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팀 신체수색', 케이팝 팬덤을 '숭배자들'로 멸시한 사회 태도 보여준다
[이지행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junelee74@naver.com)]
지난 7월 8일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 소속 9인조 보이그룹 앤팀(&TEAM)이 서울에서 진행한 대면 팬사인회에서, 몸에 숨긴 녹음기 등을 찾는다는 빌미로 팬매니저로부터 과도한 신체수색을 당했다는 일부 팬들의 경험담이 소셜미디어에 공유되었다. 해당 사건이 퍼져나가자 다음날 하이브 플랫폼 '위버스샵'에는 여성 보안요원에 의해 이루어진 신체수색에 대한 사과와 함께 향후 보안 목적의 검색에 비접촉 방식 도입 등 개선안을 준비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어느덧 20여년이 훌쩍 넘어가는 케이팝 아이돌 문화는 특유의 팬덤문화를 빼놓고 언급하기 힘들다. 팬덤 중심으로 구성된 문화산업의 전형적인 사례다. 스트리밍, 앨범 구매, 공연 등의 음악관련 상품이나 팬사인회, 팬미팅, 악수회 같은 부대행사, 굿즈 같은 파생상품에 이르기까지, 케이팝 산업은 팬덤의 적극적인 소비와 참여를 전제로 기획되고 유지된다. 4세대 아이돌이 활동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팬덤의 소비력에 더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2차 생산, 홍보, 담론생산 능력까지 덧붙여져 팬덤의 위상이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케이팝 초창기인 1990년대 후반, 보이그룹을 중심으로 대형 팬덤이 형성되었고 자연스레 케이팝 팬덤의 주축은 '십대의 어린 소녀'라는 공식이 보편화되었다. 케이팝의 역사가 쌓여가면서 '소녀'들은 30대, 40대 성인 여성이 되었으며 그들의 소비력은 무시 못할 수준에 이르렀다. 글로벌한 유행으로 떠오른 케이팝의 산업적 성과에 발맞춰 케이팝의 예술성에 대한 재평가도 시도되고 있다. 다양한 국가와 인종 정체성으로 이루어진 초국적 커뮤니티로서의 팬덤의 잠재적 역량을 호의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산업과 팬덤의 가시적 확장에도 불구하고, 케이팝이 여전히 '대중적이지 않은 주류문화'라는 분열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까닭은 팬덤의 주축이 (심지어 아이돌의 성별과 관계없이) 어린 여성이며, 케이팝은 어린 여성들로 이루어진 팬덤의 이해할 수 없는 광적인 열정으로 굴러가는 산업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기인한다. 게다가 그 열정이라는 것이 대부분 아이돌의 예술성이 아닌 댄스나 외모 같은 외적인 요소로부터 비롯한다는 믿음은, 팬들을 '빠순이'라 부르는 공공연한 멸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비단 케이팝에만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케이팝 팬이 '빠순이'라면, 서양 보이밴드나 남성 아티스트의 여성팬들을 부르는 멸칭에는 '그루피'가 있다. 그루피는 밴드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여성 팬들을 뜻하는 말이다.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여성 팬덤을 규정해 온 팬 스테레오타입은, 아티스트의 외적 요소를 탐닉하며 그들과의 개인적 관계를 공상하는, 이른바 광적인 '숭배자'인 것이다. 가요프로그램 방청을 위해 줄 선 팬들을 향해 "아이돌 따라다니지 말고 부모한테 효도나 하"라는 행인의 일갈은 환상과 현실을 구별 못하고 무분별한 열정에 휩쓸린 ‘숭배자들’에 대한 당당한 멸시의 표현이다.
애호의 대상을 향한 태도가 숭배인가 향유인가는 명확하게 분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향유에는 숭배의 요소가 깃들어 있고, 숭배의 대상을 상대로도 향유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틀스가 처음 미국에 건너왔을 때 소녀팬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이른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불릴 정도의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기득권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그들의 음악을 '철없는 십대나 듣는 음악'으로 폄하하고, 그들에게 열광하는 미국의 십대 소녀들을 정신 나간 그루피들이라고 조롱했다. 비틀스를 향한 미국 기득권의 반발은, 1960년대의 저항정신과 로큰롤에 대한 미국사회의 보수적 태도와 맞물려 그들의 소녀 팬들을 교양 있는 문화 향유자가 아닌 철없는 숭배자로 낙인찍는 형태로 드러났다. 오늘날 비틀스는 대중음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중년, 남성을 포함한 숱한 대중에게 클래식으로 추앙받는다. 누구도 비틀스의 팬을 '어리석은 숭배자'라며 멸시하지 않는다. 결국 특정 팬덤을 숭배하는 주체로 볼 것인가 향유하는 주체로 볼 것인가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이때 젠더가 주요한 표지가 되는 셈이다.
이번 앤팀의 팬사인회에서 있었던 신체수색은 어느날 갑자기 불거진 논란이 아니다. 공연장 등지에서 직캠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몰래 숨겨서 들어가는, 이른바 '홈마' 단속과정에서의 논란은 반복적으로 생산되어 왔다. 홈마 영상물을 입덕의 창구로 보는 팬도 있고 비공식 콘텐츠를 통한 개인적 수익창출 수단으로 보고 비판하는 팬도 있는 등 홈마 행위에 대한 판단은 팬덤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그러나 홈마 행위를 단속하기 위한 과정에서 보여준 기획사의 태도는, 케이팝 초창기부터 팬에게 서슴없이 욕설을 하거나 함부로 밀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이 업계의 팬을 향한 전반적인 태도와 궤를 같이 한다. 이는 바로 '어리석은 숭배자들'로 이루어진 젠더화된 케이팝 팬덤을 멸시해 온 사회의 전반적 태도다.
변화한 케이팝의 산업적 위상과 더불어 팬덤에 대해서도 점차 호의적인 호명이 이루어짐에 따라, 오늘날 케이팝 팬들은 자신들의 향유자로서 위치를 (과거에 비해서는) 잘 인지하게 되었다. 이는 때때로 과잉 자각으로 이어져 아이돌의 의상, 몸매, 콘셉트에 관한 지나친 요구로 표출됐다. 때로는 팬의 아티스트와 회사 판단 영역에 대한 지나친 개입과 간섭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에 팬덤이 분노하며 공론화해 결국 사과문을 얻어낸 것 역시 팬덤이 스스로를 명백한 향유의 주체로 인식함으로써 빚어진 결과일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팬덤은 숭배라는 사회적 규정을 향유라고 맞받아치면서 주체성을 형성해 가는 중이다. 숭배와 향유가 결코 분리된 감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선명한 대립각이 세워지는 현상이야말로, 젠더화된 팬덤을 둘러싼 사회적 압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지행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junelee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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