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자금, 차익보다 성장성에 투자… 관건은 ‘역전의 장기화’ [심층기획-사상 초유 한·미 기준금리 격차 2% 예고]

이도형 2023. 7. 1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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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역전’ 시장 영향은
한은 금리 넉 달 연속 동결 결정에
미 연준 0.25%P 인상 가능성 점쳐
역대 최대 금리 역전 예약했지만
되레 외국인 국내 증권 투자 늘어
한미 금리역전 모두 4차례 있었지만
외국인 자본유출 현상 한 번도 없어
원·달러 환율도 안정적 유지하지만
금리 역전 상황 장기화 땐 조정 필요
한국 금융이 그동안 가지 않았던 길로 진입하고 있다.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현행 3.5%로 넉 달 연속 ‘동결’ 결정을 내리면서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조만간 더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가 오는 25∼2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5~5.25%)를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점쳐진다. 시장 예측대로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상단기준 5.5%로, 양국 간 기준금리는 최대 1.75%포인트에서 2%포인트로 더 벌어진다.

그동안 한·미 양국의 기준금리는 여러 번 역전됐었지만, 자본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계 투자자들이 금리보다는 기업의 성장성에 더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이로 인해 이번 격차도 자본시장에 큰 변화는 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관건은 ‘역전의 장기화’다. 현재 1년여 계속되고 있는 양국 기준금리 역전현상이 지속될 경우 투자자들의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 미 연준과 한은의 추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韓 3%, 美 5%’… 달러가치는 오르지만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은 현실화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미 ‘연내 2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지난 11일 시카고선물거래소 페드워치는 7월 FOMC에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확률이 92.4%라고 예측했다. 이미 1.75%포인트 차로 벌어져 있는 한·미 양국 간 기준금리 격차가 최대 2%포인트로 벌어질 경우 한국 금융시장은 유례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양국 기준금리에서 미국 금리가 2% 이상 앞선 적은 없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워싱턴=AP뉴시스
일반적으로 금리는 ‘돈’의 가치를 의미한다. 양국 기준금리 역전현상은 다시 말하면 미국 달러 가치가 한국 원화 가치보다 높다는 뜻이다. 국내에 있는 외국자본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원화 자본 유출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 금리 역전현상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게 이 때문이다.

한은은 ‘괜찮다’는 태도를 보인다. 한은의 태도 속에는 지금껏 있었던 금리역전현상 전례에서도 크나큰 자본유출이 있지는 않았다는 경험칙이 깔려 있다.

14일 자본시장연구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한·미 금리가 역전한 시기는 현재(2022년 7월∼2023년 6월)를 포함해 △2000년 1월~2001년 3월 △2005년 8월~2007년 9월 △2018년 3월~2020년 2월 등 총 4차례였는데 이 기간 해외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비거주자, 즉 외국인이 국내 증권(주식·채권) 시장에서 자본을 유출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승호 선임연구위원은“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5∼2007년과 코로나19 위기 발생 직전인 2018∼2020년에 외국인의 주식투자자금은 큰 폭의 순유출을 기록했지만 이는 내외금리 차보다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의 금융 불안정과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에 더 크게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 기간에 외국인은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자금을 뺐지만, 채권시장에는 자금을 투입했다. 한·미 금리 차가 사상 최고로 벌어진 최근(2022년 7월~2023년 6월)엔 비거주자(외국인)의 국내 주식·채권투자가 모두 늘어났다.
지난 5월 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미국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기준금리 역전현상이 자본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환율 변동에서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자본이 해외로 많이 유출된다면, 자연히 국내 달러 보유량이 줄어들면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다. 정작 한은이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13일 오전,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10원 이상 하락하며 1275원대로 내려섰다. 시장이 금리 동결에도 원화 가치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본 셈이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자금들은 차익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보다는 기업 성장성을 기반으로 보고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시장이 우려하는 만큼의 환율 변동성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출 상승세 속 자본유출 가능성↓

환율 안정세는 반도체와 같은 한국 주력 수출품목들이 반등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외국인이 자본유출을 하지 않고 있는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6월부터 지난 11일까지 삼성전자 주식을 2조원 가까이 사들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전년 대비 6% 감소한 542억달러를 기록했지만, 연중 가장 낮은 감소율을 기록했고 무역수지(11억달러 흑자)는 16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문홍철 DB 금융투자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원·달러 환율을 결정하는 것은 ‘금리’가 아니라 ‘수출’”이라고 말했다.

장기간 지속하는 금리 역전현상이 경제에 아주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승호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과거 원화 고금리 시절에는 낮은 금리로 외국자본을 조달해 경제주체들의 자본조달비용을 전반적으로 낮추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지만, 원화금리보다 미국 달러화 금리 수준이 높은 현 상황에서는 달러 표시 해외채권 발행이나 해외은행 차입금을 통한 외국자본 조달비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해외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투자자들이 현 상황의 장기화를 예측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본유출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즉 금리 역전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판단할 경우 자본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실질적으로 (금리 역전현상이) 장기화한다고 판단될 경우 한국 가계나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탈 흐름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은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이) 점진적인 조정을 일부 하는 것이 현재 같은 상황에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도형·이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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