부에서 활동하며 주거권과 공공주택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전문가들은 시민사회와 언론의 문제 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질적인 움직임을 끌어냈다. 동자동 사업은 사실상 빈민운동의 오래된 역사 속에서 태동한 것이지 정책적 결단만으로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맥락에서 이후 이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정치화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소유주 중 일부는 지금도 원희룡 장관 앞에서 민간개발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는 등 집요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언론이 ‘부동산 투자가 대세다’라는 보도만 반복하면 수행성(생각하거나 계획한 대로 일을 해내는 성질) 효과로 이러한 담론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동자동 사업이 보수 정부 이후에도 전면 폐기되지 않고 유예 중인 상황에 주목했다.
“민간개발을 요구하는 소유주들은 정권이 교체되면 이전 정부의 공공개발계획은 폐기될 거라고 말해왔다. 지난해 11월 이한준 LH 사장이 ‘(동자동 사업이) 주민(소유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발언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지난해 12월에는 국토부가 서울역 쪽방촌 민간개발 검토에 나섰다는 보도도 나왔다. 국토부는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서울역 쪽방촌은 공공주택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라고 해명했다. 사업 발표 후 2년이 넘도록 지구 지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공공개발을 염원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지만, 소유주들의 거센 반발이 계속되고 정권교체가 이뤄진 상황에서도 사업이 철회되지 않고 유예된 채 남아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현 정부는 전임 정부의 부동산 문제로 정권을 잡은 측면이 있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약자와의 동행’ 프레임을 내걸고 있다. 전면적으로 뒤집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어떤 정부라도 이 사업을 마음대로 엎을 수 없는 뭔가가 우리 사회에 형성됐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공공개발계획을 가능케 했던 여러 연결망 중 어떤 부분은 뜯겨 나갔지만, 한국사회에서 쪽방촌과 같은 비주택은 사라져야 하며 최소한의 주거조건은 인정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형성된 연결망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올해 들어 국토부는 소유주에 대한 보상방식을 강화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계속 저울질을 하면서도 법 개정이라도 해서 공공개발을 해보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 눈여겨볼 지점이다.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투자가 일상화되고 대중화되는 흐름이 강화돼왔지만, 한편에서는 동료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주거조건을 요구하는 운동 또한 성장해왔다. 이 두 개의 흐름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동자동 현장이다.”
-정부가 눈치만 보고 시간만 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일각에서는 동자동 사업이 지연되는 상황을 ‘사회의 성숙’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개발사업이 과거와 같이 국가가 주도해 밀어붙이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듣고 수용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보다는 지자체 선거 등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대중의 여론을 살피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양극화, 불평등이 심화되는 한국사회에서 주거의 최전선을 끌어올리는 작업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해야 할 일이다.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열악한 주거환경이 어떻게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지 팬데믹 시기에 보지 않았나. 이런 재난은 앞으로 더 자주 반복될 것이다. 국가를 정부로만 국한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으로 본다면, 이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자부심을 갖고 등장해야 할 때라고 본다. 산업화 단계의 국가를 넘어선 선진국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려면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의 비주택은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과감하게 쳐내면서 집단적인 보장 시스템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초·중·고 의무교육이 당연시되는 것처럼 안전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물리적·사회적 조건을 갖춘 집에서 누구나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당연히 보장해야 한다. 정책결정권자들이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해나가야 할 일이라고 본다.”
-동자동 사업이 한국사회에 어떠한 의미 및 파급효과를 지닐 수 있을까.
“‘87년 체제’는 경제적 민주화, 분배에서 실패했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인데, 동자동이 중요한 현장이 되면 좋겠다. 동자동은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과 진화의 역사를 함께 볼 수 있는 현장이면서 또 한 편에서는 한국사회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두고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각축을 벌이는 곳이다. 홈리스 운동에서 ‘최저선이 최전선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교각의 지지력은 그 교각의 가장 취약한 기둥의 강도가 결정하듯 한 사회의 역량은 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삶의 질이 결정한다’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동자동은 재난이 일상화된 한국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가늠하는 최전선, 핵심현장이다. 각자도생을 넘어 ‘다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집요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트럼프 반대한 ‘반도체 보조금’···바이든 정부, TSMC에 최대 9조2000억원 확정
- [사설] 이재명 선거법 1심 ‘당선 무효형’, 현실이 된 야당의 사법리스크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