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파고든 마약, 경제 손실 따져보면 얼마일까[씬나는경제]

이명철 2023. 7. 1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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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약왕' 마약 사업으로 막대한 부 거둔 이두삼 다뤄
정·재계 뇌물 바치고 세력 과시했지만 결국 검사에 붙잡혀
한국 더 이상 ‘마약 청정국’ 아냐, 수십조원 비용 소요될 수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영화 속 장면 곳곳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담겨있습니다. 씬(Scene)을 통해 보이는 경제·금융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봅니다. [편집자주]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이 노출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인채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이두삼. 막대한 부를 거뒀어도 그것이 범죄에 의한 것이라면 모래 위에 놓인 집일 뿐이다. (사진=쇼박스)
“이 나라는 내가 다 먹여 살렸다 아이가!”

한 남자가 별장에서 총 한 자루를 들고 경찰 특공대와 대치하고 있습니다. 초점이 맞지 않은 눈동자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던 그는 결국 별장 안으로 침투한 검찰과 특공대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그는 마약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일컬어지는 마약왕 이두삼(송강호)였습니다. 그저 그런 밀수업자였던 이두삼이 마약왕으로 불릴 수 있던 이유는 무었이었을까요?

마약으로 애국하자던 이두삼, 정작 야쿠자와 협업

우민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마약왕’은 마약 밀수에 가담했다가 마약 제조·유통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 이두삼의 부흥과 몰락을 그렸습니다. 실제로 1970년대 국내 최대 마약업자인 이황순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두삼은 금 밀거래를 하는 유엔파와 일하면서 밀수 업계에 들어오게 되고 우연히 필로폰(히로뽕)을 일본에 수출하는 일을 맡으면서 마약 유통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때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기도 하지만 이는 투옥 후 마약 사업에 손을 대는 계기가 됩니다.

이두삼은 마약 원료의 운반책과 경리 등 조직을 꾸리는데 자신의 사촌동생인 이두환(김대명)과 여동생 이두숙(이봉련)까지 끌어들입니다. 일본 내 유통을 위해 야쿠자와도 손을 잡습니다.

그가 생각한 사업은 국내에서 마약을 제조한 후 일본에 내다 파는 것입니다. 필로폰 제작자인 백교수(김홍파)를 모셔오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도 시대 흐름에 발 맞춰 가지고 수출 금자탑을 세워야 한다. 뽕을 애국에 팔면 이거 애국 아이가”라며 주변을 설득합니다. 한국과 관계가 좋지 않은 일본이 마약에 찌들면 경쟁력을 잃으니 좋고, 우리는 돈을 벌어 좋다는 ‘아전인수’식 논리죠.

마약 사업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사회에 환원해 사업가로 가면을 쓴 이두삼. 막대한 로비를 통해 권력도 손에 넣고자 한다. (사진=쇼박스)
마약 사업을 하면서 불문율이 있는데 이는 ‘절대 마약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을 망가트리는 마약을 팔면서도 그만큼 마약의 무서움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갖은 고생을 하던 이두삼은 마약에 손을 대면서 인생이 파국으로 가게 됩니다. 사촌동생 이두환도 마약에 중독되죠.

로비스트인 김정아(배두나)와는 불륜 관계를 맺고 결국 가정 또한 파탄 납니다. 이두삼의 아내 성숙경(김소진)은 남편을 버리게 되고 이는 이두삼을 검찰에 넘기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두삼을 오랫동안 쫓아다닌 검사 김인구(조정석)은 이두삼의 꼬리를 밟는 데 성공하고 특공대와 그의 별장을 찾아가 검거에 성공합니다. 자살에도 실패한 이두삼은 그간 마약과 뇌물을 갖다 바쳤던 정·재계 인사들의 명단을 김인구에게 넘기고 징역 15년형을 받습니다. 영화 모티브인 이황순도 징역 15년형을 받고 수감됐다고 하네요.

손쉽게 구입하는 마약, 중독 치료까지는 어려운 길

영화 속 이두삼은 일본뿐 아니라 전국에 마약을 유통한 장본인입니다. 이황순 이후 수십년간 이두삼 같은 범죄자들의 조직적인 움직임 탓에 현재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게 됐습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해 1~4월 단속된 마약사범은 5587명으로 전년동기(4307명)을 넘었고 역대 최대 규모인 지난해(1만2387명) 수준을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마약을 둘러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마약에 취해 교통사고를 내거나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고 유아인 같은 유명인들의 마약 투여 소식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심지어 어떤 범죄자들은 지나가는 고등학생들에게 음료수라고 속여 무작위로 마약이 담긴 음료를 먹이게 해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두삼처럼 국내에서 마약을 제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마약의 유통 경로는 해외에서 반입이 가장 많은 편입니다. 관세청이 관세국경 반입단계에서 적발한 마약류는 지난 2021년 1272kg, 지난해 624kg에 달합니다. 이는 수백만명이 마약을 복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합니다.

이두삼의 아내와 내연녀가 한자리에 만났다. 아내의 매서움에도 버텼던 김정아는 이두삼의 폭언·폭력에 그를 떠난다. (사진=쇼박스)
마약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과 범죄 우려 외에도 경제적 손실은 큽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12년에는 ‘불법무역거래사범 단속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란 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는데 이를 통해 마약의 경제적 손실 효과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관세청은 마약 적발이 가장 많았던 2021년을 기준으로 추산을 한적이 있습니다. 당시 적발된 마약 중 남용 우려가 있고 위해성이 높은 마약류 8종 메트암페타민(필로폰), 코카인, 헤로인, 야바, 아편, 합성대마, MDMA, LSD은 987kg였습니다.

1인당 중독되는 마약 투여량은 필로폰이 0.12g(1회 0.03g × 3회)이고 코카인 등은 0.20g(1회 0.5g × 4회)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압수한 마약이 국내 유통됐을 때 중독 가능한 사람은 453만명에 달합니다.

1인당 마약 중독 치료에 드는 비용은 801만원이라고 합니다. 453만여명의 마약 중독을 치료하려면 36조3000억원의 의료비용이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마약 중독자 치료뿐만 아니라 이들이 일으킬 수 있는 사건·사고에 대한 직·간접 비용까지 감안하면 경제 손실 규모는 더욱 불어나겠죠.

꼭 돈 때문만은 아닙니다. 마약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해 점점 갉아먹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 대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유통 경로는 점점 다양해지고 진화합니다. 일선 공직자들의 마약 범죄 단속은 물론 우리 스스로도 경각심을 세울 필요가 있겠죠.

[영화 평점 2.5점, 경제 평점 2.0점(5점 만점)]

영화 ‘마약왕’ 포스터. (사진=쇼박스)

이명철 (twom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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