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보안, 터지면 재난인데… 책임은 민간에서만?[떴다떴다 변비행]

변종국 기자 2023. 7. 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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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려던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실탄 2발이 발견됐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실탄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한 보안 검색요원이 검찰에 송치가 됐습니다. 혐의는 ‘항공보안법 위반’입니다. 그런데 항공 보안 업계에서는 보안 책임과 처벌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는데요. 기내에서 발견된 실탄 2발이 보안 판독(X-ray)에서 실패한 건지, 어떻게 기내로 들어왔는지 밝혀진 게 없기 때문이죠. 심지어 실탄을 반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잡지 못한 상태입니다.

“보안 구역에서 문제가 생기면 보안 검색요원이 처벌받아야 한다”라는 일반화를 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보다 본질적인 논의를 해보면 간단하게 답할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죠. 오늘 ‘떴다떴다변비행’에서는 보안 요원에 대한 처벌의 법적,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시사점을 찾아보려 합니다.

●형사처벌의 적정성

검색 요원에게 적용된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는 ‘항공보안법 제50조 제4항 제2호, 제5항 제2호’ 등 입니다.

먼저 이 법 조항의 적정성을 따져보겠습니다. “보안 검색 업무를 하지 아니하거나 소홀히 한 사람”이라는 구절이 문제가 되는데요. 법으로 처벌을 하려면 법률의 내용이 명확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소홀히 한 사람’이라는 문구에서 ‘소홀히’라는 건 무얼 말하는 걸까요? 소홀의 기준이 뭘까요? 구체적으로 그 내용은 뭘까요?

우리 대법원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떤 것인지를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즉, 법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고 애매해서 무엇이 문제 행위인지를 알 수 없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겁니다.

법의 내용이 애매모호하면, 법을 적용하는 사람들의 ‘해석’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상황이 많이 발생하게 되면, 진정한 법치주의 실현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죠..

비슷한 예로 미성년자보호법 조항의 불량만화에 대한 정의가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미성년자보호법 제2조의2 제1호 등 위헌 제청’) ‘음란성 또는 잔인성을 조장할 우려’라는 표현 중 ‘잔인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렇게 판단을 합니다. △판례상 개념 규정이 확립 되지 않은 상태이고 △잔인성에 대한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그에 대한 해석과 판단이 천차만별이어서 법 집행자의 자의적인 판단을 허용할 여지가 높고 △여기에 ‘조장’ 및 ‘우려’까지 덧붙여지면 사회 통념상 정당한 것으로 볼 여지가 많은 것까지 처벌의 대상으로 할 수 있게 된다고 말이죠.

즉, 모호하고 막연한 개념을 사용하면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 있고, 이는 ‘죄형법정주의’에서 이야기하는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본 겁니다. 결국 ‘보안 검색 업무를 소홀히 한 사람’이라는 문구에서도 무엇을 소홀히 했다고 말하는 건지, 소홀하다는 기준과 정도는 어디까지인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보안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적정성의 원칙

형벌이라는 건 사회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입니다. 그런데 형벌을 내릴 때는 비례와 균형이 요구됩니다. 도를 넘어선 강한 처벌도 차별적 처벌도 안 되지요. 특히 형벌은 자신의 책임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적정성의 원칙’에 입각해야 합니다. 나의 책임 범위를 넘어서는 일에 대해 과도한 형벌은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은 보안 검색 실패에 대한 책임을 보안 검색 요원들이 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와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항공 보안을 관리하고 책임지고 형벌까지 받게 되는 보안요원들은 민간인 신분입니다. 민간인들이 국가의 안보와 보안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죠.

보안 검색 모니터링을 하는 보안 요원의 모습.
보안 검색 사고가 나면 보안 관련 민간업체들은 국가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습니다. 검색 요원이나 공항공사 직원 모두 징계를 받습니다. 징계와 징벌에 더해 이중으로 형사처벌까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권한과 신분에 비해 과도한 처벌 책임이 부과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보안 업계에서 나오는 배경입니다.

한 보안 업계 종사자는 “우리는 폭언을 당하고, 폭행당해도 처벌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공무원에 준하거나 국가 기관에 준하는 권리도 없다.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은 과도하게 부여가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형사범의 경우에는 고의성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하고,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법에 따라 예외적으로만 처벌을 한다. 사건이 발생해도 과실범의 경우엔 예외성을 충분히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항공 보안의 민간 위탁

보안 검색을 하는 이유는 항공 사고나 테러 등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함입니다. 단 한 번의 보안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민간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보안을 신경 쓰고 있죠.

한국은 인천국제공항 개항을 전후로 공항 안보의 책임을 국가가 아닌 민간중심으로 이관했습니다. 현행 보안 제도는 공항공사와 항공사 등에 운영의 책임을 부여하고 있고, 실제적인 보안 검색 업무는 보안 업체에 위탁하는 시스템이죠. “국가 안위에 직결되는 보안 검색을 공항을 운영하는 공항공사나 항공사, 민간 보안 검색 업체들에게 대부분 맡기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이냐”는 본질적인 질문이 제기되는 부분입니다.

보안 검색을 하고 있는 모습.
더군다나, 국가 공무원도 아닌 민간 보안 요원들에게 제대로 된 처우도 해주지 않고 열악한 근무 환경까지 더해진다면 사명감과 안보 의식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도 해볼 수 있습니다. 국가 안보 차원의 업무를 민간에 많이 의존하는 상황에서, 보안 요원들의 처우 문제까지 쌓이면 보안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업무에 대한 불만은 사기 저하와 업무 기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항공 보안 업계는 지금 △신입 직원들의 부족 △정원보다 부족한 인력 △이직 및 퇴직 직원들의 증가 △처우 불만 등의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일이 언젠가부터 ‘3D(Difficult, Dirty, Dangerous)’ 업종이 돼버렸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민간에서 발생한 문제는 국가가 수습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안 검색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보안 검색 요원을 처벌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보안 검색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보안 요원의 책임론만 강조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한국의 항공 보안업계는 공공과 민간이 서로 역할을 부담해 나가는 모양새입니다. 이른바 ‘공동생산’의 개념으로 공항과 항공업계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잘 돌아가면 다행인데 균형이 무너지거나 한 부문에 문제가 생기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목표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9.11테러와 미국의 항공 보안

미국의 사례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2001년 9.11테러 발생 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공공서비스의 민간 위탁이 증가하고 있었죠. 지금의 한국처럼 민간과 공공의 조화로운 공항 운영이 대세였습니다. 그런데 보안 업계 이직률이 높아지고, 자격 및 대우 등에 대한 문제들이 하나둘씩 발생합니다. 그래서 1996년과 2000년에 미국 의회에서는 공항 보안 검색요원들의 자격에 대한 FAA(미연방항공청)의 기준을 발표하기도 했죠.

그런데, 9.11 테러 발생 전까지 이러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고 그래서 개선을 하자는 움직임이 미지근하게 논의되던 시점에 9.11 테러가 발생한 겁니다.

9.11 테러 당시의 모습.
미국은 9.11 테러 이후 공항 보안 체계를 모두 바꿔버립니다. 특히 보안 검색요원들에 대한 자격 기준과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됩니다. 더 나은 대안들을 찾으려고 유럽 공항의 안전 체계와 미국 공항의 안전 체계를 비교하는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조사 결과 2개 국가만 제외하고, 공항 보안요원에 대한 자격 요건이 미국보다 엄격했다고 합니다.

유럽의 경우 보안요원들의 임금이 미국 보안요원의 2배 정도로 높았고, 유럽의 보안 요원들은 보안 전문가로 인식되고 또 그만큼 대우받고 있었다고 하죠. 미국의 보안 요원들은 입사 후 2년 안에 거의 100% 이직할 정도였는데, 유럽의 경우엔 이직률이 미국보다 현저하게 낮았다고 합니다. 특히 테러 발생 가능성이 큰 지역의 경우엔 항공 안전 향상을 위해 큰 비용이 지출되고 있었다는데요. 여행객들도 테러 발생이 높은 지역을 이용할 땐 공항 이용료 등을 더 지불하는 것에 큰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연구 결과는 미국 정치인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나 봅니다. 보안 요원들 임금을 인상하고,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고 장비를 보완할 것에 동의하죠. 더 나아가 테러 발생 두 달 뒤부터는 누가 공항의 안전을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됩니다. 그 결과 2001년 11월 보안 검색을 전담하는 국가 경찰기구로 미국 국토안보부 소속의 교통보안청 TSA(Transportation Security Administration)가 출범합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1년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항공 보안 대책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AP통신.
13명의 직원으로 출발한 이 부서는 그해 말 6만4000명으로 근무자가 증가합니다. TSA의 첫 번째 목적은 미국 내에 있는 400여 개의 공항 전체에 2002년 말까지 TSA 요원들을 배치하는 데 있었고 그해에 약 11만7000명을 전 공항에 배치합니다. 이후 TSA는 항공 보안을 관리하는 다양한 부서를 총괄하는 상위 본부 역할을 하게 될 정도로 성장합니다. 공항의 보안을 국가가 총괄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이 완전히 바뀐 것이죠.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은 항공 보안에 대한 체계와 인식을 완전히 바꿉니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려고 한 거죠. 미국의 항공 보안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많다고 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으려면….

취재할수록 ‘총체적 난국’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공항 보안 검색 체계의 문제를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지휘계통의 혼돈, 문제만 생기면 책임자를 처벌하기 급급한 문화, 매뉴얼대로 보안 검사를 하면 공항이 마비돼 버리는 아이러니, 보안 당국의 책임·처벌 회피 등 풀어가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5월 김포공항서 발생한 ‘수하물 대란’의 진짜 이유는?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616/119803864/1 참조)

공항 보안 검색대 모습.
사실 업계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로 이원화돼 있는 항공 보안 전문회사를 하나로 합쳐서, 자회사가 아닌 독립된 조직으로 운영하자 △보안 검색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국가 보안인재 개발원(가칭) 등의 기구를 마련해 전문성 키우자 △기구나 재단에서 항공 보안 인력의 채용과 교육 등을 하자 △국토교통부에서 항공정책실을 독립시켜 항공청을 만들고, 그 안에 항공 보안 전담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등 입니다.

이미 항공업계는 문제가 뭔지 알고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조짐들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는 그저 ‘문제야 터지지 마라’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느낌입니다. 이러다 사고가 나면 또 책임자를 찾아서 처벌하려 하겠지요. 건설적이지 못한 행동의 반복에 국가 안보는 더 위협받고 있는 건 아닐까요?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한 고위 공직자가 항공업계의 보안과 안전을 두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이러다 진짜 큰일 납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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