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이해' 사이: 만남에 대처하는 시인의 자세[PADO]
가끔 누군가가 시를 전공하게 된 이유를 물어오면, '짧아서'라고 대답하곤 한다. 사실 시가 반드시 짧기만 한 것은 아니고 책 한 권을 넘는 길이의 시도 가끔 있지만, 시는 소설 같은 다른 장르의 작품에 비해서는 대체로 짧고 간명하다. 그래서 시를 찬찬히 읽는 일은 몇 줄 안 되는 텍스트에 성기게 담긴 의미가 어느새 터져 나오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경험일 때가 많다. 듬성듬성한 언어 사이의 여백을 채우며 시의 내용을 구성해 갈 때, 독자는 시인과 더불어 일종의 창작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좋은 시는 우리를 빨아들여 그 안에서 흩뿌려진 단어들을 들이쉬고 새롭게 의미화된 날숨을 쉬면서 텍스트와 함께 호흡하도록 이끌어 준다.
리오 코테즈(Rio Cortez)가 2022년에 발표한 시집인 '황금 도끼'(Golden Ax)를 쭉 넘기면서 읽다가 한 편의 짧은 시에 꽂혔다. 코테즈는 이 시집에서 자신의 조상들이 루이지애나를 떠나 서부 개척에 합류한 과정을 서술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현재의 인종 문제에 얽혀 있는 불평등과 부정의를 과거와 견주어 파헤치는 코테즈의 시들은 흥미진진하고 참신하다. 유타로 향하는 조상들의 짐마차를 우주선에 비유하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역사가 "납치"(abduction)로부터 시작되었음을 고발하기도 하고, '프레이저'(Frasier) 같은 유명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흑인 여성이면 어떨지 상상해 보기도 한다. 이런 재기발랄한 시들 사이에서 '밤 운전'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짧은 시는 얼핏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짧은 텍스트 속에 담긴 시인의 경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시는 독자의 공감을 제법 힘있게 끌어내어 다섯 줄밖에 안 되는 길이에도 불구하고 꽤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풀이 우거진 웅덩이 속에 하얀 구름처럼 보이는 것은 물뿌리개다.
나는 리트리버를 산책시키는 여인을 새끼사슴 두 마리로 착각한다.
보겠지. 가까이 올수록 실망하지. 그냥 놓아 버릴 준비가 채 되지 않았다.
이 시에서 시인은 자동차를 운전해 달리면서 유타의 전원적인 밤 풍경을 관찰한다. 캄캄한 밤에 뿌옇게 보이는 사물들과 사람들은 멀리서 바라볼 때 전혀 다른 것으로 짐작된다. "쓰러진 자작나무"가 "메추라기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되는가 하면, "물뿌리개"가 작동하는 모습은 "하얀 구름"이 아닐까 상상되는 것이다. 또, 개와 함께 산책하는 여인은 멀리서 보았을 때 "새끼사슴 두 마리"로 착각된다. 그러나 막상 밤을 달려 이 사물들과 사람들에 근접해 가면, 시인은 결국 자신의 상상력이 실패했음을 인지하기에 이른다. 분명하지 않은 시각적 정보를 조합하여 시인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동물"과 "날씨"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허구에 불과하다. 시인에게 밤길을 운전해 가는 시간은 인식의 과정에서 언제나 특정한 방향의 상상력이 동원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상상력은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자주 실패에 부딪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만든다.
이 시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은 4행과 5행에 걸쳐 일어난다. "아마 그들은 우리를 그런 식으로 보겠지"라는 시인의 독백은 순식간에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자연스럽게 내재화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상상력이 실패하는 것은 그저 일상적인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거꾸로 내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잘못 인식된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더 나아가, 내가 어떤 피부색을 가졌기 때문에, 혹은 내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오해에 노출되어야 한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 것인가? 이런 오해는 반드시 부정적인 경우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시는 멀리서 타인이나 사물을 바라보고 낭만화된 착각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위험할 뿐 아니라 심지어 폭력적일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가까이 올수록 실망"하게 되는 자의적인 기대를 함부로 가지는 것, 그것 역시 나의 외부에 있는 어떤 존재와 제대로 된 만남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계해야만 할 장애물인 셈이다.
시인은 시의 끝에서 이런 상황을 "그냥 놓아 버릴 준비가 채 되지 않았다"면서 오해와 실망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서 짧게 끝나 버린 이 시는 이 문제의 해법에 대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해와 착각에서 벗어나 타인을 이해하고 수긍하는 데 최대한 가까이 가는 길은 어쩌면 "밤 운전"이라는 이 시의 제목에 이미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밤은 낮보다 제대로 된 인식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이 "밤"의 컴컴함은 반드시 외적인 조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편견이나 자의식 등 내면적인 어두움을 구성하는 요소들이야말로 우리가 누군가를, 또 무엇인가를 정확히 바라보고 그에 한 발짝 더 다가서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서, 언제나 "운전"하듯 달리고 있는 일상의 속도 역시 오해와 착각에 큰 몫을 한다. 스마트폰을 몇 번 터치하면 바로 해답이 나온다고 믿게 된 세상에서 삶의 가속 페달로부터 발을 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시는 그래도 때로는 브레이크를 밟아 보라고, 아니 때로는 아예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가 보라고 권한다. 자동차 밖의 세상으로 나아가다 보면, 갑작스러운 비를 맞을 수도 있고 오르막 내리막 평탄치 못한 길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또 네가 나에게, 다가가고 다가오는 일은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이렇게 약간의 모험을 감행해야 시작될 수 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과업이다.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그 곁으로 가서 잠시 멈추어 몰입의 경험을 가져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해와 실망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떤 타인과도, 어떤 사물과도, 또 어떤 사안과도 끝없이 겉도는 만남만을 되풀이하게 되지는 않을까? 관계를 확장하기 위해, 그리고 익숙한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좀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만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점검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What look like white clouds in a grassy basin, sprinklers.
I mistake the woman walking her retriever for a pair of fawns.
that way. Disappointed, the closer they get. Not quite ready to let it go.
조희정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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