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맛의 비밀은 식초에 담겨 있다<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30>

노성열 기자 2023. 7. 16.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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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은 단맛·짠맛에 비해 기피하는 맛이지만, 적당하면 ‘藥’
술이 쉬어서 된 게 바로 식초…여름철 살균용으로도 제격
식초 식초(vinegar)는 식용뿐 아니라 살균 청소용으로도 널리 쓰인다. 게티이미지

지난 두 번의 글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두 가지 맛, 짠맛과 단맛의 비밀을 알아보았다. 짠 소금은 뉴런(뇌세포)을 포함한 몸 세포의 전기 발생과 체액 균형을 조절하는 필수 물질이다. 단 설탕은 몸 안의 기본 에너지원 ATP를 만드는 포도당의 분자 덩어리이다.

이에 비해 신맛은 원래 쓴맛과 더불어 동물들이 혐오하는 기피 물질의 맛이다. 시큼한 아세트산의 향과 맛은 미생물이 영양분을 분해하면서 부산물로 내놓는 것으로 그 음식이 상했다는 신호를 준다.

그러나 중용(中庸)의 맛에서 배웠듯, 세상 모든 맛은 정도의 문제이다. 심하면 독이 되지만 적당한 분량은 오히려 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식초는 과일이나 곡물이 적당히 부패하는 자연 발효를 통해 우연히 발견됐을 가능성이 크다. 과일과 곡물에 포함된 당분에 혐기성 효모균이 추가되면 알코올 발효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술에 초산균이 증식해 알코올을 한 번 더 산화시키면 식초가 된다. 이를 양조(釀造) 식초라 한다. 와인 식초, 사과 식초, 현미 식초 등은 주원료를 무엇으로 사용했는가에 따라 분류한 이름이다. 식초의 영어 단어 ‘비니거(vinegar)’는 프랑스어 ‘포도주(vin)’에서 왔다. 술이 시어져 식초가 됐다는 뜻이다. 양조업자들은 담근 술이 식초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기원전 5000년 메소포타미아 남동쪽 바빌로니아 고대 왕국에서는 대추야자로 빚은 식초를 제조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들은 고기와 채소를 식초에 절여 먹거나 물에 타서 정수용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얼굴합성 뉴트리노 생활과학 컷

식초의 주성분인 아세트산(초산)은 초산균(acetobactor)이 만든다. 초산균은 산소 호흡을 하는 호기성 세균으로 에틸알코올을 산화해 아세트산을 생성한다. 술이 산화 반응을 일으키면 아세트 알데히드가 되고 아세트 알데히드를 한번 더 산화시키면 아세트산으로 변한다. 초산균은 섭씨 20~30도에서 자라며 이보다 낮거나 높은 저·고온에선 번식력이 약해진다. 또 초산균이 생존할 수 있는 알코올 농도 역시 5~10% 범위라서 이보다 약하거나 강하면 식초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식초의 효능은 적당한 자극을 통해 입맛을 돋우고 피로 회복 효과를 내는 데 있다. 몸에 쌓인 피로물질 젖산을 분해해 근육통 등 통증을 완화해준다. 여기에 세균을 줄이는 살균 작용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지혜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동의보감에는 “식초가 풍을 치유하고 고기와 생선, 채소의 독을 다스린다”는 구절이 있다. 양반 집안들은 저마다 대대로 전해오는 전통주의 비법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부뚜막 초 두루미(초 단지)까지 조상으로부터 전수돼왔다. 먹다가 남은 술을 초 두루미에 부어 부뚜막 위에 올려놓으면 자연적으로 식초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를 조미료와 상비약으로 활용하는 게 종가 며느리의 살림살이 지혜였다.

초절임 각종 채소와 과일을 식초에 담가 초절임을 만들면 새콤한 맛과 더불어 보존 기간이 크게 늘어나는 효능을 발휘한다. 게티이미지

식초는 스스로 새콤한 맛을 내지만 단맛, 짠맛을 감소시키는 중화제로도 사용된다. 너무 달거나 너무 짤 때 물 대신 식초를 몇 방울 뿌리면 밍밍하지 않으면서도 맛의 조화를 되찾아준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 익은 김치가 없더라도 식초를 조금 넣으면 신 김치 맛이 나는 찌개가 완성된다.

식초는 여름철에 입맛을 잃은 사람에게 식욕을 돋우는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물과 식초를 9대1의 비율로 섞어 마시면 좋다. 서양 요리에는 동양 요리보다 식초와 기름을 섞은 소스나 드레싱을 많이 쓴다. 생선의 비린내를 방지하는데도 쓰인다. 물고기 체내에서 박테리아가 생성하는 트리메틸아민은 효소와 반응해 디메틸아민으로 변하는 데 이것이 암모니아 냄새의 주범이다. 생선을 조리하기 전에 식초를 겉면에 바르거나 식초 물에 담가놓으면 아세트산염과 수소이온이 냄새 분자와 결합해 비린내를 잡아준다.

또 단백질을 응고시켜 살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므로 부서지지 않고 쫄깃한 식감도 보탤 수 있다. 채소도 식초를 곁들이면 더 아삭하게 먹을 수 있다. 채소 속 팩틴이 산성에서 변성돼 단단한 조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생선과 샐러드에 새콤한 레몬즙을 뿌려 먹는 이유이다. 반대로 소고기 힘줄이나 연골 같은 질긴 성분은 식초에 담가두면 부드러워진다. 단단한 콜라겐 단백질이 산성에 풀어져서 그렇다. 갈비나 생선을 재우거나 졸이기 전에 식초를 첨가하면 나중에 먹을 때 뼈가 잘 발라진다. 하지만 볶음요리처럼 열을 가하는 조리 과정에서는 맨 마지막에 식초를 뿌려야 신맛이 사라지지 않는다. 생채, 초무침처럼 상큼한 맛을 내는 드레싱도 마찬가지다. 음식에 간을 할 때는 보통 소금, 식초, 간장의 순으로 넣으면 향기를 잘 보존할 수 있다.

식초는 여름철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살균용으로도 유용하다. 식초가 첨가되면 수소이온 농도(pH)를 4.0 안팎으로 떨어뜨려 부패균, 효모균, 곰팡이의 번식을 막을 수 있다. 냉면을 먹을 때 식초를 조금 넣는 습관은 맛도 맛이지만 혹시 있을 수도 있는 육수 속 식중독균을 살균하는 효과를 낸다.

더운 날 소풍 갈 때 김밥 대신 유부초밥을 싸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덥고 습한 여름 기후를 가진 일본에서 우메보시(매실 초절임), 시메사바(고등어 초절임) 같은 식초 절임 식품이 발달한 것도 이런 과학적 배경이 있다. 채소와 과일을 씻을 때 세제 대신 식초 희석액을 쓰면 세균 수가 100분의 1까지 줄어든다. 생선과 고기를 조리한 도마도 식초 물에 1시간가량 담가두면 세균 번식과 냄새를 방지할 수 있다. 식초는 식물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효능도 발휘한다. 연근·우엉 같은 뿌리식물의 껍질을 벗기면 폴리페놀계 물질이 공기 속 산소와 만나 누렇게 갈변하는데, 식초 물에 담가놓으면 하얀색을 유지할 수 있다. 채소를 데칠 때 식초를 몇 방울 뿌리면 색상이 훨씬 선명해져 시각적인 미감을 살려준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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