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타민 밀수 일당 ‘범죄집단’ 인정될까…檢, “범단죄 무죄” 1심 판결에 항소

유경민 2023. 7. 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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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클럽 마약’ 또는 ‘데이트 강간 약물(Date-rape Drugs)’로 불리는 케타민 20만 명분을 국내에 밀수한 20~30대 일당을 ‘범죄집단’으로 볼 것이냐를 두고 검찰과 법원의 시각이 엇갈렸다. 검찰은 이들이 총책·자금책·운반책 등 조직의 체계를 갖췄다고 봤지만, 법원은 1심 판결에서 범죄단체조직·가입·활동죄(범단죄) 부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이러한 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운반책들이 속옷에 숨겨 밀수한 케타민. 서울중앙지검 제공
◆검찰 “조직적 범죄 집단” VS 법원 “친분 관계 이용한 조직”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부장검사 신준호)는 최근 총 6차례에 걸쳐 케타민 10kg을 국내에 들여온 17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향정)에 범단죄를 함께 적용해 이들을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올해 1월까지 총 6회에 걸쳐 6억5000만원 상당의 케타민 약 10㎏을 밀수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인천공항을 통해 한 번에 들여온 케타민은 1.4∼1.8㎏(가액 5000만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이 일종의 ‘범죄 집단’을 구성했다고 보고 있다. ‘범죄집단’은 ‘범죄단체’에 비해 지휘통솔 관계 등은 느슨하지만 일정한 조직체계를 갖춘 단체를 뜻한다. ‘범죄단체’와 마찬가지로 범단죄로 처벌할 수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총책이자 자금책인 최모(29)씨를 중심으로, 나머지 16명이 각각 연락책, 유통책, 모집·운반책 역할을 맡아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모두 20~30대 사회초년생으로, 동네 선·후배나 친구에게 범행에 가담할 것을 제안하고 수법을 공유하며 조직원을 늘려 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20~30대 케타민 밀수조직의 조직도 및 주요 역할. 서울중앙지검 제공
그러나 법원은 이들을 ‘범죄조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조병구)는 지난 11일 이들 중 먼저 기소된 10명에 대한 1심 판결에서 총책 최씨에게 징역 14년을, 공범 9명에게 징역 5~11년을 각각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의 마약 밀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체계를 갖춘 범죄집단으로 범행했다고 볼 증명은 부족하다”며 범단죄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이러한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다. 검찰 관계자는 “총책·자금책·운반책·모집책·유통책 등으로 조직 체계를 갖추고 장기간 반복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범단죄 등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1심 판결에 대하여 법리오해·사실오인 및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를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재판에 넘긴 신 부장검사는 “법원에서는 ‘상명하복’의 강제성 있는 조직이 아니라 인적 친분 관계를 이용한 조직으로 판단한 것 같다”며 “최근 7명을 더 기소했고 (검찰은) 17명이 조직적으로 가담한 범죄 집단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이런 부분을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운반책들이 속옷에 숨겨 밀수한 케타민. 서울중앙지검 제공
범단죄가 유죄로 인정되면 실제 목적으로 한 범죄를 저지르기 전 단계에서 그 목적으로 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처럼 처벌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마약 범죄를 목적으로 한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 단체에서 활동하면 마약 범죄를 저지른 것과 동일하게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여러 개의 범죄를 저지른 경합범으로 판단돼 형량이 높아질 수도 있다.
아울러 범죄수익 몰수·추징이 가능해져 피해 회복이 용이해진다. 이에 조직적 전세사기 등의 범죄에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전세사기 수사 대상 아파트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뉴시스
◆‘조폭범죄’에서 ‘전세사기·성·마약범죄’로 확대

범단죄는 조폭 사건에 주로 적용됐지만, 보이스피싱 조직에 처음 적용된 이후 마약, 전세사기, 성범죄 등으로 점점 적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대법원은 2017년 범단죄, 특경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보이스피싱 조직 박모씨의 상고심에서 “사기범죄를 목적으로 구성된 계속적인 결합체로서 총책을 중심으로 내부의 위계질서가 유지되고 조직원의 역할분담이 이뤄지는 최소한의 통솔체계를 갖춘 범죄단체에 해당한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부중개업을 하던 박씨는 2013년 사업이 어려워지자 인천에 사무실을 마련한 후 전화 대출 사기를 벌일 77명의 조직원을 모집해 범죄단체를 꾸린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가 조직원에게 본부조직과 콜센터, 현금인출팀으로 조직을 나눠 대출 사기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고, 범행 방법을 정리한 매뉴얼을 통해 1~2주간 사전 교육을 한 점 등이 고려됐다.
지난 2020년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검찰로 송치되는 모습. 뉴스1
이른바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7)과 공범들도 범죄단체조직·가입·활동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검찰과 법원은 조주빈과 박사방 가담자들이 조직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내부 규율을 만드는 등 음란물 공유 모임을 넘어선 범죄 집단을 형성했다고 봤다.

최근 기승을 부린 국내 전세사기 사건에도 처음으로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됐다. 인천지검은 지난달 27일 사기 등 혐의로 건축업자 A(61)씨와 공인중개사 등 일당 총 35명을 기소하면서 A씨를 포함한 18명에게는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적용했다. 이들은 바지 임대인·공인중개사·중개보조원·자금관리책 등으로 역할을 나눠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2700여채를 보유하면서 세입자 372명으로부터 전세 보증금 305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유경민 기자 yook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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