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만 써야 하는 미국 마을…“한국은 관심 없나요?” [세계엔]

이영현 2023. 7. 1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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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 주 ‘콩코르디아 언어 마을’ (사진: KBS 화면)


■ 美 미네소타 주 '콩코르디아 언어 마을'

미국 미네소타 주 최대 도시 미네아폴리스에서 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4시간을 달리면 '베미지'라는 작은 도시가 나옵니다. 이 도시 호숫가에 콩코르디아 언어 마을이 있습니다. 콩코르디아 언어 마을은 미네소타주 콩코르디아 대학교에서 1961년 설립한 언어와 문화 교육을 위한 비영리 기관입니다.

이곳에서는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노르웨이어 등 14개 나라 언어 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로 8세에서 18세까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방학을 이용해 2주 또는 4주 과정으로 언어 몰입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어 마을은 1999년에 시작됐습니다.

한국말 쓰기를 다짐하는 ‘숲속의 호수’ 학생 (사진: KBS 화면)


■ 세계 유일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

한국어 마을의 이름은 '숲속의 호수'입니다. 모든 간판과 안내문은 한국어로 돼 있습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무조건 한국어로만 말해야 합니다. 매일 아침 7시 반 기상 당번을 맡은 학생들은 징과 꽹과리를 들고 학생들을 깨웁니다. 20년 넘게 이어진 전통입니다. 이후 강당에 모여 큰 소리로 "오늘 하루 종일 한국말만 하겠습니다." 라는 다짐을 외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숲속의 호수’ 한국 노래 부르기 시간 (사진: KBS 화면)


■ 한국어는 생활이자 놀이

학생들의 한국어 배우기는 형식도 정해진 시간도 없습니다. 식당에 들어가기 위해 한국어 질문에 답해야 하고 자신들이 먹을 음식이 무엇인지 이름을 두세 번씩 외치고 먹습니다. 필요한 물건이나 간식을 살 때도 배움의 기회가 됩니다. 달러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고 반드시 원화로 환전을 해야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국어는 생활이고 놀이입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이어지는 학생들의 촌극은 상황극의 연속으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우게 만듭니다. 생활 속에서 말을 익히다 보면 글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4주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짧은 글짓기가 가능합니다. 태권도, 부채춤, 서예, K 팝 댄스 등 한국의 문화 체험은 동아리처럼 운영됩니다.

특히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4주 과정을 마치면 고등학교 언어 과목의 1년 과정 학점을 인정받습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입니다.

‘숲속의 호수’ 2주 과정 하루 일과표 (사진:KBS 촬영)


■ 초창기에는 빈자리, 요즘은 정원 초과

초창기 '숲속의 호수'는 한국말을 못하는 한국인 2세 3세나 입양아들이 채웠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도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7~8년 전부터 한류 열풍에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여름방학 캠프의 경우 2주 과정이 2천6백 달러, 4주는 5천7백 달러로 우리 돈 3백만 원에서 7백만 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하지만 지원자가 정원 120명을 넘겨 대기 순번을 받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K팝이 좋아 한국말을 배우고 싶었고 조금 익히다 보니 한국의 문화가 좋아져 부모님을 설득해 등록했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학생들 가운데는 한국에서 공부를 더 하며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전공하고 싶다는 학생들도 여럿 만날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로스 킹’ 교수와 ‘숲속의 호수’ 전경 (사진: KBS 화면)


■ 한국어 마을 설립자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콩코르디아 외국어 마을에 한국어 마을을 시작한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었습니다.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한국어문학과 교수인 '로스 킹' 교수가 주인공입니다. 킹 교수는 1999년 '숲속의 호수'를 직접 설립해 14년간 촌장을 지냈습니다.

그가 한국어에 관심을 두게 된 건 대학교 2학년때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한글로 편지를 쓰는 것을 우연히 본 뒤부터였습니다. 11살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매년 콩코르디아 언어 마을에서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을 배우며 언어에 대한 재능을 깨우친 킹 교수에게 생소했던 한글은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버드에서 한국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한국어 연구자가 많기를 바랐던 그는 어릴 때부터 한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어릴 때 자신의 놀이터였던 콩코르디아 언어 마을에 한국어 마을을 만들게 된 겁니다.

다프나 주르 (한국이름: 주다희)미국 스탠퍼드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부 교수/‘숲속의 호수’ 촌장 (사진: KBS 화면)


외국인 사제( 師弟)가 이어가는 '한국어 사랑'

'로스 킹' 교수의 한국어 사랑을 이어받은 사람이 다프나 주르 미국 스탠퍼드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부 교수입니다. 킹 교수가 한국어 마을을 설립할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주르 교수는 태권도 특기를 가진 한국어 선생으로 '숲속의 호수'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아버지의 나라인 이스라엘로 유학을 간 그는 태권도를 배웠고 이후 병역을 마친 뒤 대학도 안 가고 제대로 태권도를 배워보겠다며 한국을 찾은 게 지금의 그를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로 돌아가 대학을 마친 뒤에도 한국어를 더 배우고 싶어 찾아간 곳이 킹 교수가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이었습니다. 그는 2002년 킹 교수를 따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인 태권도 사범을 만나 결혼까지 했습니다. 한국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린 그는 '주다희'라는 한국 이름으로 킹 교수의 뒤를 이어 2014년부터 '숲속의 호수' 2대 촌장을 맡게 된 겁니다.

"한국말이 오로지 한국 사람을 위한 언어라는 것은 깨뜨리고 싶어요. '숲속의 호수'는 한국 사람을 위한 한국말이 아니라. 글로벌 언어, 누구나 한국말을 공부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프로그램입니다."
- 다프나 주르 (한국명 주다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한국어 마을 촌장)

핸드백 제조업체 ‘시몬느’ 박은관 회장/ 박 회장의 기부로 새롭게 지은 '숲속의 호수' 건물 (사진: KBS 화면)

■ 열악한 환경, 부족한 공간

'숲속의 호수'는 올해로 25년째 운영되고 있고 매년 학생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도 '러시아 마을'의 시설을 빌려 쓰고 있습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마을처럼 독자적인 건물과 시설을 갖춘 곳은 한번에 160명을 가르칠 수 있고 일년 내내 교육이 가능하지만 '한국어 마을'은 러시아 마을 일정을 피해 눈치를 보며 여름철에만 학생들을 받고 있습니다.

다행히 4년 전 한국의 핸드백 제조업체 '시몬느'의 박은관 회장이 500만 달러, 당시 50억 원이 넘는 돈을 쾌척해 '숲속의 호수'는 한국의 전통 양식으로 새 건물을 마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콩코르디아 14개 언어 마을 가운데 8번째이자 아시아권에서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먼저 독자적인 마을을 갖게 되는 겁니다. 내년부터 새 건물에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한국어 교육을 하게 됐지만 정원을 현재의 절반인 60명으로 줄여야 할 상황입니다. 자금이 부족해 기숙사를 절반밖에 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리가 없으니까 매년 학생들이 못 온다는 게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올해도 스무 명 넘게 참여를 못 했는데요. 이 스무 명이 기회를 놓친 수입니다. 그 기회라는 것이 한국어를 통해서 평생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또 친한파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다프나 주르 (한국명 주다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한국어 마을 촌장)
지난 8일 LA 한국문화원은 처음으로 ‘숲속의 호수’를 찾아 전통 미술 체험과 K팝 댄스 워크숍 등을 진행 (사진:KBS 촬영)

■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은 소비자가 아닙니다.

초대 촌장을 맡았던 로스 킹 교수도 현재 촌장인 주르 교수도 한국의 무관심을 안타까워합니다. 20년 넘게 한국어 마을을 운영했지만 한국 기업의 지원은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라고 합니다. 현재 한국 정부 차원의 지원은 1년에 만 달러, 학생 2명 교육비에 불과합니다. 이 마저도 곧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주르 교수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갖고 한국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는데 이제 좀 더 신경을 쓸 때가 아니겠냐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한국어 배우러 오는 숲속의 호수 학생들이 여름에도 큰 투자를 해서 한국어 배우고 케이팝 콘서트도 자기 돈도 많이 들여가지고 여러 가지 문화 활동을 많이 하는데 한국 기업들이 그걸로 또 많은 성과를 보고 있잖아요. 그 성과를 다시 재투자하면 더 좋은 그 파트너 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은 지금 인정을 많이 받고 있고, K팝이나 전자제품이나 큰 기업들이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미국 어린이들이 사실 자기 개인 돈을 많이 쓰고 투자하는 그런 즐거운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제가 바라는 것은 이제 미국, 그리고 외국 애들을 '소비자'로만 보지 말고 투자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프나 주르 (한국명 주다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한국어 마을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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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현 기자 (leeyou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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