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법안 돋보기] 연금개혁 ‘골든타임’ 끝나가는데… 與野, 변죽만 울리는 법안 봇물
아직 구체적 방향 없는 국회 연금특위
與野, 연금개혁 핵심보다 ‘변두리’ 중심 법안 발의
전문가들 “연금 주변 법안, 연금개혁 미루기의 산물… 핵심 관통해야 실효성 있어”
국회는 1년 넘게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과제 중 하나인 연금개혁을 놓고 논의했지만, 뚜렷한 방향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전반적 틀을 개정하기 위한 숙의 과정에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낸 것보다 더 많이 받는’ 현행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의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을 위한 정치적 셈법에 따라 미루기에 돌입한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는 핵심인 ‘연금개혁’보다 퇴직·개인연금 등 공적연금이 아닌 변죽만 울리는 법안만 내놓고 있다. 이에 내년 총선 전 연금개혁 ‘골든타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핵심을 관통하지 못하는 법안은 근본적인 개혁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는 4대 공적연금(국민연금·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과 기초연금 등 ‘연금개혁’ 방안과 관련 법률안을 심사·처리하기 위해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내는 돈은 적은데 받는 돈’이 많은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연금 고갈 시기가 점차 빨라져 결국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운다는 비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지난해 7월 여야 합의로 구성한 연금특위는 지난 4월 국회 본회의에서 활동 기한 연장을 의결하면서 오는 10월 31일까지 활동할 예정이다.
당초 연금특위는 올해 1월 31일까지 민간자문위원회로부터 국민연금 개혁 권고안을 제출받아 여론 수렴 등을 거쳐 최종 개혁안을 도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민간자문위 차원의 합의가 불발되면서 모수개혁이 아닌 구조개혁으로 방향을 틀었다. 공무원연금·군인연금 등 직역 연금과 기초연금 등 노후보장 체계 전반의 구조개혁을 논의하겠다는 의미다.
현재 여야는 국민 모두에게 영향이 가는 만큼 국회에서 합의안을 반드시 도출하겠다는 공감대는 형성했지만,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둘러싼 간극을 좁히지 못한 상태다. ‘더 내고 덜 받는’ 구조 개편이 핵심인 연금개혁을 내년 총선을 앞두고 거론하기에는 여야 모두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당장 내년 총선 표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결국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한 보험료율 인상·연금 수급 구조 개편 등 구체적인 대책은 여전히 마땅히 없다는 게 현주소다.
연금개혁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지난 4월 16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3대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도, 미뤄서도 안 된다”며 “개혁은 언제나 이권 카르텔의 저항에 직면하지만,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고 한 바 있다. 윤 정부의 이권 카르텔 범위에 연금 제도도 포함되는 것을 시사한다.
다만 윤 정부도 보험료율 인상엔 민감한 편이다. 이는 지난 1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5%로 인상하는 방향으로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조 장관은 “정부안이 아니다”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는 오는 10월까지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연금특위 활동이 끝나면서 정부 차원에서 연금개혁에 나설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 與野, 연금개혁 ‘눈치싸움’ 중… 변두리 중심에 마구잡이식 연금법안만 발의
국회는 ‘연금’을 키워드로 한 법안을 하나씩 발의하는 추세다. 다만 연금개혁을 관통하는 입법 혹은 개정안은 아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퇴직연금의 수령 원칙을 ‘일시금’이 아닌 ‘평생 수령’하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가입자의 부담금 등을 재정지원하도록 ‘저소득 근로자 매칭지원제도’도 함께 신설할 계획이다.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4월 7일 대표 발의한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도 그렇다. 현행법의 연금소득 분리과세 기준을 연 2400만원으로 상향하겠다는 게 이 법안의 핵심이다. 현행법은 사적연금 연간수령액 1200만원을 기준으로 이하면 분리과세로 낮은 세율인 3.5~5.5%를 적용하고, 초과할 경우 다른 소득과 합산한 6.6~49.5%인 종합과세나 분리과세 16.5%를 적용한다. 두 법안 모두 노후 재원 형성과 노후 보장을 위한 연금 기능을 강화한다는 취지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연금개혁의 핵심이 공적연금과는 거리가 멀다.
야당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일 대표 발의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이다. 해당 개정안은 지난 2021년 개정되면서 도입된 ‘사전지정운용방법(디폴트 옵션)’ 의무화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시행된 것을 놓고 시행 기간을 연장하겠다는 내용이 전부다. 국민연금 핵심을 관통하는 개정안보다는 ‘연금’ 이름을 단 주변부 법안 발의만 할 뿐, 연금개혁에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다.
이외에 여야는 기초연금 개정안도 잇따라 발의된 상태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과 김경협 민주당 의원, 김남국 무소속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기초연금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공적연금과 기초연금 개혁의 방향성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상황에서 마구잡이식으로 만들어지는 법들은 계류만 된 상태다. 제대로 법적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게 현 실정이다.
◇ 전문가 “연금개혁 변두리 법안, 부수적인 것에 불과… 총선 앞두고 개혁은 ‘글쎄’”
이에 전문가들은 답보상태에 머문 연금개혁에 연금 관련 개정안이 작은 동력이 될 순 있지만, 개혁의 본질적인 동력은 되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당장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연금개혁 움직임 자체가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사실상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은 끝났기 때문이다. 연금개혁의 핵심은 더 내고 덜 받는 것이다. 용감하게 핵심을 관통하는 여야 합의나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지기 전까지 이른바 ‘변두리 법안’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오종헌 연금행동 사무국장은 “1년 넘게 이어진 연금개혁에 국민적 피로감이 누적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연금 관련법 발의가 앞으로 정부가 연금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줄 순 있다”면서도 “당장 총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기엔 부담도 있고, 그때까지 특위 차원의 합의도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가 발의한 법안들이 작은 동력은 돼도, 근본적인 연금개혁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며 “국민들이 궁금한 건 핵심인 보험료율에 대한 수치를 밝힌다거나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등인데, 총선 전에는 정부 차원에서도 해당 활동을 극도로 자제할 것”이라고 했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수는 “지지부진한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지고 국민적 피로감은 더 올라간 상황에서 개혁의 동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총선을 앞두고 변화를 도모하는 건 독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국회도, 정부도 연금개혁을 총선 이후로 미룰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다른 개혁처럼 무작정 밀어붙였다가는 프랑스 연금개혁처럼 탈이 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연금을 둘러싼 모두의 입장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며 “총선 전에 굳이 총대를 메면서까지 이번 국회에서 연금개혁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다만 총선 이후 상황은 지켜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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