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지 1년도 안 됐는데”…산사태 덮친 경북 예천 ‘눈물바다’

김현수 기자 2023. 7. 15. 18: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5일 오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한 마을에 토사와 나무가 쓸려 내려와 있다. 김현수 기자

“꼭 같이 모여서 재밌게 살자고 약속했는데…. 귀농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15일 오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송덕자씨(64)가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을 삼켰다. 송씨와 함께 이곳으로 귀농한 친구 A씨(62)가 밤새 내린 폭우로 실종돼서다.

이날 마을회관에는 실종자 A씨의 언니와 남편 B씨를 비롯한 가족 10여 명이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다친 마을주민들을 치료하던 소방대원과 마을주민들도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쳤다.

A씨는 지난해 3월 이곳으로 귀농했다고 한다. 수원에 살 당시 유독 마음이 잘 맞았던 삼총사 중 한 명이 예천으로 귀농하면서다. 다 같이 모여서 농사짓고 재밌게 살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A씨는 귀농을 결심했단다.

송씨는 “귀농해서 사니까 그렇게 좋다고 자랑했는데 너무 후회스럽다. 나 때문에 이런 큰일을 당한 것 같다”며 “제발 우리 친구 좀 찾아달라”고 말했다.

15일 경북 예천군 벌방리의 한 주택에 토사와 나무가 쓸려내려와 있다. 김현수 기자

이 마을에 본격적인 산사태가 발생한 것은 오전 3시쯤으로 추정된다. 마을주민 최병두씨(64)는 “새벽 2시부터 빗줄기가 너무 강해 조짐이 심상치 않아 잠에서 깼다”며 “(새벽)3시쯤 흙더미와 함께 폭포수처럼 물줄기가 마을 진입도로를 타고 쏟아져 내렸다”고 말했다.

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빗물과 토사는 마을 전체 약 80가구 중 10가구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이날 만난 유영빈씨(29)는 토사로 무너진 주택을 가리키며 “슈퍼 가게 할머니도 물이 목까지 차올랐는데 기둥을 잡고 버티시다가 겨우 구조됐다고 한다”며 “우리 마을은 예천에서도 비가 안 내리기로 유명한데, 이런 일이 벌어져 너무나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 마을주민 70대 B씨도 폭우로 실종됐다. 마을 진입로에 있었던 B씨의 집은 빗물에 휩쓸려 터만 남았다. 다행히 아들 C씨는 물살에 휩쓸릴 당시 주변의 풀 등을 잡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박태금씨(76)는 “아들이 아버지가 컨테이너 조각을 붙잡고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며 “오늘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는데 어찌나 슬프던지…”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이날 오후 마을 곳곳에는 산에서 떨어져 내려온 바위들이 주택 벽면을 부수거나 몇몇 주택은 흙더미에 파묻혀 있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길목마다 무너진 전신주와 나무더미가 쌓여있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인근 산에서는 거대한 물줄기가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15일 경북 예천군 벌방리의 한 주택이 인근 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빗물과 토사에 벽면이 부서진 채 위태롭게 서 있다. 김현수 기자

이번 집중호우로 이날 오후 6시까지 경북에서는 모두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예천 7명·영주 4명·봉화 4명·문경 2명 등이다. 실종은 9명으로 모두 예천에서 발생했다.

이번 집중호우의 직격탄을 맞은 예천군 예천소방서에는 긴급구조통제단 상황실이 설치됐다. 인근 예천스타디움 대형주차장에는 구조작업에 투입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대형 구조 장비들이 집결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북 22개 시·군 영상회의를 개최해 비상태세를 점검하고 피해 최소화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다.

경북경찰청은 문경·예천·영주경찰서 직원 모두 동원하는 갑호비상을 발령했다. 안동·상주·봉화·영양에는 직원 30%를 동원하는 병호비상을 발령해 호우 피해 예방 및 인명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구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3~15일 오후 4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문경 동로 473.0㎜, 영주 부석 350.5㎜, 문경 328.8㎜, 봉화 315.5㎜, 예천 250.5㎜ 등이다.

대구기상청은 16일까지 대구·경북에 시간당 30∼60㎜의 매우 강한 비가 내리는 곳이 있겠다고 예보했다.

15일 오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한 마을에 토사와 나무가 쓸려 내려와 있다. 김현수 기자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