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發 '시럽급여' 논란…실업이 죄입니까?[노동:판]

CBS노컷뉴스 김정록 기자,CBS노컷뉴스 민소운 기자 2023. 7. 1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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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달콤한 보너스 '시럽급여'…실업급여 하한액 낮추자"
노동자 "실업급여 덕분에 창업 성공했다"
해외여행? 명품쇼핑? "실업급여 금액 모르는 것 아니냐"
전문가 "휴식취하며 회복해야 의욕도 고취…정반대로 가"
편집자 주
우리는 일합니다.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오늘도 일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쉼 없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터를 찾은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판 깔아봅니다.
연합뉴스

"실업급여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지난 2020년 6개월 동안 매달 180만 원씩 실업급여를 받은 이모(28)씨는 실업급여를 이렇게 정의했다. 이씨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창업을 시도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자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했던 활동이 지금 일에 큰 도움이 됐다"며 "어떻게 해야 제품을 팔 수 있을지 등 많은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을 보면 실업급여를 잘 쓰고 있는 청년 노동자도 많다"며 "물론 악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재취업을 하는 등 좋은 사례에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최근 정부와 여당이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실업급여를 받는 실업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2일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 일해서 버는 돈보다 많아지면서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공청회에 참석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 조현주씨는 "퇴직하면 퇴사처리가 되기 전에 실업급여 신청하러 센터에 방문한다. 웃으면서 방문을 한다. 어두운 얼굴로 오시는 분은 드물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간 근무하고 갑자기 실업을 당해서 고용보험이 생긴 목적에 맞는 남자분들 같은 경우 어두운 표정으로 오신다"며 "여자분들, 젊은 청년들,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옵니다. 실업급여 받는 도중 해외여행 가고 자기 돈으로 내가 일했을 때 살 수 없었던 명품 선글라스를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일부 수급자들을 비난했다.

실업급여를 받아본 노동자들은 '실업급여를 수령하는 사람은 울상이어야 하느냐'며 당정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웹툰 개발자로 일하는 김모(30)씨는 3개월 전까지 실업급여를 받았다. 김씨는 실업급여가 '구명조끼' 같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워낙 열악한 회사에서 일하다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고, 더 있어봤자 내 미래에 도움이 안될 것 같아서 나갔다"며 "실업급여가 있으니 믿고 퇴사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일자리가 잘 맞지 않으면 (여유를 갖고) 다른 일자리를 고민하라는 취지로 (실업급여를) 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내가 고용보험료 내고 받아…공짜 아닌데 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3 서울우먼업 페어를 찾은 참관객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실업급여를 받아본 노동자들은 실업급여가 '시혜'라는 분위기에 반감을 보였다. 김씨는 "내가 월급에서 쪼개서 고용보험 냈던 것을 되돌려 받는 것"이라며 "그마저도 2주에 한 번씩 취업하는 노력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왜 공짜로 주는 듯이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국민연금 본인부담금의 25%,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의 50%를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갈 때 위축감을 느꼈다고 호소했다.

지난 5월까지 4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았던 고모(31)씨는 "처음 실업급여를 신청할 때 고용노동부에 직접 방문을 해야 하는데, 괜히 주눅 들고 겁이 나더라"고 말했다.

'여성·청년 실업자는 실업급여를 받아 해외여행이나 명품 쇼핑을 한다'는 당정의 발언을 비웃기도 했다.

고씨는 "실업급여 금액을 모르거나 샤넬 선글라스 가격을 모르고 하는 소리 같다"며 "설령 해외여행을 가도 '이제껏 일한 당신 떠나라'는 의미의 회복 기간으로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실업급여 악용 사례'를 내세우는 당정은 월 180여만 원 수준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30일 기준 하한액은 184만 7040원, 상한액은 198만 원이다. 최저임금 노동자 세후 월 근로소득 179만 9800원보다 많아 재취업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실업자가 죄인? "휴식하며 회복해야 새로운 도전도"


연합뉴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현 실업급여가 부족한 점을 보강해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노무법인 노동을잇다 김요한 노무사는 당정의 접근에 대해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실업급여 지급 사유가 맞는데도 받지 못하는 것"이라며 "노동자를 내보내면서 회사가 자발적 사직으로 허위신고하는 사례들이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해고하지 않거나 비정규직 고용을 하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줄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귀천 교수는 "'실업급여를 받아서 명품을 사고 해외여행을 가는 몰지각한 여성‧청년 실업자'라는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을 통해 여성, 청년실업자를 실업급여를 축내는 도덕적으로 문제있는 집단처럼 보이도록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실업급여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는지에 관한 제한은 없다. 무엇을 사건 개인에게 맡겨진 문제"라며 "해외여행도 갈 수 있지만 일정 주기마다 고용센터에 출석해야하기 때문에 이 기간을 피해서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김성희 소장은 "실업자라고 매일 직업만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며 "휴식을 취하면서 정신 건강을 회복해야 무언가 새로운 (취업) 의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업자가 죄인이 아니다. 실업급여를 받는 실업자는 비자발적 실업자로 '피해자'일 수 있다"며 "(마치 죄인처럼) 낙인을 찍는 발상은 굉장히 구태의연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2008년 이후로 유연성만 주장하는 국제기구가 없고, '유연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안정성이 뒷받침돼야 노동시장의 이동도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는데, 한국은 이 안정성이 굉장히 떨어진다. 실업급여 보장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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