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혐인줄 알았지만 이정도라니”...사상 최악의 학살자라는 이놈의 나비효과 [김기철의 역사를 바꾼 사물들]

김기철 기자(kimin@mk.co.kr) 2023. 7. 1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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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축구 라이벌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가대표 경기를 보면 눈에 띄는 것이 한가지있다. 브라질 선수들은 흑인과 혼혈 비율이 높은데 아르헨티나는 대부분 백인이라는 것.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리오넬 메시와 브라질을 대표하는 네이마르만 봐도 그렇다. 실제 인구 구성을 봐도 아르헨티나는 인구의 97%가 백인인 반면, 브라질은 백인과 혼혈·흑인 비율이 반반 정도이다.

남미 대륙에 바로 붙어 있고, 식민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두 나라의 인종적 구성이 이렇게 차이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아르헨티나는 스페인 식민지이고, 브라질은 포르투갈 식민지라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콜럼비아나 베네수엘라만 봐도 이것은 이유가 아니다.

두 나라의 인종적인 차이를 만든 가장 중요한 원인은 모기다. 맞다. 여름에 윙윙 거리는 소리만으로도 사람을 괴롭히는 그 모기가 두 나라의 인종적 구성을 결정했다.

과거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노예주와 자유주의 경계를 결정지은 것도 사실은 모기였다.

작은 모기가 만들어낸 거대한 역사의 풍랑 속으로 들어가보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국가 대표 축구 경기에서 뛰고 있는 리오넬 메시(오른쪽)와 네이마르.
악랄한 최상위 포식자, 모기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은 무엇일까? 의외로 3위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지난 2017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1년간 개에 물려 목숨을 잃은 사람이 2만5000명이었다. 2위는 뱀으로 매년 5만명이 뱀에 물려 그 독에 중독돼 사망한다.

1위는 무려 72만5000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모기다. 말라리아와 황열병, 뎅기열 등 모기 매개 질병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는 잔혹한 학살자다. 모기 매개 감염병 가운데 가장 흔하고 치명적인 것은 말라리아로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에 걸린 어린이가 1분에 한 명꼴로 숨진다.

말라리아는 모기가 옮기는 열원충(말라리아원충)에 의해 발병하는데 모기에 물리면 모기 침샘에 있던 열원충이 몸에 들어와 간에서 잠복기를 보내며 증식한 뒤 적혈구로 침입해 오한·발열·발한·설사·두통·복통·근육통 등을 일으킨다. 말라리아가 무서운 이유는 뇌에 침투해 병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열원충이 흡착해 뇌혈관을 막아버리면 환자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런 증세는 소아들에서 잘 일어나고, 아직은 특효약도 없어 치사율도 10%가 넘는다.

말라리아 발생 지역에 사는 전 세계 인구는 약 33억 명에 이른다. 매년 2억 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하고 이 가운데 43만여 명이 숨지는데, 사망자의 87%는 5세 미만의 아프리카 아동이다.

아프리카가 빈곤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말라리아과 같은 모기 매개 감염병에서 찾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프리 삭스(Jeffery Sachs)는 지난 2001년에 미국 열대의학 및 위생 저널에 발표한 ‘말라리아로 인한 경제적 부담(Economic Burden of Malaria)’이라는 논문을 통해 말라리아가 경제성장을 가로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삭스는 논문에서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나라는 1965년과 1990년 사이에, 1인당 GDP 성장률이 말라리아가 없는 국가에 비해 1.3% 낮았다는 점을 밝혀냈다. 또 말라리아 유병률이 10% 감소하면 GDP 성장률이 0.3% 상승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빈곤 문제 해결에 관심이 큰 빌 게이츠가 모기 퇴치를 위해 엄청난 기부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빌 게이츠는 지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약 5조1175억원의 자금을 모기 퇴치에 기부했다.

칭기스칸의 말발굽에서 유럽을 지켜낸 모기
모기 매개 질병은 종종 전쟁의 역사를 바꾸어 놓기도 했다. 서쪽으로 거침없이 진군하던 칭기스칸의 몽골군대가 루스인과 키예프인, 불가르인을 차례로 궤멸시킨 뒤 폴란드와 헝가리를 눈 앞에 두고 1223년 갑자기 동쪽으로 퇴각한 이유가 모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이 있다. 몽골군이 코카서스 산맥과 흑해를 따라 이동하다 많은 병사들이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재정비를 위해 일보 후퇴했다는 것이다.

칭기스칸 개인적으로도 말라리아에 여러차례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칭기스칸은 만성적인 말라리아 감염으로 면역계가 손상되어 65세에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몽골군은 칭기스칸 사후인 1236년 다시 유럽 정복에 시동을 건다. 칭기스칸의 후계자 우구데이가 이끄는 몽골군은 오늘날의 발트해 국가와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를 무너뜨리며 1241년 크리스마스에 다뉴브강에 도착한다.

하지만 칭기스칸이 그랬던 것처럼 우구데이도 1242년 갑자기 유럽 정벌을 포기하고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역사학자들은 몽골군이 이렇게 방향을 튼 결정적인 이유를 1241년 동유럽의 기후에서 찾는다. 1241년 봄과 여름에 동부 유럽에 이례적으로 비가 많이 오고 습했다. 이런 날씨로 동유럽 평원에 진창이 생기고 지하수 수위가 높아지면서 몽골군 전력의 핵심인 군마들이 먹고 쉴 목초지가 사라졌다. 땅이 젖어서 몽골군 특유의 기동전을 펼치기 어려웠고 습도가 높아지면서 팽팽해야 할 활시위도 느슨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날씨로 몽골군의 야영지가 늪지대로 바뀌면서 모기가 번성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됐고 몽골군이 말라리아의 공습을 받게 됐다. 천하무적으로 여겨졌던 몽골군도 결국은 모기떼의 공습은 극복하지 못했던 셈이다.

몽골의 징기스칸 동상
신대륙 원주민은 모기떼에 무너졌다
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 유명한 저서 <총·균·쇠>에서 잉카족을 포함해 신대륙의 문명을 무너뜨린 스페인 정복자들의 주력부대는 그들이 몸속에 지니고간 구대륙의 전염병이었다고 분석했다.

1502년 스페인 태생의 신부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르가 오늘날의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가 있는 히스파니올라섬에서 목격한 내용을 기록한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에는 그때의 상황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인디언들은 완전히 자유를 빼앗겼으며 가장 가혹하고 맹렬하며 끔찍한 노예 상태로 억류되어 있는데, 직접 그 광경을 보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중략) 본래 이 섬에 살았던 사람들 수가 급속도로 줄어들었으며 지난 8년간 90퍼센트가 세상을 떠났다. 이곳에서 시작된 대대적인 역병이 산후안, 자메이카, 쿠바와 내륙에까지 확산되며 반구 전체를 파괴하였다.
여기서 그가 말한 ‘대대적인 역병’은 바로 모기가 가져온 말라리아와 황열병이었다. 모기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중앙아메리카 남부 해안을 ‘모기 해안’으로까지 부를 정도였다.

말라리아가 신대륙에 들어온 것은 콜럼버스의 1차 항해 때인 것으로 알려졌다. 1492년 콜롬버스가 1차 항해를 마치고 11개월후 2차 항해로 히스파니올라섬에 돌아왔을 때 그 섬은 이미 말라리아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콜럼버스가 발을 딛기 전 아메리카 대륙에도 모기떼는 왕성한 개체군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말라리아와 황열병의 매개 역할을 하는 얼룩날개모기와 숲모기는 없었다. 질병의 매개 역할을 하는 모기는 정복자들과 함께 바다를 건넌 것이다.

유럽의 정복선에 몰래 승선해서 대서양을 건넌 모기들은 정복자들보다 먼저 신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가 무자비하게 학살을 저질렀다.

1540년대 에르난도 데 소토와 프란시스토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라는 두명의 스페인 탐험대가 플로리다에서 멕시코만 연안을 따라 탐험을 한 뒤 아래와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 땅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세 종류의 무수히 많은 모기와 마주쳤는데 매우 불쾌하고 성가셨으며 여름 내내 우리를 괴롭혔다. 인디언들은 모기에게 너무나 많이 물렸던 탓에 나병환자 성 라자로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생각될 지경이었으며(중략)모든 곳이 활폐화되고 마을들이 불탔으며 사람들이 마르고 아픈 모습을 보노라니 매우 슬펐다.
통계에 의하면 1700년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인구는 1492년의 5% 정도로 줄어들었다. 모기들은 천연두를 비롯한 구대륙에서 온 다른 질병들과 함께 원주민 학살의 주범들이었다.
노예제라는 인류사 최악의 제도를 잉태한 모기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대로 모기 매개 감염병은 유럽인들의 팽창을 도와주는 첨병이었지만 또다른 한편으로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기도 했다.

영국이17세기 본격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해 미국 남부에서 플랜테이션 농업을 시작할 때 그들은 처음 원주민들을 노예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구대륙에서 들어온 감염병에 취약한 그들은 그 수가 급감했다.

두가지 선택지가 남았다. 하나는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지역 출신 사람들을 ‘계약이민하인’이라는 일종의 계약직 인력으로 데려갈 것이냐, 아니면 스페인이 하듯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노예로 잡아갈 것이냐.

사실 경제성만 따지면 흑인 노예를 데려올 이유가 크지 않았다. 미네소타대학의 러셀 매너드 교수는 17세기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에서 ‘거래’되던 흑인노예와 계약이민하인의 ‘가격’을 환산해 집계했는데 이에 따르면 아프리카 남성 노예 평균 가격이 25파운드로 유럽 출신 계약이민하인의 가격 10파운드보다 높았다. 25파운드는 당시 영국인의 4년치 평균 급여에 해당하는 상당한 액수이다.

<국부론>을 쓴 위대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도 도덕적 이유에서건, 경제적 이유에서건 노예제는 합리적인 제도가 아니라고 반대했다.

계약이민하인은 가격도 싸고 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같은 사회규범을 익혔을 뿐 아니라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도망갈 이유가 없는 반면, 아프리카 노예는 탈출과 상해, 사보타주의 동기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결과적으로 노예에 의해 수행되는 것보다 자유인이 해내는 일이 비용 면에서 적게 먹힌다”며 노예제를 반대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말라리아 매개 모기 서식지 분포도. 점선 안이 말라리아 모기 서식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상 최악의 제도인 노예제가 아메리카 대륙에 뿌리를 내렸다. 유럽인 계약이민하인도 원주민과 마찬가지로 모기로 인한 말라리아와 황열병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계약이민하인 10명을 데려가면 7~8명은 감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물론 노예제의 책임을 모기에게 돌려서는 안된다. 말라리아가 노예제도의 직접적인 원인도 아니었다. 다만 대안 노동력을 말라리아가 무력화시키면서 흑인 노예를 필요로 하는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흑인 노예제가 미국 남부지역에 더욱 지독하게 자리를 잡았던 배경에 플랜테이션 농업이 집중된 지역이라는 산업적 특성과 함께 그 지역이 말라리아 창궐지역이였다는 점도 작용했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은 유럽인이냐 아메리카 원주민보다 말라리아에 더 강한 내성이 있엇다.

앞에 언급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인종 구성의 차이도 이 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12종이 서식하는데 이들 매개 모기의 집단 서식지 남방 한계선이 두나라의 국경지대인 우루과이강 유역이다. 즉 우루과이강 유역 북쪽인 브라질 지역에는 말라리아에 내성이 있는 흑인 노예를 많이 필요로 했던 반면, 그 아래쪽인 아르헨티나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든 모기의 분포도는 아메리카 대륙의 인종 분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끔찍했던 노예선의 모습을 그린 그림
모기,DDT, 그리고 침묵의 봄
말라리아, 황열병 같은 모기 매개 질병이 인류를 학살해 왔지만 정작 인류는 그 질병이 모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떻게 감염되는지 모르니 더욱 공포스러웠다.

보이지 않는 학살자가 모기라는 사실은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밝힐 수 있었다. 가장 먼저 1877년 홍콩의영국군 전초기지에서 근무하던 영국 의사 패트릭 맨슨이 사상충증의 매개로 모기를 지목했다. 정확한 과학적 증거를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맨슨은 모기가 말라리아를 옮길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를 계속하던 맨슨은 1894년 인도에 배속된 후배 군의관 로널드 로스에서 자신의 말라리아 연구 결과물을 전달했다. 1897년 로스는 모기가 조류말라리아의 매개라는 사실을 입증해 말라리아의 매개자로 모기를 지목했다. 이 연구성과로 1902년 로스는 노벨상을 받았다.

모기가 학살의 주범임이 밝혀진 후 본격적으로 모기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하지만 모기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모기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인류가 잠깐 승리를 쟁취한 때가 있었다. 2차대전 때의 일이다.

미국은 태평양 일대에서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는데 그 전쟁은 한편으로는 모기떼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의 전선이 주로 모기떼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1942년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벌어졌던 콰달카날 전역에서는 말라리아가 제1해군 사단을 집어삼킨 탓에 그 전투를 ‘역병 작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극동지역 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적과 맞서는 데 있어 나에게 주어진 모든 사단 중 두 번째 사단은 말라리아에 걸려 병원에 있고 세 번때 사간은 그 처참한 질병에서 회복중에 있다.
전쟁 기간 미군에 보고된 모기 매개 질병은 총 72만5000여건으로 그중 57만5000건이 말라리아, 12만2000건이 뎅기열, 1만4000건이 사상충증이었다. 태평양지역에 파견된 미군 중 60%가 말라리아에 한번 이상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군 중위로 참전했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도 전시 감염자 중 한명이었다.

모기와의 전쟁을 위해 미군이 확보한 무기가 바로 DDT다. DDT는 1874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화학자들이 처음 합성한 물질인데 그 살충효과는 1939년 독일계 스위스 과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가 입증했다. 그는 ‘DDT가 다수의 절지동물에 대한 고효율 접촉독임을 발견한’ 공로로 1948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DDT는 독일계 과학자의 발명품이었지만 히틀러는 이것이 무용할 뿐 아니라 나치 독일의 건강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주치의의 조언에 따라 DDT 사용을 금지했다. 반면 미국은 1942년 DDT를 대량생산하여 전력을 보강했고 DDT를 활용한 말라리아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미군은 1943년부터 태평양 지역과 이탈리아에서 모기 퇴치를 위해서 DDT를 대량으로 살포했다. 1944년말까지 전쟁지역 900여곳 2070개 주둔지에서 4000명이 DDT를 뿌리는 ‘모기 킬러’로 활동했다.

DDT의 효과는 놀라웠다. DDT가 살포되기 전인 1943년 여름 두달동안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파병된 미군 중 2만1482명이 말라리아로 입원했고, 1만737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43년 8월부터 시칠리아 주둔지에 DDT를 살포했는데 1945년까지 말라리아 발병건수가 80% 감소했다.

DDT의 효과가 입증되자 2차 세계대전이 DDT는 농업용 살충제로 광범위하게 살포됐다. DDT가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했다. 1951년 미국은 말라리아 청정국가가 됐고 매년 말라리아 환자가 7500만명 이상 발생하던 인도에서는 그 숫자가 5만건 아래로 줄어들었다. 1970년까지 모기 매개 질병이 전세계적으로 90% 이상 감소했는데 가장 큰 공헌은 DDT의 몫이었다.

모기에게 치명적인 약품이 인간과 다른 생명체에게는 무해할 리는 없다. 1950년대부터 DDT의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DDT가 가져올 부작용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한권의 책이었다. 바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다.

레이첼 카슨
지금 이 마을에는 개똥지빠귀 새와 찌르레기가 보이지 않는다. 박새는 지난 2년 동안 보이지 않았고 올해는 홍관조도 보이지 않는다.(중략) 아이들에게 그 많던 새들이 죽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새들이 다시 돌아올까요?’라고 묻지만 나는 그 답을 모른다.
농부들은 가족들과 병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도시의 의사들은 새롭게 생겨나는 질병들에 대해 점점 더 어리둥절해졌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갑작스럽게 죽어 나갔는데, 놀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지 몇 시간 안에 죽었다. 이상한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중략) 소리없는 봄이었다.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10년 후인 1972년 미국은 국내 농업에서 DDT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일부에서는 입증되지 않은 가설을 과장해서 모기와의 전쟁에서 가장 효율적인 무기인 DDT를 인간에게서 빼앗아 버렸다고 카슨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못된 비판이다. DDT는 더 이상 효과적인 무기가 아니다. 이미 모기도 DDT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또다른 무기가 필요할 뿐이다.

2016년 모기 퇴치에 5조원 넘게 기부할 당시 빌 게이츠는 “2020년까지 새로운 살충제가 나오지 않는다면 상황이 더 악화해 사망자가 급등할 것”이라며 “살아있는 동안 말라리아와 같은 감염병을 박멸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게이츠의 바람과 달리 새로운 살충제는 나오지 않았다.

특히 올해는 미국에서 말라리아 확진 판정을 받은 사례가 20년만에 보고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최근 2달 동안 플로리다와 텍사스에서 총 5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됐다고 지난 6월 26일 발표했다. 모기와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밤 우리집 거실에서도.

역사의 행로를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 지구 위의 여러 생물들과 자원, 물건들이 결정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김기철의 역사를 바꾼 사물들>은 인류 역사의 방향을 결정한 사물들과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람들의 분투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기자 페이지(https://media.naver.com/journalist/009/75254)를 구독하면 빼먹지 않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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