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사불벌죄 없앴지만… 보복 범죄 등 피해자 보호 ‘허술’ [이슈 속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스토킹의 정의 협소
해외에선 ‘반복적 괴롭힘’ 행위에 중점
“법원 업무 과다”… 피해자보호명령 제외
미성년자 대상 가중처벌도 빠져 ‘한계’
“스토커에 위치 추적장치 부착은 성과
가해자 접근보다 피해자 보호 빨라야”
이번 개정안 통과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부분은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있어야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던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폐지된 점이다. 반의사불벌죄로 인해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고자 피해자에게 접근해 협박하거나 위협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해당 조항은 법 제정 때부터 문제 조항으로 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이 같은 대대적인 개선에도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 실효성 부족이 우려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법안이 인정하는 스토킹의 범위가 아직 협소해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피해자와 동거하지도 않고 가족도 아니지만 가족보다 더 친밀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가족 없이 보육원에서 자라온 경우 가족과 다름없는 친구가 있다거나 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며 “그런데 법이 ‘동거인과 가족’으로만 규정하니 이런 사람들이 가해자의 표적이 되는 경우 보호하지 못하는 등의 공백이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보호명령제도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이번 개정의 한계로 꼽힌다. 피해자보호명령제도는 판사가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의 청구에 따른 결정으로 스토킹 행위자에게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를 내리는 ‘피해자보호명령’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수사기관의 신청 없이도 법원을 통해 피해자가 직접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관련 발의안 32건을 반영해 마련된 이번 개정안에는 초창기 피해자보호명령제도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이미 잠정조치라는 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활용도가 떨어질 수 있고, 법원의 업무가 늘어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해당 내용은 빠지게 됐다.
개정안에는 미성년자에 대한 스토킹을 가중처벌하거나 반려동물에 대한 위해도 스토킹 행위로 인정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 대안반영 폐기된 일부 법안에는 포함됐던 내용이다. 이들 조항의 경우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논의가 활발하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여러 국가가 스토킹 처벌법에 포함하고 있다.
독일, 미국 등 일부 국가의 경우 미성년자에 대한 스토킹 범죄는 가중처벌 사유가 된다. 미국에서는 피해자가 18세 미만일 경우 5년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독일은 피해자가 16세 미만 미성년자라면 가중처벌 사유에 해당해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 통과는 스토킹 처벌법 개정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스토킹의 정의를 지금보다 넓게 해석하고 성립 조건을 완화하며 피해 인정 범위를 넓혀가는 논의와 피해자 보호 강화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입법이 현실을 잘 못 따라간다는 건 중요한 지적입니다. 극단적 사건이 벌어지고 사회에서 논란이 돼야만 변화가 이뤄지는 측면이 있으니 항상 아쉬움이 있습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다. 지난해 11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권 의원은 대안 반영된 개정안의 상임위 논의과정에서도 치열하게 목소리를 낸 의원 중 한 명이다.
이어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의 극단적인 형태가 폭력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도 정부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식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을 외면하는 태도들이 이런 범죄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정부가 평등하지 못한 여성의 삶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사실은 폭력의 근원적 부분들을 해결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주는 거라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단순히 한 유형의 폭력에 대응하느냐 마느냐 하는 차원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대응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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