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사불벌죄 없앴지만… 보복 범죄 등 피해자 보호 ‘허술’ [이슈 속으로]

박지원 2023. 7. 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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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스토킹처벌법
‘정당한 이유 없이’… 스토킹의 정의 협소
해외에선 ‘반복적 괴롭힘’ 행위에 중점
“법원 업무 과다”… 피해자보호명령 제외
미성년자 대상 가중처벌도 빠져 ‘한계’
“스토커에 위치 추적장치 부착은 성과
가해자 접근보다 피해자 보호 빨라야”
스토킹을 두고 일각에서는 ‘가해자든 피해자든 둘 중 한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범죄’라고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그만큼 살인 등 중대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위험한 범죄라는 뜻이다. 법안이 처음 발의되고 22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한 국회는 2021년 가까스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나 당시 어렵게 탄생한 법안에는 구멍이 많았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후인 지난해 9월 발생한 이른바 ‘신당역 살인 사건’은 그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법이 만들어졌지만 가해자의 보복을 막지 못했고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스토킹 처벌법은 제정 후 불과 1년반 만에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거쳤다. 국회는 지난달 21일 본회의에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가장 큰 독소조항으로 꼽혀온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 성과가 많지만,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스토킹 처벌법이 진짜 실효성 있는 법이 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의사불벌죄 조항 없앴지만…

이번 개정안 통과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부분은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있어야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던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폐지된 점이다. 반의사불벌죄로 인해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고자 피해자에게 접근해 협박하거나 위협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해당 조항은 법 제정 때부터 문제 조항으로 비판받아 왔다.

개정안은 또 스토킹의 정의 범주를 넓히기도 했다. 그간 스토킹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온라인상의 지속적 괴롭힘이나 협박 등의 행위도 스토킹 범죄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고, 스토킹 피해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보호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게 됐다. 법원이 피해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판결 전이라도 가해자에게 위치 추적 등이 가능한 전자장치 부착 등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잠정조치 기간도 현행 2개월에서 3개월로 연장된다.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최장 기간이 6개월에서 9개월로 늘어난 셈이다.
지난 6월 21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열린 본회에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여전히 협소한 ‘스토킹’ 정의

그러나 이 같은 대대적인 개선에도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 실효성 부족이 우려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법안이 인정하는 스토킹의 범위가 아직 협소해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피해자와 동거하지도 않고 가족도 아니지만 가족보다 더 친밀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가족 없이 보육원에서 자라온 경우 가족과 다름없는 친구가 있다거나 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며 “그런데 법이 ‘동거인과 가족’으로만 규정하니 이런 사람들이 가해자의 표적이 되는 경우 보호하지 못하는 등의 공백이 있다”고 말했다.

스토킹의 근본 정의가 협소한 문제도 여전하다. 허 조사관은 “법에는 아직도 스토킹 범죄가 ‘정당한 이유 없이’ 행해져야만 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이로 인해 예를 들어, 이혼소송 중인 부부 사이에서 한쪽이 상대에게 연락할 때 사실은 스토킹인데도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부부였으니까 이혼을 앞두고 이유가 있어 연락하는 것 아니냐고 판단하는 빌미가 될 수 있는 등의 문제가 있다”며 “해외 스토킹 처벌법을 살펴보면 괴롭히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가에 주안점을 두지 이런 조건을 걸어두는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보호명령제도 왜 빠졌나

피해자보호명령제도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이번 개정의 한계로 꼽힌다. 피해자보호명령제도는 판사가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의 청구에 따른 결정으로 스토킹 행위자에게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를 내리는 ‘피해자보호명령’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수사기관의 신청 없이도 법원을 통해 피해자가 직접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관련 발의안 32건을 반영해 마련된 이번 개정안에는 초창기 피해자보호명령제도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이미 잠정조치라는 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활용도가 떨어질 수 있고, 법원의 업무가 늘어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해당 내용은 빠지게 됐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보호 강화 측면에서 피해자보호명령제도 도입은 필요한 조치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개정안 통과 후 “잠정조치 기간을 더 확대하는 한편 이번 개정안에서 누락된 피해자보호명령을 도입해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이 놓친 잠정조치가 필요한 사건에 대한 피해자의 직접청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허 입법조사관도 “스토킹 범죄 피해자 보호를 좀 더 중대한 사안으로 바라보지 않은 것 아닌가 싶다”고 평가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최장 9개월로 늘어난 잠정조치도 안전을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어 보다 강화된 피해자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022년 11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참석 의원들이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성년자 대상 가중처벌 등도 빠져

개정안에는 미성년자에 대한 스토킹을 가중처벌하거나 반려동물에 대한 위해도 스토킹 행위로 인정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 대안반영 폐기된 일부 법안에는 포함됐던 내용이다. 이들 조항의 경우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논의가 활발하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여러 국가가 스토킹 처벌법에 포함하고 있다.

독일, 미국 등 일부 국가의 경우 미성년자에 대한 스토킹 범죄는 가중처벌 사유가 된다. 미국에서는 피해자가 18세 미만일 경우 5년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독일은 피해자가 16세 미만 미성년자라면 가중처벌 사유에 해당해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미국에서는 피해자 본인과 직계가족, 배우자뿐 아니라 반려동물에게 해를 끼쳤을 경우에도 스토킹 범죄로 인정된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소중히 여기는 반려동물에 해를 가하거나 몰래 데려가 협박의 도구로 삼는 등의 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데 따른 것이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앞으로 이 같은 스토킹 유형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로 인해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으나 이번 개정안에는 결국 빠지게 됐다.
◆“국가가 가해자보다 빨라야”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 통과는 스토킹 처벌법 개정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스토킹의 정의를 지금보다 넓게 해석하고 성립 조건을 완화하며 피해 인정 범위를 넓혀가는 논의와 피해자 보호 강화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피해자 보호가 무엇보다 우선적인 문제”라며 “스토킹 범죄자들에게도 위치 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있게 한 것은 이번 개정안에서 아주 잘된 점이지만 중요한 건 디테일이다. 스토커가 피해자와 가족들의 집이나 직장 등 특정 장소에 접근하면 경보가 울리는 것만으로 피해자 보호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의 위치도 국가가 알 수 있어야 피해자가 어딜 가든 마음 편히 돌아다니더라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러 가는 시간보다 국가가 피해자를 보호하러 가는 시간이 짧을 수 있다”며 “국가가 잘 지켜보며 알아서 피해자의 주변에서 가해자를 바깥으로 밀어내주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권인숙 의원 “묻지마 범죄 속출… 입법이 현실 못 따라가”

“입법이 현실을 잘 못 따라간다는 건 중요한 지적입니다. 극단적 사건이 벌어지고 사회에서 논란이 돼야만 변화가 이뤄지는 측면이 있으니 항상 아쉬움이 있습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다. 지난해 11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권 의원은 대안 반영된 개정안의 상임위 논의과정에서도 치열하게 목소리를 낸 의원 중 한 명이다.

권 의원은 스토킹 처벌법과 같은 약자 대상 범죄의 입법 과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도 저를 포함해 필요성을 열심히 호소한 일부가 있었기에 온라인 스토킹 개념이 포함되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토킹이라는 개념 자체가 워낙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저항을 많이 했던 개념이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가 친밀한 관계에서의 집착과 소유·통제 욕구 등을 거칠게 표현하는 것에 관대해 왔던 걸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토킹 처벌법의 남은 입법 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권 의원은 “최근 이른바 ‘묻지 마 범죄’로 불리는 ‘이상 동기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데 그것을 분류하는 시스템조차 아직 안 만들어져 있다”며 “이상 동기 범죄의 경우 혐오 등을 기저에 깔고 있기 때문에 잘 추적해야 하고 대응을 고민해야 하는데 아직은 이에 대한 정리나 통계 기준조차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의 극단적인 형태가 폭력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도 정부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식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을 외면하는 태도들이 이런 범죄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정부가 평등하지 못한 여성의 삶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사실은 폭력의 근원적 부분들을 해결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주는 거라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단순히 한 유형의 폭력에 대응하느냐 마느냐 하는 차원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대응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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