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월급은 정말 '물가'를 자극했나 [視리즈]
임금 상승 자제 요청했던 정부
임금‧물가 상관관계 따져봐야
물가 1%p 상승한 1년 후
임금 0.3~0.4%p 올라
임금상승→물가상승보다는
이윤증가→물가상승 따져야
지난해 직장인의 유리지갑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임금 상승이 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거다. 이를 전해들은 수많은 직장인이 분노를 표했다. 직장인의 희생만 강요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정말 임금 상승이 인플레의 요인으로 작용했을까.
"임금은 기본적으로 노사 간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해 경영계에서는 과도한 임금인상을 자제해 생산성 향상 범위 내 적정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과도한 임금인상은 고물가 상황을 심화할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더욱 확대해 중소기업, 근로취약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운다. 이것은 결국 사회적 갈등을 증폭할 우려가 있다."
지난해 6월 28일 오전 8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간담회를 개최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작심 발언을 했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기업의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보름 뒤 추 장관은 대한상공회의소를 찾은 자리에서도 임금 인상 자제를 요구했다. 인건비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는 "곳곳에서 임금을 올리니까 '물가 상승→임금 인상→다시 물가 상승→또 임금 상승'이란 악순환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며 "상품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내부의 수요도 있을 텐데, 투자 활동으로 생산성을 올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해 나타난 인플레의 원인을 임금 인상에서 찾은 것이다. 임금 상승이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인 건 맞다. 임금이 상승해 소비 여력이 높아지면 수요가 늘어나 물가를 자극한다. 다만, 이 현상은 주로 경기가 회복세를 띨 때 나타난다.
지난해엔 사정이 달랐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경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도 물가는 상승세를 탔다. 코로나19가 촉발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 이슈, 지난해 2월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갈수록 심화하는 미중 무역 갈등까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요인은 숱했다.
이후 경기침체와 인플레가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가능성까지 언급되면서 정부의 정책은 인플레를 잡는 데 집중됐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건 고육지책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기업의 임금 인상이 정말 인플레의 요인으로 작용했느냐다. '월급 빼곤 다 오른다'는 웃픈 얘기가 있다는 걸 감안하면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정말 추 장관의 얘기처럼 임금 상승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졌을까.
우선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살펴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1.5%를 기록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19년 0.4%, 2020년 0.5%로 떨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진정세에 접어든 2021년 2.5% 상승했고, 지난해엔 5.1%로 치솟았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대를 넘어선 것은 1998년(7.5%) 이후 처음이었다.
같은 기간 노동자의 임금은 얼마나 올랐을까. 고용노동부의 임금결정현황조사에 따르면 2018년 4.2%를 기록한 임금상승률은 2019년 3.9%, 2020년 3.0%로 떨어졌다. 2021년 3.6%로 소폭 상승했고, 지난해 4.7%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0%포인트 이상 올랐다.
2022년 소비자물가상승률 5.1%와 비교하면 0.4%포인트 낮지만 수치만 보면 물가와 임금이 함께 오른 건 맞다.[※참고: 고용노동부의 임금결정현황 상용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노사가 합의한 임금 상승률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근로자의 평균임금(고용형태별 근로자실태조사)' 자료도 비슷하다. 2018년 313만7000원이었던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2019년 325만9000원으로 3.89% 늘었다.
그 이후 2020년 1.8 %, 2021년 3.77%, 2022년 5.02% 등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노동자의 평균 월급여액은 361만6000원을 기록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이 또한 물가와 임금이 함께 올랐다.
그렇다면 이를 두고 임금 인상이 인플레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0년간의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임금상승률 분석한 결과,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포인트 올라가면 임금상승률은 그로부터 1년 후에야 0.3~0.4 %포인트 높아졌다.
반대로, 임금상승률이 1%포인트 높아질 땐 개인 서비스물가상승률이 4~6분기 뒤 0.2%포인트 상승했다. 개인 서비스물가상승률은 인건비 비중이 크다. 임금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전통적인 경제이론과 달리 임금 상승이 물가를 낮춘다는 주장도 있다. 나준원 경북대(경제학) 교수는 "임금이 1% 오르면 인플레이션은 1년의 시차를 두고 1.28% 하락했다"며 "임금 상승이 기업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금인상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데이터와 맞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주장"이라며 "임금-물가가 아니라 이윤-물가의 연쇄 상승이 오히려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는 고물가의 원인을 임금이 아닌 기업이 제공했다는 '이윤-물가 연쇄론'을 입증해준다. 원자잿값 상승, 임금 인상에서 비롯된 '기대인플레이션'을 제품 가격에 반영한 게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거다.
한국은행은 "현재와 같이 물가 상승세가 높고, 기대인플레이션도 상승하는 시기에는 기업들이 원가 상승요인을 가격에 전가하는 정도가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물가 상승 국면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가격인상 품목의 비중도 커지는 현상이 관찰됐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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