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의병영터치] "군대 갈 사람 없소?"…주요국들 '軍구인난' 아우성
입대하면 시민권 주고 성소수자·외국인도 환영…각국 모병 백태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세계 여러 나라가 '모병'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출생률 저하로 병역 자원이 급속히 주는 우리나라는 여성징병제나 병사 복무기간 연장 등 의견이 나오지만, 현재로선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복지 측면에서 직업군인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거나 어렵고 힘든 일을 기피하는 현상이 '군대 구인난'의 한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병력 부족 해소를 위해 외국인이나 성소수자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입대하면 시민권을 부여하는 당근책을 쓰는 국가도 있다.
"전사 두려움에 군대 가기 싫어요"…미군도 신병 부족에 '쩔쩔'
16일 미국 언론 등에 따르면 세계 최강 미군이 모병난을 겪고 있다. 각종 지원책을 제시하며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호소하고 있지만, 매년 신병 모집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미 육군은 6만 명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4만5천 명을 모집하는 데 그쳤다. 미국 내 젊은 층의 입대 기피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인데 이는 수십 년 만에 닥친 최악의 모병 실적이라고 한다. 미 육군의 올해 모집 목표 6만5천 명 역시 달성은 어려울 전망이다. 이런 현상은 해군과 공군도 예외가 아니다.
복지 측면에서 다른 나라 군대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 미군은 왜 모병에 쩔쩔매고 있을까.
지난 2월 AP통신은 미 육군이 외부 민간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전했다. 당시 미 육군 모병 홍보 책임자인 알렉스 핑크 소장은 AP통신에 젊은이들이 입대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걱정', '친구와 가족을 떠나는 것'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이는 육·해·공군 모두 공통으로 나타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입대를 기피하는 다른 요인으로는 '내 인생을 보류해야만 한다'는 응답이 많았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군대를 안전한 곳이나 좋은 직업 경로로 생각하지 않으며, 입대하면 인생과 사회경력을 '보류'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핑크 소장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이는 군대가 자기 삶과 동떨어진 곳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조사 결과가 모병난의 모든 원인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나 한국, 다른 나라 젊은이들의 군대에 대한 인식의 공통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미국은 군대 구인난 해소를 위해 여러 유인책을 쓴다.
합법 이주자들이 미군에 지원하면 시민권을 얻는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경로)을 제공한다. AP통신에 따르면 합법 이민자 2천900명이 올해 상반기에 입대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천200명보다 많이 늘어난 것이다. 지원자는 자메이카, 멕시코, 필리핀, 아이티 순으로 많았다.
공군도 지난 4월 합법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모병에서 카메룬, 자메이카, 케냐, 필리핀,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등 14명의 신병을 뽑았다. 현재 공군에서 시민권 패스트트랙 절차로 100명이 기초훈련을 받고 있으며 이 절차를 마친 사람은 40명이다.
미국은 작년 9월 장병 주택수당을 인상하고, PX(국방마트) 제품 가격을 3∼5% 추가로 인하해 같은 지역의 민간 매점보다 최대 25% 낮은 가격에 식료품 등을 구입할 수 있게 했다. 또 올해 예산에 장병 급여 4.6% 인상을 반영했다. 가계소득이 빈곤선의 130%에 미달하는 장병에게 가족 규모 등을 고려해 최대 3만 달러의 기본수당도 지급한다. 모병에 방해 요소가 된다면서 지난 1월에는 군대 백신 접종 의무화 방침도 폐지했다.
성소수자·외국인도 환영·신체기준도 낮춰…호주·대만도 전전긍긍
현재 7만7천명인 호주 방위군도 적정 병력 목표보다 3천∼4천명이 부족한 실정이다. 오는 2040년까지 1만8천500명 이상 군인을 추가로 충원한다는 방침이지만,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라는 게 현지 분위기다.
남태평양 진출을 확대하는 중국에 맞서 미국·영국과 새로운 안보동맹 '오커스'(AUKUS)를 체결하고 핵추진 잠수함을 도입하기로 하는 등 국방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는 호주로서는 여간 고민이 아니다.
국방력 확충에 따른 신규 부대 창설로 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인데도 모병 실적은 나쁘다.
리처드 말스 국방부 장관은 작년 8월 점증하는 전략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방위군 병력 증강 계획과 관련해 여성·성 소수자(LGBTI)·소수민족을 대상으로 모병 활동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공개한 바 있다.
이에 말스 장관은 "방위군이 Z세대(1996∼2005년생)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을 가지려면 호주 사회의 다양성을 더 많이 반영할 필요가 있다"면서 "성별·인종·성적 취향·계층 등 인구의 모든 부문을 망라한 군대를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외국인에게 입대를 허용하라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다. 호주 연방 야당인 자유당의 앤드루 헤이스티 국방 담당 대변인은 "이민 유입이 증가하는 시점에 호주방위군 복무자에게 먼저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면서 "500만 호주달러(약 45억원) 규모의 투자 이민자보다 호주를 위해 기꺼이 목숨 걸고 싸우겠다는 사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평양 제도 국가와 정보 동맹을 맺고 있는 파이브아이즈(Five Eyes) 국가들인 뉴질랜드·미국·영국·캐나다와 함께 일본 이민자들이 입대 대상으로 거론되지만, 현 호주 노동당 정부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중국의 상시 위협에 맞닥뜨린 대만도 전투부대의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대만은 병역의무 기간이 2년이었으나 2008년 1년으로 줄였고, 2017년에 다시 4개월로 단축했다. 5주간 기본 훈련을 마친 뒤 11주간 자대 배치 후 제대한다. 4개월 복무 후 전역자는 모두 예비군에 배속되지만, 훈련과 경험 부족으로 실전에 투입할 전투병력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여기에다 4개월 복무 현역병 의무자 중 신체검사 면제 판정 비율이 23.49%에 이른다. 비만, 시력, 평발 등이 면제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이런 문제점에 따라 대만은 군 의무 복무기간을 내년 1월부터 1년으로 연장한다.
모병 수요에 대처하고자 남성 지원병의 신장을 158∼195㎝에서 152∼200㎝로, 여성 지원병의 경우 155∼185㎝에서 150∼200㎝로 조정했다. 대만언론은 이런 조치를 주력 전투부대의 병력 편성 비율이 목표의 90%에 도달하지 못함에 따른 병력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2040년 병력 30만명도 어려워…여성징병제 뜨거운 이슈
병역자원 부족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출생률 저하에 따라 2015년 37만명이던 20세 남자 인구는 2025년이면 23만명, 2040년 14만명으로 줄어든다. 지난 5년간 총병력은 약 62만명에서 50만명으로 줄었고, 이런 추세라면 2040년에는 30만명도 채우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조관호 박사는 현역 자원은 2035년부터 매년 2만명이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국방부가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한 무인전투체계를 빠르게 군에 도입해 인구절벽 시대에 대비한다지만, 그 체계를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기 때문에 현역 자원 부족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된다.
본격적인 현역 자원 부족 시기가 도래하기 전에 병사 복무기간 조정과 모병제 전환 여부, 여성징병제 도입 여부, 징병·모병혼합제 등을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는 병사 복무기간이 현재와 같은 18개월(육군기준)로 유지된다면 병력 수급 차질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에 복무기간을 21개월 또는 24개월 등으로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줄인 복무기간을 다시 늘린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여성징병제 문제도 '젠더' 이슈와 겹쳐 논란이 많은 사안이다. 지난 5월 국회에서 개최된 '인구절벽 시대의 병역제도 발전' 포럼에서 여성 징집 문제가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자, 국방부와 병무청이 당일 동시에 '입장'을 내야 할 정도로 이 문제는 뜨거운 이슈다.
국방부와 병무청은 "여성 징집, 군 복무기간 확대, 대체복무 폐지 등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기식 병무청장도 지난 5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현실적으로 단축됐던 (병사) 복무 기간을 늘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여성 징집제 문제에 대해서도 "시기상조인 것 같다"며 "더구나 인구가 감소하는 시점에 여성을 징병한다는 것은 사회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KIDA 조관호 박사는 "병역자원이 풍족한 시기에 인력운영체제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면서 "초저출생, 과학기술 발전에 부합한 새로운 국방인력운영체제 재설계는 우리에게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three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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