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천민자본주의에 일침 날린 김은희 작가의 다음 수는?('악귀')
[엔터미디어=정덕현] "당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정말 몰랐어요? 그 어린 아이를 끔찍하게 죽여서 태자귀를 만들고... 이렇게 좋은 집에서 돈 펑펑 쓰면서 사니까 행복했냐구!" SBS 금토드라마 <악귀>에서 악귀에 관련된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산영(김태리)은 해상(오정세)에게 그렇게 절규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악귀의 진실을 찾아 해상의 할머니 집 앞까지 온 산영에게 그 거대한 저택은 축복이 아니라 끔찍한 저주처럼 보였을 터다.
한편 할머니 나병희(김해숙)에게서 가업을 키우기 위해 아이를 죽여 태자귀까지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된 해상 역시 절망한다. 나병희는 그 태자귀가 집안 내내 이어져 내려오며 이로써 부자로 살 수 있게 된 거라고 말하지만, 해상은 그런 부유함 속에서 단 한 번도 행복을 느낀 적이 없었다고 나병희에게 토로한다.
그렇게 저택에서 나오는 해상과 그 저택 앞까지 찾아온 산영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 비를 온전히 맞으며 마주한다. 나병희와 그 집안사람들이 타인을 죽여서까지 자신들만 잘 살겠다는 마음이 사실 '악귀'인 셈이다. 그 악귀가 무속의 관점으로 실현된 것이 태자귀를 만드는 '염매'였던 것이고. 그 과정에는 나병희의 집안 같은 부자들의 더 큰 돈에 대한 욕망과 더불어 가난과 흉년에 시달리던 장진리 마을 사람들의 엇나간 욕망이 더해져 있었다.
<악귀>가 그리는 세계는 이처럼 태자귀 같은 귀신이 등장하는 오컬트의 세계지만, 거기에는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이나, 이로써 현재의 청춘들이 마주하게 된 불행한 현실 같은 인식이 담겨있다. 일제강점기에서부터 돈을 벌었고,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 태자귀를 만든 후 그 후로 또 승승장구해 현재 정관계까지 쥐락펴락하는 큰손 대부업체가 된 해상의 집안 이야기는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거기에는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김은희 작가의 오컬트식 비판의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김은희 작가는 무속 신앙의 '태자귀' 이야기에서 우리네 현대사와 현재 청춘들의 비극을 읽었던 모양이다.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기 위해 가난한 이들은 살아남겠다는 이유로 심지어 무고한 한 아이를 살해한다는 이 이야기는, 현재의 자본이 가진 끔찍한 시스템을 은유하고 있어서다. 사람을 희생해 거둔 거대한 자본들과, 그 중에서도 특히 청춘들을 희생해 더 공고해지려는 자본의 시스템이 그토록 높은 자살률 같은 지표로 나오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결국 과거 태자귀 같은 욕망이 만들어낸 것은 그 어느 쪽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현재다. 해상은 부유함 속에 살았지만 자신에게 악귀가 깃드는 것을 막으려다 죽은 엄마에 대한 불행한 기억 속에서 단 한 번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다. 산영 역시 가난해 악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죽은 아버지 구강모(진선규)로 인해 악귀가 들렸지만 그로 인해 불행해한다. 결국 과거 기성세대들의 욕망이 깨워낸 악귀는 현재의 후손들인 산영과 해상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김은희 작가가 악귀라는 오컬트적 존재를 통해 투영해낸 자본화된 한국을 불행하게 만든 현대사다.
그렇다면 이제 <악귀>가 그리고자 하는 건 어떤 이야기가 될까. 그건 아마도 산영과 해상이 이처럼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불행의 고리를 깨나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자본화된 세상이 만들어내는 비극의 시스템을 통찰하고 나면, 그걸 깰 수 있는 방법 또한 명쾌해질 것이니 말이다. 슈퍼히어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모든 걸 이겨낼 순 없지만 적어도 포기하지 않고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어른인 해상과, 매일 노력해도 힘든 삶의 실체가 내 잘못이 아니라 잘못된 시스템이라는 걸 깨달은 청춘인 산영이 앞으로 이를 깨쳐나가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자못 궁금해진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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