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제자리 '산안비'… 건설업계 "요율 올려달라"

정영희 기자 2023. 7. 16.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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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개선 방안(3)] 산안비 제자린데 안전관리 의무만 늘어

[편집자주]지난해 1월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아파트 공사현장 붕괴에 이어 1년 4개월 만인 올 4월 또다시 인천광역시의 한 신축 아파트 주차장 일부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현장은 국내 대형건설업체들이 시공에 참여한 곳이어서 산업 안전관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안전조치 소홀로 산업현장의 인명 피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 1년 반째지만 기업들의 안전관리 능력 제고에도 사고 예방 실효성엔 기여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내년 5~50인 사업장으로 처벌 적용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앞으로 중대재해의 사전 관리방안이 새롭게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안전 관리에 수반되는 비용이 늘면서 각 기업이 부담하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도 증가 추세에 있다./사진=뉴시스
◆기사 게재 순서
(1) 산재 절반 '건설현장', 막을 수도 있었다… 공사 영상 기록 등 대책 부상
(2) '최고안전책임자'(CSO) 선임해도 CEO 기소
(3) 10년째 제자리 '산안비'… 건설업계 "요율 올려달라"

2022년 1월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건설업체의 공사비 증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법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 책임을 기업 본사 경영책임자에게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쉽게 말해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 사망사고 등이 발생하면 대표이사(CEO)가 형사처벌될 가능성이 생긴다. 업계에선 이를 막기 위해 안전 관리를 위해 거액을 투입하고 있지만 이를 메꾸는 데 쓰이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이하 '산안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산안비는 건설 공사현장에서 법정 요율에 따라 발주자가 의무적으로 사업비에 계상해야 하는 비용으로 1988년 처음 도입됐다. 재해율이 높은 건설업의 특성을 고려해 인건비, 안전시설비, 기술지도비 등 안전 관리에 쓰이는 금액을 별도로 마련한다는 취지다. 발주자는 원가계산에 의한 예정가격 작성 시 산안비를 함께 계상한다. '건설업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및 사용기준' 상 공사 종류나 규모에 따라 달라지지만 통상 총 공사비의 2~3%를 차지한다.


인건비부터 안전장비 구매 비용까지… 건설업계 '울상'


최근 업계에선 안전 규제 강화로 인해 사업장에 필요한 산안비는 늘어나는 반면 계상요율엔 변화가 없어 건설업체 부담이 커진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산안비 계상요율은 지난 2013년부터 직접재료비·간접재료비·직접노무비를 합한 대상액의 최대 2.44%로 고정돼 10년째 이어져 왔다. 주택·도로공사는 1.97%, 철도·궤도신설공사 등은 1.66% 수준이다.

산안비 증가의 주 원인으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인한 안전 의무 증대가 꼽힌다. 본사가 각 현장에 여러 안전 조치를 신설하거나 강화할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부분의 발주처는 정해진 계상요율에 딱 맞춰 산안비를 산정한다. 안전에 관한 인력이나 이들을 교육하는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은 모두 시공사 몫이다. 건설현장에서의 사고를 자동으로 방지해 재해율을 낮추는 '스마트' 안전장비가 도입되면 비용은 몇 배로 뛴다. 예컨대 일반 안전조끼는 1∼5만원가량에 구입이 가능하지만 화면 녹화와 위험 감지 기능 등이 탑재된 스마트 안전조끼는 1벌에 100만원대 초반에서 300만원을 넘는 것까지 있다.

지급 자재나 예산 수급 등에 문제가 생기는 등 발주자 책임으로 공사기간이 연장되는 경우에도 통상 산안비는 조정하지 않는다. 해당 기간 만큼 안전관리자는 계속 현장에 상주해야 하고 안전시설을 설치·보강해야 하는데 이 또한 시공사 부담으로 돌아온다.
고용노동부는 건설업계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요율 인상 요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2019년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산안비 증가의 주축으로 작용했다. 종전 22개로 지정돼 있었던 현장 내 위험장소가 법 개정을 통해 현장의 모든 장소와 시공사가 제공·지정한 경우로서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21개 위험장소로 증가했다. 산업안전보건법 보호대상이 근로자에서 일반적으로 임시직이나 일용직에 해당하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로 조정되면서 이에 수반되는 교육비도 늘었다.

특히 안전관리자 수요가 급증하며 인건비가 대폭 올랐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이번 달부터 안전관리자 선임대상 사업이 기존 120억원(토목 150억원)에서 50억원 이상으로 확대된 데 이어 중대재해처벌법 상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지도기관·감리자·발주자·감독기관에서의 안전 관련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며 다수의 건설현장에서 안전관리자 채용에 애를 먹고 있다. 안전관리자의 초봉은 3000만~4000만원 사이로 최근 수요가 늘며 경력 3~4년차에는 7000만∼8000만원까지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안전 인적자원개발위원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안전관리자 채용을 늘리면서 임금·근로환경과 격차가 큰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특히 심화됐다"며 "인건비 상승에 대한 부담으로 경력자보단 신규 인력을 뽑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전문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중소기업의 시간적·재정적 여건이 미흡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산안비 계상요율 조정 못한다는 정부


지난해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303개 중소·중견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80% 이상이 안전관리자 인건비가 오른 탓에 사업장의 산안비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업계에선 산안비 계상요율을 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7월5일 대한건설협회는 산안비 계상요율 상향을 요청하는 건의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협회 관계자는 "고용부는 지난해 안전보건비 계상기준 연구용역을 통해 약 17% 수준의 요율 상향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전달받았다"며 "이를 바탕으로 조속한 요율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고용부는 한 차례 산안비 사용기준을 개정한 바 있다. 위험성 평가 등을 통해 발굴한 품목의 산안비 포함을 허용하고 스마트 안전장비 구매·임대 비용으로의 가능하도록 했지만 업계에선 요율에는 변동이 없어 안전보건비 총액은 줄지 않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9년에는 공사 입찰과정에서 낙찰률을 적용받음으로써 당초 예정가격으로 계상된 금액보다 낙찰률에 따라 감액되는 금액만큼 산안비가 줄어드는 것을 고려해 산안비 부분은 낙찰률에서 배제하도록 했으나 이는 공공공사에 한정된다. 민간공사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산안비 계상기준 현실화에 정부가 나설 때임을 강조한다. 최수영 건산연 실 "법 개정을 통해 계상요율은 최소 비용 산정기준임을 명시, 사업 특성에 따라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을 발주자가 적극 반영해 줄 수 있는 명확한 근거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부는 아직 요율 조정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진행하진 않았다. 산안비 자체가 현장 안전을 위해 책정된 비용이기에 발주처뿐 아니라 시공사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난해 연구용역은 기성 현장에서 현재까지 쓰인 산안비를 바탕으로 초과하는 비용을 예상한 추정치이지 모든 현장에서 정해진 산안비보다 17%씩 더 투입하고 있다는 결과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물가 상승률이 산안비에 미치는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고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발주처와 시공사 양측의 의견을 수렴한 뒤 조정 논의를 개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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