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 나도 데려가줘”… 폭우 속 반려동물 구조지침無·대피공간無 [사사건건]
지난해 농식품부는 각 지자체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국민의 안전을 위한 재난대피 가이드라인(지자체용)’을 배포했다. 재난 시 반려동물의 안전이 보장받지 못하면 반려동물 가족 전체가 신속히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농식품부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각 지자체는 반려동물 재난대응 행동지침을 마련하고, 재난안전대책본부 등의 조직에 반려동물 대피 및 구조 업무를 수행할 담당자를 지정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더불어 반려동물 대피 시설 기준도 상세히 안내하고 있는데, 이는 보호자와 반려동물이 함께 입소할 수 있는 임시주거시설의 1인당 수용 면적(4.8㎡ 이상) 원칙과 사료·밥그릇·배변패드·입마개 등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과 보호자를 위한 지자체 구비용품 목록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는 재난 시 임시주거시설을 제공하는 행정안전부(행안부)의 대피소 운영 기준과 상충한다. 15일 행안부 국민재난안전포털 ‘애완동물 대처방법’에는 “봉사용 동물 외 애완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하라”고 안내돼 있다. 대신 ‘반려동물을 위한 재난 대처법’을 통해 반려동물 가구에서 직접 동물을 위탁할 수 있는 대피소나 지인의 집 등을 스스로 계획하라고 부연하고 있다. 행안부 재난구호과 관계자는 “임시주거시설에는 공동이 모여 있는 곳이라 동물출입 시 위생이나 소음 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어 (반려동물 출입) 제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도 반려동물 구조·대피 손 놓아…동물단체 등 민간에서 떠안아
농식품부로부터 반려동물 재난 지침을 마련하라는 지침을 받은 지자체에선 인명 구조 및 대피에 집중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민방위대피소 관계자는 “반려동물을 데리고 갈 수 있는 대피소는 없다”라며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관리만으로 벅찬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대피소뿐 아니라 반려동물 구조 지침도 전무한 상황이다. 지자체뿐 아니라 재난 현장에서 구조에 나서는 소방당국도 “소방기본법상 인명 구조를 우선으로 하고, 반려동물에 대해 구조 지침이나 매뉴얼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5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2021년 기준 606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가구의 약 25.9%로, 4가구 중 1가구에서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셈이다.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시민들 사이에선 반려동물은 가족과 다름없어 정부의 공식 대피소나 구조지침이 없다는 점에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11년째 강아지(스피츠종)를 양육하고 있는 김지원(29)씨는 “재난 상황에서 강아지와 함께 갈 수 없다면 대피소에 가지 않을 것이다”라며 “친척, 친구 집을 먼저 구해보겠지만 못 가면 물을 퍼내서라도 집에 강아지와 남겠다”고 밝혔다. 강아지 두 마리와 살고 있는 김희선(27)씨는 “반려동물은 가족인데 구조지침이 없는 게 말이 안 된다”이라며 “아이들이 집에 갇혀있다면 물이 차오르고 있더라도 구하러 들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난 시 반려동물의 안전은 반려동물 가족의 안전과도 직결될 뿐 아니라 재난 후 회복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호일 대구한의대학교 교수(반려동물보건학과)는 “재난 상황 시 반려동물 데리고 오지 못한 경우 다시 찾으러 들어가 위험한 경우가 종종 있다”며 “반려동물을 데리고 나왔다 하더라도 아예 분리된 동물보호소에 아이들(반려동물)을 맡겨야 하는 경우, 재난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심리적 안정 및 일상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민간과 지자체가 협력해서 반려동물의 행동·심리·건강 등 전문지식을 갖춘 ‘재난위기관리사’를 양성해야 한다”며 “개와 고양이 등 동물별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 환경에 대해서도 논의할 때”라고 촉구했다.
김나현 기자 lapiz@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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