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기자의 시선] 위기의 지역 신문, 문을 두드리는 청년들

김명래 경인일보 인천본사 기획취재팀장 2023. 7. 1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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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명래 경인일보 인천본사 기획취재팀장]

“충격이었습니다. 그럼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건 묘지에서 하는 운동회 같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묘지에서 하는 운동회. 장일호 시사인 기자의 에세이 '슬픔의 방문'(낮은산)에서 읽은 구절이다. 일본 종이 장인들 이야기를 쓴 오다이라 가즈에의 '종이의 신 이야기'(책읽는수요일)에 나온 것을 재인용한 문구로, 염색 공예 작가 유노키 사미로 씨가 대학생 시절 '그림은 죽었다'는 주위 말을 듣고 떠올린 장면이라고 한다. '그림' 대신 '종이 신문은 죽었다'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다.

종이 신문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특별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그 위기를 신문사들이 자초한 사실이 안타깝다. 포털에 뉴스 콘텐츠를 넘기면서 언론 소비자는 사라지고 수용자만 남게 됐다. 종이 신문은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흐름 속에서 구독자를 기반으로 한 수익 모델 구축이 아닌 영향력 확대를 통한 광고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위기를 고착화시켰다. 그 진원지는 서울(중앙)이었지만 균열은 지역(변방)에서부터 오래 전 시작됐다.

같은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로 일하는 동료는 지역 신문 현실이 텅 빈 객석을 마주한 연극 무대와 같다고 생각한다. 긴 시간 기량을 갈고 닦아 무대를 올려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찾는 이도 많지 않다. 그나마 존재하는 공연 수요층 상당수는 거주 지역의 공연장이 아닌 서울로 향한다.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기사 작성, 취재. 사진=gettyimagesbank

지역 신문 처지도 그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지역 주민 삶에 영향을 미칠 만한 뉴스를 빠르고 정확하게 보도한다고 해도 차별화되지 않고 반향이 작은 편이다. 뉴스 유통 플랫폼은 포털 영향력 아래 놓여 있고, 언론 수용자 다수는 지역 뉴스에 관심이 적다. 이런 이유로 지역 신문의 유능한 기자들이 전국 단위 매체의 지역 주재 기자로 이직하기도 하는데, 정작 옮긴 곳에서 쓴 지역 뉴스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역 신문의 주요 수입원은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정부 광고다. 자치단체장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광고 탄압'이 가능한 조건이고, 실제 광고 예산을 무기 삼아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지역 신문 여러 곳이 수습 기자 공개 채용을 진행 중이다. 지원자 수가 이전보다 줄고 있지만 아직 많은 청년이 지역 신문 기자에 도전한다. 공개 채용의 문턱을 넘기 위해 상당 기간 준비한 예비 언론인이 지역 신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역신문이 악조건에 놓여 있지만 아직 절망적인 상황까지 내몰린 것은 아닌 것이다.

17년 전 경인일보 채용 임원 면접을 하기 전 '사전 면접'에서 받은 질문과 거기서 이어진 짧은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왜 지역 신문 기자가 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이른바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가능하면 서울에 있는 신문사에 합격하기를 원했고 지역 신문은 부차적 목표였기 때문이다. 면접관도 그런 마음을 짐작했을 터인데 면접 대상자가 지역 신문 기자로 '정착'할 의지가 있는 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면접관은 본인이 경험한 지역 신문 기자를 짧게 설명했다. “(열악한 여건이지만) 지역 기자에게 자존심마저 없다면 사이비가 된다.” 겉으로는 기자처럼 보이지만 기자가 아닌 사이비가 되지 않으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에서는 그렇다.

경인일보는 수습 기자 면접을 노사가 함께 진행한다. 채용의 공정성을 위한 노사 합의로 만들어진 제도이기도 하지만, 침체 국면인 지역 신문에 함께 몸담으면서 활로를 뚫어 줄 청년 기자를 찾는 일에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매진한다.

기자가 되고자 면접관 앞에 선 청년들은 공통적으로 기자를 갈구해 왔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여 왔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또 지역 신문 본연의 역할은 어때야 하는지 고민한 결과를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지역 신문 대부분은 인력난을 호소한다. 하지만 기자의 직업 윤리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을 동료로 맞는 일은 단순히 인력난을 해소해 줄 후배를 받아들이는 것 이상의 의미다.

▲ 신문. 사진=gettyimagesbank

이번에 수습 기자 면접을 화제로 최근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면접관으로 참여한 선배는 “기자답다는 게 무엇인지 항상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했고, 다른 후배는 과거 입사 면접 희망 부서를 묻는 질문에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사회부에 가고 싶다”라고 한 말을 떠올리면서 “아주, 아주 조금은 세상을 바꾼 것 같다”라고 말했다.

만약 지역 신문 위기 극복에 필요한 기초 덕목이 있다면 그건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다. 포털이 국내 뉴스 유통을 장악한 현실만 탓하며 수수방관하지 말고, 독자(언론 소비자)와의 접점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지역 콘텐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역량을 쏟아붓고, 지역 신문이 동네를 지금보다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 지역 신문의 위기 속에서도 회복탄력성을 갖추고 분투하는 기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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