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기피자 손 들어준 법원...왜 이제와서 이런 결정 내렸을까 [법조인싸]
20년 넘게 한국 입국이 거부돼온 병역기피자 스티브 승준 유(한국명 유승준)씨의 한국행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지난 13일 서울고법 행정9-3부(조찬영·김무신·김승주 부장판사)가 유씨가 주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를 상대로 낸 여권·사증(비자) 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유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입니다.
대다수 국민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재판부가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다른 판결을 냈다는 사실 때문에 국민 정서가 더 안좋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재판부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이번 주 법조인싸는 ‘아름다운 청년’에서 한 순간에 ‘전국민 통수의 아이콘’이 된 유씨의 항소심 판결을 톺아봅니다.
유씨가 자의든 타의든 평소 여러 매체를 통해 만들어온 병역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는 이미지가 팬은 물론 국민 감정에 더 큰 괘씸함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합니다. 유씨보다 앞서서도, 혹은 유씨 이후에도 연예인의 병역 문제는 종종 구설에 오르내리는 논란의 소재였습니다.
그러나 유씨 사건은 그 영향이 전무후무한 수준이었습니다. 개인의 영역을 넘어 대한민국의 병역법과 국적법 개정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큰 파문을 만들어냈기 때문인데요.
법무부, 병무청 등은 대한민국 국민의 외국 국적 취득이나 이중국적, 원정출산, 영주권자의 국내 영리활동 등에 대해서 과거보다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씨 사건 이후로는 다른 연예인들이 합법적으로 보충역이나 병역면제를 받았다고 해도 네티즌들에게 이유를 불문하고 악플을 받는 일이 늘어났고, 연예인들이 자진해 군복무를 하게 만드는 분위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셈입니다.
LA 총영사 측은 유씨 비자 발급 거부 이유로 “병역 회피 목적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에게 법 안에서 처분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유씨의 사익보다 국방의 의무로서 가져야 할 공익의 가치가 더 위에 있다”고도 했습니다. 유씨는 곧바로 이러한 LA 총영사의 행위에 대한 소송을 제기합니다. 바로 2차 소송입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번 판결은 2차 소송의 항소심(2심) 입니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유씨에 대한 입국금지와 비자발급거부는 주권국가로서의 재량권 행사 범위 안에 있고, 공익적인 측면에서 유효하다’는 취지로 원고(유씨측) 패소를 판결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이번 판결 이전의 상황이죠. 그렇다면 이번 판결에선 왜 결론이 달라졌을까요?
구법에서는 재외동포체류자격 부여금지 사유로 △병역기피 목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 국적을 상실하여 외국인이 된 경우(병역 사유)와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외교관계 등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국익 사유) 등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구법에는 만 38세(입영의무 면제연령)가 된 때에는 적용을 배제하는 단서 조항이 있는데요. 병역을 기피하려고 국적을 상실한 사람에겐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 사람이 38세가 넘게 되면 ‘병역 사유’는 재외동포체류자격 부여금지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38세 이상이고 ‘국익 사유’에 해당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밖에 없는 셈이죠.
재외동포법의 해당 연령 제한은 지난 2010년 38세로 상향됐고, 2017년에는 41세로 상향되는 등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씨가 다른 병역기피자와 달리 국가를 속이며 병역을 기피했더라도, 그것이 행정적 제재 기간의 연장이나 무기한 체류 자격 박탈의 근거로 적용하긴 어렵다고 본 겁니다. 결국 유씨에게 적용되는 구법으로는 국적변경을 통한 병역의무 면탈만으로는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체류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재판부는 유씨가 유튜브 등을 통해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쏟아낸 사실을 의식한 듯 “(유씨의) 최근의 언동이나 이에 따른 사회적 반응 등 사후적 사정들이 2002년 병역기피 목적의 외국국적 취득행위와 별도의 행위, 상황을 구성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도 밝혔습니다. 유씨가 논란을 일으키고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더라도 이것을 두고 사후에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본 겁니다.
그러면서 “행정처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표준시기는 그 처분 당시이고, 재판시를 표준으로 할 수는 없다. 원고의 최근 언동 등을 고려해 이 사건 처분의 적법여부를 판단할 수도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아울러 병역기피에 제한을 가하는 방향으로 법이 수차례 개정됐지만, 그 이유만으로 현행법을 유씨에게 적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실제로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전 끝에 지난 1차 소송에서 유씨가 최종 승소했지만, 외교부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명분으로 비자 발급을 거부해왔습니다. 이번 2차 소송 역시 같은 방식으로 문제삼을 여지가 있죠.
비자가 발급되더라도 법무부의 ‘무기한 입국금지’ 처분도 유효한 상황입니다. 법무부장관은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사회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 일제 전범 등에 대해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할 수 있는데요. 영구적으로 입국이 금지돼 있는 유씨의 처분과 관계가 얽힌 외교부와 법무부, 병무청 등 유관 부처 사이의 논의가 끝나야만 유씨의 국내 입국을 기대할 수 있을 전망입니다.
한편 유씨를 대리하는 류정선 변호사는 항소심 선고 후 기자들 과 만나 “LA총영사 측이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을 문제 삼아 주장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 유의미하게 본다”고 평가했다. 류 변호사는 “비자 발급을 허용한다는 것은 의미 자체로 입국을 허락한다는 뜻”이라며 “유씨에게 내려진 가혹한 입국 금지 조치 역시 해제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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