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미등록 아동 비극 막으려면…"모성 보호 지원체계부터"
출생통보제 법제화 이어 보호출산제 찬반논쟁 가열
"개인 아닌 공동체 책임" "위기 임산부 없도록 지원"
[광주=뉴시스] 변재훈 이영주 기자 = 최근 출생 미신고 아동 유기·살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임산부와 소중한 새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제도 개선 논의가 뜨겁다.
일각에선 땜질식 입법만으로는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출산·양육 책임을 함께 고민하고 짐을 나눠지는 인식 대전환과 모성 보호를 위한 체계적 지원이 급선무라는 주장이다.
'엄마 손에 새 생명이…' 수면 떠오른 비극
이 중 상당수는 베이비박스 위탁, 출생 후 사망, 입양, 출국 등으로 파악됐지만, 경찰 수사로 비정한 영아 살해 전모가 속속 드러나기도 했다.
광주경찰은 지난 14일 아동학대치사·시체유기 혐의로 30대 여성 A씨를 구속 송치했다. A씨는 2018년 4월 초 병원에서 낳은 딸을 이틀 뒤 모텔 침대에 엎어 살해한 뒤 시신을 냉동 보관했다가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린 혐의도 받는다.
전남경찰도 살인 혐의를 받는 30대 여성 B씨를 구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B씨는 지난 2017년 10월 27일 전남 목포의 한 산부인과에서 홀로 낳은 아들을 이틀 뒤 광양시 소재 친정집 뒷산에 묻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식 존재하지 않아 어떤 제도적 보장·보호도 받지 못한 '출생 미신고 아동'의 비극은 전국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출생통보제 제정…병원 밖 출산 조장 우려도
개정 입법의 핵심은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출산 정보를 알리고, 통보받은 지자체가 필요하다면 출생 신고를 직접 하도록 한 것이다.
출산통보제 시행은 1년 뒤인 내년 7월부터다. 의료기관 내 출산 이후 출생 미신고 사례는 원천 차단할 수 있고, 위기 임산부·영아 보호체계 구축의 첫발을 뗐다는 평가다.
반면 일각에선 신원 노출을 꺼리는 '위기 임산부'가 병원 내 산전 진단과 출산을 기피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주변의 눈총 탓에 가족 몰래 '나 홀로 출산'까지 감내하는 청소년 또는 미혼모 등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출산하면 제도 사각지대에 드리운 그늘은 더 짙을 수밖에 없다. 출산 전후 산모와 아이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고, 영아 살해·유기 등 범죄 발생 가능성도 높아진다.
실제 '병원 밖 출산' 추정 영아가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도 있었다. 올해 3월 광주 북구 야산 등산로에선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생후 1개월 남자아이가 숨진 채 발견됐다.
정황상 범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경찰이 광주·전남 내 의료기관 출산 정보, 산모용 약제 처방 기록까지 확인했지만 수사 진척은 없다.
최근 실태 조사에 참여한 한 공무원은 "아이를 책임지지 못한 사례를 보면 보호자 상당수는 사정이 딱하다. 전전긍긍하며 주변에 철저히 숨겼고 스스로에게조차 비밀로 묻었던 과거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후속 입법' 보호출산제는 뜨거운 논쟁
보건복지부는 후속 입법으로 보호출산제 관련 법제화를 서두르고 있다.
보호출산제는 산모가 원하는 경우 개인 신상과 임신 사실을 숨기고 안전하게 병원 내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병원 내 출산을 유도해 산모와 아이 모두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고, 어머니가 양육권을 포기하면 아이에 대한 제도적 지원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여성의원들도 "임신과 출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아기의 생명권과 알 권리를 조화롭게 보호할 수 있다. 절망으로 궁지에 몰린 여성과 아기를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보호출산제 도입을 촉구했다.
양육권을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아라 광주대 아동학과 교수는 "보호출산제를 성급히 추진할 일은 아니다. 부모로부터 아동이 더 쉽게 버려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하고 보완책까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출산 아동 입장에서도 '부모와 자신의 태생에 대한 알 권리'를 뺏는 격이 될 수 있어 이 관점에서도 제도를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위기 임산부'에 대한 실태 파악부터가 먼저라면서 '시기상조'라는 말도 덧붙였다.
"책임 함께 나누고 안전망은 더 두텁게 해야"
최 교수는 "무엇보다도 여성 또는 가정이 출산과 자녀 양육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호출산제 도입 선진국은 모성 보호에 대한 사회적 지원·체계가 공고하다. 우리나라와 사정이 다르다"면서 "임신·출산·육아의 과정을 국가가 함께 책임진다는 인식을 갖고 포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산모가 출산 전후 이런저런 고민을 할 때 국가와 지자체는 무엇을 했느냐. 상담 지원 체계가 작동했다면 경제적 도움을 주고 산모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도 있다. 적어도 입양 절차 지원도 할 수 있다"며 예방 상담·사례 관리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미경 전 광주여성가족재단 대표는 "산모가 자기 생존에 대해 느끼는 불안·혐오가 영아 살해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임신·출산·양육의 모든 과정을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하는 사회가 안타깝다. 태어난 아이를 누가,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혼인 신고한 부부 사이에서 낳은 아이만 인정하는 풍토가 있다. 사회가 인정 못하는 출산을 하면 태어난 아이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산모의 몫이다"며 "사회 구조와 인식부터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미혼모 등 위기 임산부에 대한 생계·심리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와 함께 출생통보제 시행 전 1년여 기간 중 전담조직을 운영, 구체적 보완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wisdom21@newsis.com, leeyj257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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