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그럴 리 없어"…산사태 주의보에도 '남의 일'

이율립 2023. 7. 16.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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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에 산사태가 날 정도면 서울은 물바다 되지. 여긴 산사태가 날 리 없어."

서울 지역에 내린 폭우로 송파구에 산사태 주의보가 내려진 이튿날인 이날 오후 찾은 마천동 천마근린공원 일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해 보였다.

이씨는 "우리 딸이 그렇지 않아도 산에 가지 말라고 연락을 줬다"면서도 "이 산을 자주 올랐는데 아무리 봐도 산사태 날 만한 데는 없다"고 '장담'했다.

천마산 자락에 사는 주민들은 전날 발령된 산사태 주의보와 관련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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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전 산사태 주의보 발령 서울 산밑 마을 '안전 불감증'
산사태에 초토화된 마을 (예천=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15일 오후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한 마을이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초토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마을에서 주택 5가구가 매몰돼 4명이 사망하고 1명을 수색 중이다. 2023.7.15 psik@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율립 기자 = "천마산에 산사태가 날 정도면 서울은 물바다 되지. 여긴 산사태가 날 리 없어."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마천동 천마산 자락에서 밭일을 하던 이모(75)씨는 자신있게 단언했다.

서울 지역에 내린 폭우로 송파구에 산사태 주의보가 내려진 이튿날인 이날 오후 찾은 마천동 천마근린공원 일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해 보였다.

송파구는 11일 오후 5시50분께 산사태 주의보를 발령하면서 '마천동(천마공원) 인근 지역 방문을 자제'하라는 재난문자를 보냈다. 송파구의 일강수량은 103.0㎜에 달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다음 날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주의보가 발령됐는지 몰랐다거나 산사태가 날 리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 딸이 그렇지 않아도 산에 가지 말라고 연락을 줬다"면서도 "이 산을 자주 올랐는데 아무리 봐도 산사태 날 만한 데는 없다"고 '장담'했다.

천마근린공원의 벤치에서 만난 주민 A(70)씨는 "산사태 주의보가 내려진 줄 몰랐다"며 "여기는 그렇게 위험한 데가 없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다른 80대 주민은 "천마산에는 바위가 많아서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마산 곳곳에 붙은 '산사태, 매일 보는 관심과 대비가 안전의 최선'이라고 적힌 경고 현수막이 무색해 보였다.

서울 송파구 천마산에 붙은 산사태 유의 현수막 [촬영 이율립]

이날 낮에 찾은 서초구 우면산 일대도 주민들의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 당시 사망사고가 났던 방배동의 한 아파트 주민 김모(82)씨는 "그때 산이 무너지면서 아파트 4층까지 물이 찼다"며 "물이 막 밀려 들어오는데 굉장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그동안 공사를 많이 했으니 비가 어지간히 와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면산에서 내려오던 한 서초구 주민은 "(산사태) 우려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특별히 걱정되는 부분은 없다"고 했다.

우면산에는 장마철을 맞아 산사태 예방 공사가 계속되고 있었다.

서울 서초구 우면산의 산사태 예방 공사 현장 [촬영 이율립]

산사태를 걱정하는 주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천마산 자락에 사는 주민들은 전날 발령된 산사태 주의보와 관련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천마공영주차장 인근 경로당 앞에서 다른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던 최희숙(59)씨는 "집이 바로 산 밑이라 무서웠다"며 "이 근처에 오래된 집들이 많은데 윗집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줄줄이 무너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어 "비가 많이 와서 딸에게 빨리 오라고 연락했는데 생각해 보니 산사태가 날 수 있으면 차라리 안 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며 "괜히 왔다가 무너지면 어떡하냐"고 덧붙였다.

천마산과 맞닿은 한 빌라에 사는 박금임(78)씨는 "빌라 뒤로 큰 나무들이 많다"며 "여태까지 산사태 걱정은 안 하고 살았는데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빌라 뒤편의 천마산으로 직접 올라가서 나무들을 가리키면서 "비가 많이 온다는데 걱정"이라고 반복해 말했다.

산사태로 초토화된 마을 (예천=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15일 오후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한 마을이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초토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마을에서 주택 5가구가 매몰돼 4명이 사망하고 1명을 수색 중이다. 2023.7.15 psik@yna.co.kr

이창우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산사태연구과 과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어디든 안전한 곳은 없다"며 "재해는 항상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도심은 안전해 보이더라도 산사태가 발생하면 인가에 직접적인 피해를 미칠 수 있다"며 "이를 감안해 안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과장은 "경사면에서 물이 솟아오르거나 반대로 물이 잘 흐르던 곳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든지, 갑자기 흙탕물이 밀려 내려오는 등 산사태 전조 증상을 잘 살펴야 한다"며 "산사태 주의보가 발령될 때부터 대피할 마음을 먹고 움직이는 게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2yulri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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