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잇장처럼 집 떠내려가”…전기·물 끊긴 채 갇힌 사람들 [밀착취재]

배소영 2023. 7. 1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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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4시쯤 경북 예천군 은풍면 금곡2리 마을로 향하는 입구는 토사와 잡목이 뒤엉켜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유일한 출입로인 비탈진 도로는 누군가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쉴 새 없이 흙탕물이 쏟아졌다.

이 마을은 폭우로 전기와 수도가 모두 끊겼다.

그는 "이번 산사태로 마을이 그야말로 초토화됐다"면서 "비가 더 온다고 해서 대피해야 하는데 우리 집도 떠내려갈까 봐 쉽사리 못 떠나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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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키고 빗물로 쌀 씻어”
마을 초토화에 주민들 망연자실
16일까지 시간당 30∼60㎜ 비 더 내려

“산사태에 개울물이 불어나면서 집이 종잇장처럼 떠내려갔다니깐.” 

15일 오후 4시쯤 경북 예천군 은풍면 금곡2리 마을로 향하는 입구는 토사와 잡목이 뒤엉켜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유일한 출입로인 비탈진 도로는 누군가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쉴 새 없이 흙탕물이 쏟아졌다. 폭 1m 남짓의 둑을 따라 500m 정도 걸어 올라가자 마을회관이 나왔다.

15일 예천군 은풍면 금곡2리 마을 주민이 개울가 건너 주택을 가리키고 있다. 
이곳에는 20여명의 주민이 모여 있었다. “괜찮냐”는 물음에 주민들은 “말도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이 마을은 이날 오전 12시30분쯤 잠을 자다 산사태를 맞았다고 했다. “함께 가자”며 주민 손에 이끌려 온 곳은 개울가였다.

◆산사태로 개울물 범람…귀촌 부부 변 당해

“친하게 지내던 내외의 집이 산사태로 떠내려갔어. 어떡해···.” 개울 건너 파란 지붕의 주택을 가리키던 60대 여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산사태가 얼마나 심했는지 개울물이 범람했고, 주택은 반쯤 쓸려나가 골조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한 주민은 “나는 마음이 아파서 못 보겠다”며 주저앉아 눈물을 벅벅 닦아댔다.

개울 건너 주택은 60대 부부가 귀촌해 살았다. 하지만 폭 2∼3m 남짓의 개울물이 산사태로 순식간에 50m가량 불어났고 부부가 변을 당했다. 남편은 숨진 채 발견됐고, 아내는 집안에서 구조돼 병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생사는 불투명한 상태다.

15일 예천군 은풍면 금곡2리 마을 주민들이 폭우로 전기와 수도가 끊겨 마을회관에 모여있다.
이모(60대)씨는 “참 싹싹하고 착한 부부였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한테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면서 “병원으로 옮겨진 친구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며 가슴을 쳐댔다. 마을회관에는 여성과 노인,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남성들은 삽과 포크레인으로 도로 물길을 파는 데 모두 동원됐다고 했다.

◆“빗물로 쌀 씻어”…전기·수도 끊겨

이 마을은 폭우로 전기와 수도가 모두 끊겼다. 하지만 끝없이 내리는 비에 도로가 잠기면서 주민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한 여성은 “면사무소에 여섯번 정도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아 분통이 터진다”면서 “마을 주민이 50~60명 정도 되는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 대피시키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15일 예천군 은풍면 금곡2리로 향하는 마을 인근 개울가. 
15일 예천군 은풍면 금곡2리 마을 남성들이 도로 토사를 제거하고 있다.
여기에 전기가 끊긴 탓에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없어 외부와 연락이 어렵고, 냉장고까지 멈춰 당장 식재료가 부족하다고 했다. 60대 김모씨는 “오전에는 빗물을 모아 쌀을 씻어 노인들 밥을 해 먹이고 촛불을 켜 주변을 밝히고 있다”면서 “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우산도 없이 장대비를 맞으며 집 앞마당에 둑을 쌓던 채용주(69)씨는 “이런 비는 난생처음 본다”고 했다. 그는 “이번 산사태로 마을이 그야말로 초토화됐다”면서 “비가 더 온다고 해서 대피해야 하는데 우리 집도 떠내려갈까 봐 쉽사리 못 떠나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15일 예천군 은풍면 금곡2리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주택이 붕괴됐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경북 사망만 17명…인명피해 눈덩이

경북 지역 인명피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고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도내 인명 피해는 이날 오후 6시 기준으로 사망 17명, 실종 9명, 부상 5명이다. 지역별 사망자는 예천 7명, 영주 4명, 봉화 4명, 문경 2명이다. 실종은 모두 예천에서 발생했다.

대구지방기상청에 따르면 13일부터 15일 오후 4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문경 동로 473.0㎜, 영주 부석 350.5㎜, 문경 328.8㎜, 봉화 315.5㎜, 예천 250.5㎜ 등이다. 경북은 16일까지 시간당 30∼60㎜의 매우 강한 비가 내리는 곳이 있겠다고 예보했다.

예천=글·사진 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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