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박정환·최정 앞세워 아시안게임 바둑 金 싹쓸이 나선다
男개인전과 女단체전 우승 유력…男단체전도 중국과 혈투 예상
(시사저널=유경춘 바둑 칼럼니스트)
아시안게임 종목에 바둑이 들어있다고? 그것도 금메달이 3개씩이나? 어지간한 바둑팬이 아닌 이상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에 바둑이 있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실 바둑이 아시안게임에 처음 입성한 건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이었다. 그리고 이번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다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개최국 중국의 영향이 컸지만, 아시안게임이 바둑을 정식종목으로 선택한 것은 바둑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 등에서 바둑은 오랜 기간 예(藝)와 도(道)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는데 아시안게임과 전국체전, 전국소년체전 등에 입성하면서 온갖 논란을 뒤로하고 바둑은 '스포츠'가 됐다.
신진서 "가슴에 태극기 달고 출전하는 유일한 대회, 꼭 우승할 것"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됐던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3개(남자단체·여자단체·혼성페어)와 동메달 1개(혼성페어)를 휩쓸며 은메달 3개의 중국, 동메달 1개씩을 얻은 일본과 대만을 압도했다. 당시 한국엔 이창호와 이세돌이라는 불세출의 거목이 둘씩이나 버티고 있었고, 그 외에 조한승·최철한·강동윤·박정환(이상 남자), 조혜연·이민진·김윤영·이슬아(이상 여자)가 출전한 남녀 단체전에서 개최국 중국을 제압했다. 그리고 박정환-이슬아가 짝을 이룬 혼성페어에서도 중국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혼성페어 대신 남자개인전이 포함돼 역시 3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국가별로는 남녀 후보 1명 포함해 6명(남자), 4명(여자)으로 선수단이 구성된다. 남자개인전엔 국가별로 2명까지 출전할 수 있다. 한국 국가대표 바둑팀은 지난해 4월 선발전을 통해 이미 확정됐다. 남자 대표팀은 신진서·박정환 9단이 랭킹시드를 받아 자동 출전하며 변상일·신민준·김명훈·이지현 9단이 따로 치러진 선발전을 통과했다. 여자 대표는 바둑 여제(女帝) 최정을 비롯해 오유진·김채영·김은지가 팀을 이뤄 단체전 대표로 나선다.
또 2명이 출전하는 남자개인전엔 신진서와 박정환이 출격한다. 국내 랭킹 1위 신진서는 자동 선발됐고, 2위 박정환은 단체전 대표 6명이 토너먼트를 벌인 선발전에서 뽑혔다. 한국으로선 최상의 조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시안게임 2관왕에 도전하는 신진서는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어느 대회나 마찬가지지만 이번 아시안게임도 주최국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 같다. 하지만 단체전·개인전 모두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본다"면서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출전하는 대회는 아시안게임이 유일해 여느 대회보다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반드시 금메달을 획득해 많은 국민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신진서와 함께 2종목 석권에 도전하는 박정환은 이미 2010년 광저우에서 2관왕에 오른 바 있다. 이번엔 남자개인전과 단체전에 출전해 총 4개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변상일을 꺾고 개인전 출전권을 따낸 후 박정환은 "이번 한국 선수단 중 유일한 아시안게임 경험자라 제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단체전은 중국도 강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워낙 세기 때문에 많이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가대표팀 목진석 감독은 "이번 항저우아시안게임도 13년 전 광저우 대회처럼 전 종목 석권이 목표다. 중국식 룰로 하루 두 판씩 연습대국을 갖는 등 경기 방식 적응과 함께 단계적 맞춤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며 "선수들이 부담감을 떨치고 최대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데 역점을 둘 생각"이라고 밝혔다. 국가대표 바둑선수단은 오는 8월11일부터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 입촌해 본격적인 금메달 담금질에 돌입한다.
한국과 함께 금메달을 다툴 것으로 예상되는 개최국 중국은 2010년 홈그라운드에서 한국에 수모를 당하며 은메달 3개에 그친 악몽을 씻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태세다. 중국 대표팀은 작년에 확정됐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아시안게임 개최가 1년 연기되면서 재선발 과정을 거쳤다. 국가체육총국이 중국바둑협회에 재선발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다. 그 결과 지난 5월 열린 재선발전에서 기존 양딩신·리친청 외에 커제·미위팅·자오천위·양카이원 등 4명이 새로 합류하고 대신 구쯔하오·리쉬안하오·판팅위·퉈자시가 탈락했다.
13년 전 한국에 완패 수모 당한 중국, 총력전 태세
하지만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한 재선발전이 중국팀에 득이 될지는 의문이다. 지난 6월 끝난 란커배에서 신진서를 꺾고 우승한 구쯔하오가 탈락했기 때문. 또 춘란배 결승에 올라 변상일과 패권을 다툴 리쉬안하오도 빠졌고, 현 LG배 우승자 딩하오도 명단에 들지 못했다. 중국 랭킹 1위 커제가 막차로 합류했지만 커제는 최근 하향세여서 전력에 보탬이 될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이 중국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거기에 6월말까지 발표한다던 개인전 선수 명단은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우승 후보 0순위로 꼽히는 신진서 9단을 견제할 카드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여자 대표도 절반이 물갈이됐다. 중국 여자 대표로는 위즈잉·리허·우이밍·왕위보 등 4명이 최종 선발됐다. 지난해 선발된 선수 가운데 위즈잉과 리허는 잔류했지만 루민취안과 저우훙위가 최종 탈락했다.
한·중·일 바둑삼국지의 한 축인 일본도 선수 선발을 확정했다. 남자 단체전에는 이치리키 료·시바노 도라마루·이야마 유타·세키 고타로·사다 아쓰시 등 자국 내 타이틀 보유자들이 총출동한다. 여자 대표는 후지사와 리나·우에노 아사미·우에노 리사 등이다. 최근 수준이 급격히 올라 다크호스로 꼽히는 대만은 쉬하오훙·왕위안쥔·린쥔옌·라이쥔푸·천치루이·쉬자위안 등 국내 강자들과 일본 유학파를 망라한 최강 진용을 꾸렸다. 여자 대표엔 헤이자자·루위화·양쯔젠·리자신 등이 출전할 예정이다. 대만은 3종목 모두 최소 일본을 꺾고 동메달 이상의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3종목 모두 한국과 중국이 혈투를 벌일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한국이 최소 2개의 금메달은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 현 세계랭킹 1위인 신진서가 출전하는 남자개인전과 최정이 버티고 있는 여자단체전은 미세한 차이나마 한국이 중국보다 우세하다는 것. 물론 남자단체전 역시 중국에 뒤질 게 없는 강력한 우승 후보다. 항저우아시안게임 바둑대회는 9월24일부터 10월3일까지 항저우 중국기원 국제교류센터에서 개최된다. 한국 바둑이 이번에도 전 종목 석권으로 중국의 콧대를 꺾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바둑팬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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